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명 장애학생 부모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제주 교육을 바꿔주세요"
"112명 장애학생 부모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제주 교육을 바꿔주세요"
  • 칼럼니스트 김덕화
  • 승인 2022.05.31 0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도에서 발달장애아이 키우기] 장애학생 학부모 연대가 선거 정책제안을 하기까지

장애인과 그 가족이 ‘을’에서 ‘갑’이 되는 순간이 있다. 선거철이다.

6.1 지방선거를 앞 둔 제주도는 전역이 선거운동으로 들썩들썩하다. 도지사, 국회의원(보궐), 교육감, 도의원 후보자 모두 유권자에게 한 표를 호소하며 간절하게 선거운동을 한다.

장애인 단체와 가족들이 가장 많이 정치인을 만나는 순간이 바로 이때다. 후보자들은 한결같이 얘기한다. ‘잘 듣고, 깊게 고민하고, 당선이 되면 꼭 장애인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후보자가 당선이 된 후 약속을 지켜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로 지켜지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후보의 공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연대를 만들어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이런 공약을 만들어 달라고 공개 제안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통해 지역사회에 알렸다.

지역 사회의 반응은 뜨거웠다. 여러 방송사와 신문사에 보도가 됐고, 후보자 측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이어졌다. 제주도 장애학생 학부모 당사자들이 어떻게 선거 정책제안까지 하게 된 과정을 지금부터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 제주도 중고등학교 특수교육 환경 탐구

5월 16일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진행된 6.1 지방선거 특수교육 정책 제안을 위한 기자회견. ⓒ김덕화
5월 16일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진행된 6.1 지방선거 특수교육 정책 제안을 위한 기자회견. ⓒ김덕화

정책 제안의 시작은 지난 가을에 진행한 ‘제주도 중고등학교 특수교육 환경 탐구’였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초등학교 특수교육대상자 부모들은 중학교 제주도의 특수교육 환경이 궁금해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개별적으로 알아보는데는 한계가 있어 탐구모임을 만들었다. 제주도 중고등학교 특수반, 특수학교를 직접 찾아가 만나서 학부모들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렇게 6개월간 애써 만든 탐구활동의 결과가 ‘2021 제주도 중고등학교 특수학급, 특수학교 교육환경 탐구 보고서(펴낸이- 사단법인 제주아이 특별한아이, 펴낸곳- 제주시소통협력센터)’다.

1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만들고 지역사회에 소개를 하니, 토론회를 개최해보자는 제안이 왔다. 우리의 탐구 결과를 눈여겨 본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발달장애 부모 당사자들이 만든 보고서는 유례가 없기도 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만 반영된 자료라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지난 1월 제주도 도의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제주도의회 의원, 교육청 관계자, 지역 특수교육 종사자, 학부모 등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 특수교육 환경탐구로 확인된 주요한 문제들인 특수학급 과밀, 직업교육, 학교 전체 구성원 장애인식개선, 개별화교육 등을 주요 토론 주제로 3시간 동안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일으킨다

5월 16일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진행된 6.1 지방선거 특수교육 정책 제안을 위한 기자회견. ⓒ김덕화
5월 16일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진행된 6.1 지방선거 특수교육 정책 제안을 위한 기자회견. ⓒ김덕화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태풍을 일으킨다고 했던가? 도의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나니, 또 다른 단체에서 토론회를 제안했다. 시기적으로 6.1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부모들 사이에서 더 이상 토론회를 하기보다 더 많은 장애학생 학부모의 의견을 모아, 이제 정책을 제안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학부모 의견을 모으는 방법으로 특수교육 환경탐구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가장 시급한 요구사항들을 설문조사 형식으로 구성하고, 이 정책제안에 동의하는 학부모의 실명을 담아 후보자들에게 정책을 제안하기로 했다.

