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직 살만합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합니다”
  • 칼럼니스트 김재원
  • 승인 2022.05.1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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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39. 마음 또똣한(제주방언 : 따뜻) 제주사람 육지 출장 이야기
광주 출장길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김재원
광주 출장길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김재원

올해는 여행작가로서의 제주에서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도 칼럼을 통해 전해드리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며칠 전 육지 출장 중에 있었던 마음 또똣한(제주방언 : 따뜻)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해요. 

광주 출장길에 예정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광주공항으로 이동하는 길이였어요. 원래 계획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는데 모처럼 버스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인즉슨 제주에도 버스가 있긴 하지만 배차간격도 촘촘하지 않고 구석구석 버스가 다니지 않고 워낙 자가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보니 버스를 일 년에 거의 한두 번  타는 정도라 큰 도시에 나왔으니 버스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마침 마지막 일정이 마무리된 곳도 공항으로 향하는 길목이었기에 공항행 버스를 타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요. 그래서 제일 먼저 도착한 버스에 기분 좋게 올라섰어요. 도시에 계속 살던 사람처럼 버스 요금을 계산하기 위해 지갑을 태그에 댔어요. 

‘삑!’

버스 요금이 계산되는 경쾌한 소리가 나야 하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일을 절대로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한 번 더 지갑을 태그에 더 가깝게 밀착시켰어요. 역시나 반응은 없었어요. 그제서야 정신이 들기 시작했어요. 

‘아뿔싸, 지갑에 교통카드가 없구나.’

제주에서는 버스를 타고 다니지 않으니 지갑에는 명함이나 은행 입출금 카드 정도만 넣고 다녔고 그 지갑을 그대로 들고 왔으니 당연히 교통카드가 없었던 것이지요. 서둘러 지갑을 열어 현금을 찾아보니 가지고 있는 현금이라고는 1000원이 전부였어요. 

얼른 곁눈질로 흘겨본 시내버스 요금표엔 ‘현금 1400원’이라 유난히도 큰 글씨로 써져 있었어요. 일단 맨 앞자리가 마침 비어 있어 메고 있던 에코백을 내려놓고 들어있던 짐을 모두 다 꺼내기 시작했어요. 

‘제발 100원짜리 몇 개라도 나와다오’

죄 없는 에코백을 쥐어짜고 남아있던 먼지마저도 없어질 정도로 털어봤지만 기대했던 백 원짜리는 나오지 않았어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지만 속절없는 시간만 계속 흘러갔어요. 결단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창피함과 무안함이 물밀듯이 다가왔어요.  

"기사님... 죄송합니다.. 현금이 1000원 뿐인데 탑승을 했습니다. 부족한 400원은 제가 따로 입금을 해드리겠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계좌번호를 알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어요.  

"(환한 웃음을 보이며) 아이고 손님 괜찮아요. 천원만 그럼 넣으세요.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론 이런 실수를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편의를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버스 요금이 해결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뒤를 돌아볼 수 있었어요. 마침 다섯 명의 승객이 자리에 앉아계셨는데 그 짧은 순간 5명 승객 모두와 눈이 마주쳤어요. 그런데 참 신기했던 것이 나를 바라보는 모든 분들의 눈빛이 따뜻함으로 가득했다는 것이에요.  

내가 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계산되지 않은 지갑을 연신 태그에 찍어댈 때도 없는 돈을 찾으려 에코백을 몇 번이나 뒤적거리는 순간에도 무안함과 창피함에 기사님께 죄송한 말을 건네고 있을 때도 승객분들은 묵묵히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저는 그 따뜻한 눈빛의 의미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기사님이 400원을 받겠다 하시면 내가 기꺼이 대신 내어드려야지. 그런데 기사님이 좋은 분이셨네. 잘 해결되어 다행이다.” 

나는 그분들과 초면이었지만 눈빛에서 느껴지는 그 마음이 너무나 감사해서 환한 미소와 함께 '감사합니다'라고 소리 내 인사를 드렸어요.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기쁨과 감격 때문이었는지 다섯 명의 승객분들 모두 옅은 미소와 목례로 화답해 주었고요.  

기사님. 승객분들. 그리고 나. 광주광역시 '첨단20' 시내버스에서 우연히 만났지만 다행히도 우리의 마음은 넉넉했고 상대방의 난처함을 기꺼이 돕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관심’과 ‘배려’는 우리 일상에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가치입니다. 그 대상이 누구든지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주변을 향한 관심과 배려를 항상 기억하면 좋겠어요.  

여러분들도 일상을 살아가시면서 '세상은 아직 살만 하다'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으실 것에요. 그때 들었던 그 따뜻한 마음을 우리 모두가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리고 기회가 생길 때 누군가에게 호의를 기꺼이 베풀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세상은 더 행복해질 거라 생각해요.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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