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널 만나서 행복해!” 베이비박스 신생아를 품은 위탁 엄마의 일기
“엄마도 널 만나서 행복해!” 베이비박스 신생아를 품은 위탁 엄마의 일기
  • 기고=김미영
  • 승인 2022.06.20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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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품다] 16. 광주가정위탁지원센터 위탁모 김미영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이 커지는 현재, 보호대상아동 및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져야 할 것입니다. 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세상이 함께 키워가야 할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세상이 품다’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아이들과 학부모, 전문가들과 함께 아동자립역량강화를 위한 글을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

  가족 나들이 모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가족 나들이 모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20년 8월 중반쯤, 37개월 막 접어드는 여리고 아주 작은 아이가 우리 집 막내딸이 되었고 난 아이의 위탁 엄마가 되었다. 우리 막내딸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0세부터 36개월까지 모습은 보호소에서 보내준 몇 권의 앨범 속에서나마 접하는 것뿐, 사실 우리 가족과 아이에게는 3년여의 시간이 어찌 보면 공백 기간으로 남은 것 같다. 베이비박스 아이, 신장 관련 질환을 앓고 평생 약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 그래서 유독 작고 여린 아이가 가족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와 가족의 일원, 우리 부부의 막내딸로서 37개월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영아기 때 여느 아가들처럼 엄마 품에서 엄마 냄새, 심장 소리, 다정한 음성 등 신생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들을 얻지 못한 아이는 위탁 엄마 품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본능적인 감각인지 0세 아가로 되돌아가는 퇴화 현상이 시작되었다. 처음 우리 가족들은 몹시 당황하고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워 ‘가슴으로 낳았다’는 말이 실감이 났고, 그래서 더욱 사랑으로 품어주고 또 채워주어야만 했다. 아이가 낯선 우리 집에 와 적응해 가는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살펴보며, ‘어릴수록 집에서, 작을수록 부모가’ 아동을 보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잠이 들면 쓰곤 했던 나의 일기문 중 일부를 소개하며, 작은 아이가 큰 가족의 울타리에서 어떻게 자기의 자리를 마련해왔는지 조심스레 공유하고자 한다.

# 20년 9월의 어느 날

미소가 예쁜 아이가 처음 본 순간부터 ‘아빠, 엄마, 언니’라고 부르며 웃어주는데, 아이의 천진한 미소를 보며 나는 다짐했다.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줄게!’ 그렇지만 아이도 적잖은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있었을까! 하루에 30회 이상 화장실에 간다.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마음껏 자연과 도심 속 생활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유모차를 태우고 공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단어는 “엄마, 아빠, 언니 예뻐.” 원하는 게 있으면 손가락으로 사물을 가리키고 싫으면 고개 흔들기 등 37개월 아이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언어표현들….

# 20년 11월의 어느 날

아이는 참 밝고 활발하고 씩씩한 기질로 타고난 것 같다. 그런데 아이가 우리 집에 온 일주일 후부터 이상 행동들이 나타났다. 엄마 몸 냄새 맡기, 특히 발가락 냄새를 맡기 시작한 것. 퇴화된 걸까? 안아 달라고 수시로 칭얼대고 분리불안 증상까지 동반했다. 엄마 이외에는 아무한테도 가지 않고 화장실 가는 것마저 무섭다고 하는 ‘엄마 바라기’가 된 아이. 아이와 나는 한 몸이 되어버렸고 내 생활이 없어지고 모든 시간은 아이에게 고정되어버렸다. ‘그래! 3년만 고생하자! 너의 3년 공백 기간을 내가 사랑으로 채워줄게!’ 4개월이 마치 10년의 세월처럼 아이와 지지고 볶으면서 쏜살같이 지나갔다.