4월 초부터 약 2주간 특수교육대상자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112명의 장애학생 학부모가 설문에 참여했고, 설문 응답 결과에 따라 우선 순위를 정해 정책을 만들었다. 응답결과 가장 시급한 문제는 특수학교 과밀문제 해결. 제주시 특수학교는 공간은 한정돼 있는데 학생 수가 점점 늘어나니, 교실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활동실이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가 터져나갈 것 같다는 아우성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는데, 설문결과에 그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두 번째 문제는 특수교육학과 신설이다. 제주에는 1600여명의 특수교육대상자가 있지만,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특수교사를 양성하는 특수교육학과가 하나도 없다. 제주의 특수교사는 모두 육지에서 수급하다보니 늘 신학기만 되면 특수교사가 부족해 불안불안한 실정이다. 그 밖에도 특수교육 인력 확충, 장애인식개선 확대, 내실있는 직업교육과 개별화 교육이 정책 과제로 선정됐다.

이 설문결과를 보도자료로 만들고 언론사에 배포했다. 여러 곳에 매체에 큰 관심을 보여며 보도가 되었다. 한 방송사에는 기자회견을 하는지 문의가 왔다. 사실 기자회견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바로 기자회견까지 해보기로 했다.

6.1 지방선거 특수교육 정책 제안을 위한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모습. ⓒ김덕화
6.1 지방선거 특수교육 정책 제안을 위한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모습. ⓒ김덕화

방송으로 나간다면 지역사회에 이 문제를 공론화 시키고, 후보자를 움직이게 하는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미 학부모 112명의 설문조사 결과로 만든 정책제안 내용이 있었고, 학부모의 서명 동의까지 받은 상태라서 준비는 큰 문제는 없었다.

먼저 도의회 공간을 대관하고, 기자회견 제목과 정책제안에 동의한 학부모 이름을 모두 적은 현수막을 제작했다. 정책 요구를 담은 손 피케팅 판까지 만들었다. 언론사에 기자회견을 한다는 보도자료를 돌리고, 당일 기자회견 대본까지 만들었다. 놀랍게도 이 모두를 단 2~3일만에 해냈다. 모두 처음하는 일이었지만 놀랄만큼 프로답게 해냈다.

제주MBC 뉴스를 통해 소개된 6.1 지방선거 특수교육 정책 제안을 위한 기자회견. ⓒ김덕화
제주MBC 뉴스를 통해 소개된 6.1 지방선거 특수교육 정책 제안을 위한 기자회견. ⓒ김덕화

드디어 5월 16일 기자회견 당일. 제주도에 있는 모든 방송사와 많은 신문사가 기자 회견 현장에 왔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떨리지만 진정성을 담아 답했다.

기자회견은 이 말로 시작했다. “우리가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기자회견이라는 것을 직접 준비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제주도 특수교육의 개선을 위해 장애학생 학부모의 간절함이 이 자리를 만들었으니,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주십시오.”

기자회견 후 지역사회의 반응이 바로 왔다. 후보자들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오고, 후보자들은 하나 둘 우리의 정책 제안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교육감 후보 2명 모두 우리가 제안한 ‘특수학교 공간 부족 해결’과 ‘제주도 특수교육학과 신설’을 공약으로 내 놓은 것이다. 물론 이번 학부모 정책제안으로 이 공약이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동안 계속 제기된 문제이고, 모두가 필요하다고 공감했던 문제를 이번 선거과정에서 부모들의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었기에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제 당선자가 이 공약을 지키는지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진행 과정을 확인해야 할 일이 남았다. 이번 임기동안 이 공약이 지켜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치지 않고 이 일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함께 연대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제주도 특수교육 환경 탐구모임과 토론회부터 함께 해주신 선배 부모님들, 설문조사에 응해주신 학부모님,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조언과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칼럼니스트 김덕화는 제주에서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발달장애 가족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발달장애 가족들이 모여 '행복하게 협동조합'을 만들고, 대표 일꾼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이해교육강사, 발달장애그림책 「우리 아이를 소개합니다」에 공동저자입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