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에겐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이 아이들에겐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 기고=노희연
  • 승인 2022.05.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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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품다] 11. 노희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북부아동옹호센터 과장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이 커지는 현재, 보호대상아동 및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져야 할 것입니다. 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세상이 함께 키워가야 할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세상이 품다’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아이들과 학부모, 전문가들과 함께 아동자립역량강화를 위한 글을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

쉼터를 퇴소한 보호종료청소년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북부아동옹호센터에서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 참여하고 있다. ⓒ박지만
쉼터를 퇴소한 보호종료청소년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북부아동옹호센터에서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 참여하고 있다. ⓒ박지만

‘이력’이란 ‘신발을 신고 걸어온 기록’을 뜻한다고 한다. 맨발로 엄마, 아빠 발등 위에 발을 얹고 잡은 손에 체중을 의지하며 걷던 어린 시절이 영원히 끝난 뒤, ‘어른이 되어 자신이 선택하고 걸어온 기록’이 이력이다. 물론 어떤 세상에서도 당연히, 시작이 교과서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할 수는 없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는 흰 이력서 앞에 앉아 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거나 신뢰할 이유와 의무가 없는 타인에게 ‘내가 누구인지’ ‘내가 걸어온 길’을 설명해야 하는 고통과 막막함을.

그렇다면 부모님이 부재하여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무조건적 믿음과 지지를 많이 겪어보지 못하다가 세상에 나온 청소년들이 자립의 가장 기본적인 충족요건인 ‘취업’을 준비할 때는 어떨까? 갑자기 타의에 의해 어른이 되어 스스로의 생계를 시급히 부양해야 하는 그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까? '내 꿈이 무엇인지' 깨달을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을까? 자라온 곳에서 꿈을 찾기 위한 기회를 눈치 보지 않고 충분히 누렸을지, 누군가의 조건 없는 지지 속에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나'를 찾아오며 살진 않았는지, 조금 먼저 앞서 걸어가며 조언해주는 언니나 형이 있었을지, 취업과 자립을 준비하는 보호종료청소년 앞에 놓인 물음표들은 수없이 많다.

학대, 유기 및 부모의 부재로 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세상으로 나오는 보호종료청소년의 수는 한 해 약 2600명이다. 성인이 되어 갑자기 스스로를 부양해야 하는 이들의 55.2%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혼자서는 알기 어려운 각종 정부 지원 정책을 알지 못해 혼란을 겪기도 하며, 사회의 편견으로 취업 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시설 퇴소·자립 및 취업을 앞둔 한 청소년은 인터뷰를 통해 “짧은 가방끈이나 경력 없는 이력서가 막막하고, 섣불리 일을 시작하기엔 아르바이트 말고 선택지가 없어 어려움이 있어요”라고 밝혀왔다. 대부분의 보호종료청소년은 18~24세가 되어 급하게 스스로를 부양하면서 전문기술 없이 소득 활동을 하고, 정작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돌아볼 새 없이 갑자기 생계에 내몰리게 된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6 보호종결아동 자립실태조사’에 따르면, 보호종료 후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평균 구직기간은 21.6개월이다. 평균소득은 127만 원(최저 임금 기준에 이르지 못함)으로 일반 청소년의 평균소득 179만 원과 차이를 보이며, 취업 유형 대부분은 서비스, 단순노무 직종에 종사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2020년 보호종료아동 실태조사’에서는 2명 중 1명의 자립 준비 청년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배우 김혜수가 주연한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소년 재판'에는 “소년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는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도, 한 아이를 방치하고 외롭게 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한 소년이 자라기 위해 필요하다는 온 마을이 제 역할을 하려면 그에게 정서적인 지지를 보내줄 ‘어른’이 필요하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작은 성공 경험들을 토대로 성장한다. 어린 시절 우리의 부모님이 그랬듯 몇 번 넘어지고 스스로 일어나고, 실패와 작은 성공의 경험을 하며 삶을 깨우치기까지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어른이 있다면, 일반 청소년들이 겪는 과정을 똑같이 겪고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지켜봐 주는 사회의 관심이 있다면 자립 준비 청년들이 사회의 당당한 주역으로 성장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 같은 보호종료 청소년에게 취업 준비는 막막하고 어려운 경우가 많고, 사회적 시선도 곱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저를 기다리고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이 계셨던 것처럼, 저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지원을 통해 거주하던 시설 퇴소 전에 일찍 진로 탐색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2022년 2월 직업 군인으로 입대하며 자신의 꿈을 찾은 한 자립 청소년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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