# 20년 12월의 어느 날

아이의 고집은 갈수록 더해가고 자기 것에 대한 소유욕도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가족사진을 보다가 물어본다. “엄마! 윤이(위탁아동/가명)는 어디 있어요? 엄마! 뱃속에 있어?” 그 뒤로 당장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에 예약부터 했다. 가족사진 찍는 날 성인이 된 두 딸이 시간을 내서 모였다.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막내 아이 얼굴이 행복으로 햇살처럼 빛나고 있었다. 멋진 가족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드디어 가족의 퍼즐이 완성된 느낌이다.

# 21년 2월의 어느 날

“배고파요 엄마!" 아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와 한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다. 시도 때도 없이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고 한다. 마음이 허한가 보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수시로 아이에게 사랑으로 답해주니 이제 배고프단 소리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와 떨어져도 울지도 않고 휴일에는 아빠, 언니와 운동도 나간다. 그렇게 아이는 천천히 한 가족이 되어갔다. 이제 아이는 “사랑해요! 행복해요! 우리 가족이랑 하늘만큼 땅만큼 같이 살 거야”란 말을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한다. 아이의 말을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감정 표현에 공감해주니 온전히 나를 신뢰하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그 느낌을 아는 것 같다.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는 옛말이 맞구나!

# 21년 5월의 어느 날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슴으로 내어 주었다. 엄마 품도, 젖가슴도, 엄마 자장가 소리도, 엄마 발가락 냄새도 그 아이가 충족하고 싶은 오감의 감각들을….  위탁 아동을 키우면서 배우게 된 사실은 ‘진짜 엄마, 낳아준 엄마’의 단어들을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정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플 때 곁에서 밤새워 기도해주고, 엄마 품 그리우면 품어주고, 밥 챙겨 먹이고, 예쁜 옷 입히고, 예쁜 머리 아침마다 빗겨주고, 놀이터에서 같이 놀아주고, 항상 곁을 지켜주는 엄마. 아이 입으로 말하는 ‘좋은 엄마’가 진짜 엄마라는 것. 따뜻한 봄날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언제쯤 엄마 냄새 맡기를 멈출 거야! 아직은 멈추고 싶지 않고 더 많이 엄마 냄새 맡고 싶다고 한다. 그렇구나. 너의 마음이 풍성해질 때까지 엄마가 기다려 줄게.

# 21년 8월의 어느 날

막내딸이 우리 집에 온 지난 1년간, 키가 8센티나 자랐지만 또래에 비해 여전히 뒤에서 1등으로 크다. 그래서 포대기에 업어 주라면서 이제는 내 등짝마저 가만히 두질 않는 껌딱지 딸 덕분에 등뼈 결림 증상이 생겼고, 회전근 파열이라는 병까지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어미의 마음인가 보다. 아기였을 때 누리지 못한 걸 다 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포대기에 업히는 것, 식당 가서 아기 의자 앉아서 밥 먹어 보는 것, 유모차 타고 나들이 가는 것 등.

“모두가 꽃이다. 마음대로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아무 데나 피어도 모두 다 꽃이다.”

# 22년 4월의 어느 날

여섯 살이 되어 병설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딸이 배웠다며 불러주는 동요를 즐겨 듣다 보니 가사말까지 외우게 되었다. 오십 평생 접어들면서 가장 가치롭고 의미 있는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아마도 위탁 엄마로서의 삶일 것 같다. 막내딸이 초등학교 들어가고, 동생이 생기길 원한다면 난 또 다른 아이의 위탁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하지만 ‘어릴수록 집에서 작을수록 부모 품에서’ 양육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내 딸의 성장통을 지켜보며 느끼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에 신중하고자 한다. 온전히 그 아이 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내 건강이 허락한다면 작고 여린 아이를 또 맞이하여 그 아이가 오롯한 사랑을 느끼며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막내 딸아이가 오늘도 잠들기 전에 조용히 속삭인다 “엄마 행복해!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세련된 언어로 행복을 표현하는 아이, 조금 느려도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 주니 알아서 크는 아이. “엄마도 널 만나서 행복해!”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돌봄을 받는 환경이 되길 바란다. 또한 우리 아이의 행복을 다른 아이들도 경험하길 원한다. 아이들이 사랑의 품에서 건강히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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