성폭력 범죄피해 아동 진술녹화 증거능력 위헌 결정... 정말 최선이었나?
성폭력 범죄피해 아동 진술녹화 증거능력 위헌 결정... 정말 최선이었나?
  • 칼럼니스트 고완석
  • 승인 2022.02.1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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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아동권리 히어로] 성폭력 범죄피해 아동, 이제는 법원에 출석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성폭력 범죄피해 아동의 경우에도 직접 수사기관 또는 법정에 출석해 자신의 피해 내용을 진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베이비뉴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성폭력 범죄피해 아동의 경우에도 직접 수사기관 또는 법정에 출석해 자신의 피해 내용을 진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베이비뉴스

이제는 10여년 전 일이 되었지만 그때의 공포와 두려운 감정은 고스란히 기억된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은 곳은 경기도 한 지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말 그대로 학대피해아동을 전문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하는 곳으로 그 곳에서 상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한 아이를 만났다. 부모의 방임으로 신고가 된 아동이었는데 현장조사 차 부모님과 아이를 모두 만나보니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너무 좋았다. 그러나 부모는 ‘경제적 이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저녁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시간 동안 아이가 동네를 배회했던 것 이었다. 결국 ‘돌봄’의 문제였기에 ‘돌봄’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여 사례관리를 시작하였다.

그 당시 열정 넘치던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었기에 지역사회 내 복지관과 지역아동센터 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돌봄’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다. 아울러, 시간이 날 때마다 가정에 방문하여 부모와 아동에 대한 상담도 지속하였다.

그러던 중 아이를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바로, 아이가 얼마 전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종교인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이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방임’으로 신고되기 전 일이었고, 부모 역시 이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이 앞에서는 놀란 척 하지 않았지만 눈앞이 깜깜해졌고, 가해자를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정신을 차리고 부모를 설득하여 부모와 함께 경찰서를 찾았고, 처음 아이를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례관리가 진행되었다.

경력이 짧았던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에게 형사사법절차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심적으로도 너무나 힘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경찰이나 검찰 앞에서 ‘조사’를 받는 것이었다. 내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고, 오히려 나는 아이를 돕기 위해 조사에 응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나 검찰 앞에서 ‘조사’를 받는 순간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잊을 수 없는 큰 일이 벌어졌다.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는데, 그 자리에서 그 사건의 성폭력 가해자와 마주친 것이었다. 가해자는 피해아동을 조력하고 있는 나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듯 노려보았고, 급기야 나를 향해 큰 소리로 원망과 협박의 말들을 날렸다. 결국 경찰이 이를 제지시켰지만 그때의 공포와 두려운 감정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스란히 기억되고 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성폭력 범죄피해 아동의 영상녹화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6항에 대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6항은 성폭력 범죄피해 아동이 조사과정에서 진술한 것을 녹화한 영상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이는 성폭력 범죄피해 아동이 법정에서 받을 수 있는 추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을 통해 지금까지 성폭력 범죄피해 아동의 경우 법정에 직접 출석해 가해자를 만나거나 가해자 측 변호인의 공격적인 질문을 받는 등의 2차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성폭력 범죄피해 아동의 경우에도 직접 수사기관 또는 법정에 출석해 자신의 피해 내용을 진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조는 법원, 행정당국, 입법기관 등은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 아동 최상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아동 최상의 이익 원칙에 전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이는 이 사회가 아동의 권리보호에 대해 얼마나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범죄피해를 받은 아동들이 법정에서 가해자를 만나게 될 때의 두려움은 내가 10여년 전 경찰서에서 가해자를 만났을 때의 공포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피해아동들이 받는 2차 피해는 그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후유증, 그리고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성폭력 범죄피해 아동의 진술녹화 증거능력을 위헌으로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정말 최선이었는지 말이다.

*칼럼니스트 고완석은 열 살 딸, 여섯 살 아들을 둔 지극히 평범한 아빠이다.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NGO인 굿네이버스에서 15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는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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