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만리(黑龍萬里) 제주 밭담길 탐방, 시(時)가 흐르는 ‘물메 밭담길’
흑룡만리(黑龍萬里) 제주 밭담길 탐방, 시(時)가 흐르는 ‘물메 밭담길’
  • 칼럼니스트 김재원
  • 승인 2022.06.2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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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43. 물 맑고 산이 아름다운 물메마을 밭담 이야기

제주에 사는 제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주스러운 여행지를 추천해 줄 수 있느냐?”라는 것인데요. 저는 그럴 때마다 제주의 밭담길 탐방을 주저 없이 추천해드립니다. 익숙하고 평범하게 느껴지는 제주의 밭담이지만 굽이굽이 마을길을 따라 연결되는 밭담을 걷노라면 제주다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맞서 싸운 제주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담 너머 보이는 제주의 다양한 모습들과 저 멀리 바다와 한라산을 머금은 밭담의 풍경이야말로 가장 제주다운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메 밭담길을 걷고 있는 탐방객들. ⓒ김재원
물메 밭담길을 걷고 있는 탐방객들. ⓒ김재원

현재까지 조성된 밭담길은 △'진빌레 밭담길'(구좌읍 월정리) △'감수굴 밭담길'(구좌읍 평대리) △'물메 밭담길'(애월읍 수산리) △'수류촌 밭담길'(한림읍 동명리) △'영등할망 밭담길'(한림읍 귀덕1) △'어멍아방 밭담길'(성산읍 신풍리) △'난미 밭담길'성산읍 난산리 △ '공세미 밭담길'(애월읍 어음1리)까지 제주시에 6개, 서귀포에 2개소 등 총 8개 코스가 있습니다. 또 구좌읍 월정리 해안에서 서쪽 2km 지점에 있는 ‘제주밭담테마공원’에서도 밭담의 다양한 종류를 접할 수 있는데요. (밭담의 유래와 종류와 같은 기본적인 이해는 ‘알고 가면 더 재미있는 제주밭담여행’ 칼럼을 먼저 읽어주세요)

애월읍 수산리에 조성된 '물메 밭담길'. ⓒ김재원
애월읍 수산리에 조성된 '물메 밭담길'. ⓒ김재원
굽이굽이 마을길을 따라 연결되는 물메 밭담길 풍경. ⓒ김재원
굽이굽이 마을길을 따라 연결되는 물메 밭담길 풍경. ⓒ김재원

오늘은 8개 밭담길 중 시(時)가 흐르는 ‘물메 밭담길’을 탐방해 보려 합니다. 물메 밭담길이 자리 잡은 애월읍 ‘수산(水山)’은 이 마을의 옛 이름 ‘물메’의 한자 차용 표기입니다. 마을을 감싸듯 지키고 있는 수산봉, 곧 ‘물메오름’ 정상에 있었던 마르지 않는 샘물에서 비롯된 이름인데요. 수산리는 애월읍 관내 가운데쯤 자리한 중산간 마을입니다. 제주의 옛 모습이 많이 남겨져 있는데 상동, 당동, 예원동, 하동 등 네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마을마다 설촌의 역사가 조금씩 다르고 역사적인 기록들 역시 시대적인 간극이 조금은 있지만 여러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대략 700여년 전후로 수산리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사람들이 물메마을에 뿌리내리며 살아온 세월을 동행해왔던 물메 밭담. 수많은 선(線)들이 겹친 듯 이어진 듯 모여 이룬 구불구불한 모습은 멀리 떨어져서 볼수록 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돌들을 쌓아두었는데도 마치 일정한 규칙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드는데요.

수산리 마을길과 물메 밭담길 곳곳에 설치된 시비(詩碑). ⓒ김재원
수산리 마을길과 물메 밭담길 곳곳에 설치된 시비(詩碑). ⓒ김재원
마을에 세워진 시비(詩碑)는 한국시인협회에서 추천한 100명의 시인의 시와 수산리 출신 시인의 시들이 새겨져 있다. ⓒ김재원
마을에 세워진 시비(詩碑)는 한국시인협회에서 추천한 100명의 시인의 시와 수산리 출신 시인의 시들이 새겨져 있다. ⓒ김재원

밭담의 매력에 빠져 한참을 걷다 보면 돌담과 어우러진 시비(詩碑)들을 만나게 됩니다. 수산마을이 2013년부터 진행해온 시를 주제로 한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것인데요. 시비는 한국시인협회와 손을 잡고 시인 100명의 시와 수산리 출신 시인들의 시를 새겨 밭담길 곳곳에 세웠는데요. 수산리에서는 힐링마을 물메마을 완성을 목표로 시인학교 건립과 체험시설 등의 사업도 추진하고 있어서 앞으로의 수산마을의 모습도 기대가 됩니다. 

수산저수지 둑방길에서 바라본 수산봉. ⓒ김재원
수산저수지 둑방길에서 바라본 수산봉. ⓒ김재원

마을 길을 벗어난 밭담길은 수산저수지와 둑방길과 만나게 됩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 쌀 농업진행 정책 추진으로 건설된 수산저수지는 평온한 풍경의 이면에는 수몰의 가슴 아픈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4.19 혁명으로 정권이 붕괴되자 저수지는 최초의 목적과 달리 제대로 사용도 해보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되고 말게 됩니다. 

천연기념물 441호 수산리 곰솔. ⓒ김재원
천연기념물 441호 수산리 곰솔. ⓒ김재원
수산리 곰솔은 백곰(白熊)이 저수지의 물을 마시는 모습 같다고 해서 곰솔(熊松)이라고 불리운다. ⓒ김재원
수산리 곰솔은 백곰(白熊)이 저수지의 물을 마시는 모습 같다고 해서 곰솔(熊松)이라고 불리운다. ⓒ김재원

둑방길 너머에는 천연기념물 곰솔이 탐방객들을 반깁니다. 높이 10m, 둘레가 4m나 되는 거목인데요. 1971년 제주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5월 14일 천연기념물 제441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곰솔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수인데요. 잎이 일반적인 소나무의 잎보다 억세어 ‘곰솔’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에 ‘해송’이라고도 하며, 줄기 껍질의 색깔이 소나무보다 검다 해서 ‘흑송’이라고도 불립니다. 국내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은 수산리 곰솔을 비롯해 몇 개 되지 않을 정도로 귀한 나무입니다. 수산저수지 물가에 한쪽 면이 닿은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 곰솔은 겨울철 수관(樹冠)의 상부에 눈이 덮이면 마치 백곰(白熊)이 저수지의 물을 마시는 모습 같다고 해서 곰솔(熊松)이라고 불리는데요. 꼭 눈이 오지 않아도 곰이 물을 먹고 있는 형국이라 탁월한 작명에 무릎을 치게 됩니다. 

수산봉 그네. 그네 너머 수산저수지와 한라산의 풍경이 아름답다. ⓒ김재원
수산봉 그네. 그네 너머 수산저수지와 한라산의 풍경이 아름답다. ⓒ김재원

곰솔 바로 옆 높이 122m의 수산봉 초입에는 그네를 타려는 사람들로 분주합니다. 언제부턴가 수산봉 그네는 수산저수지와 그 너머 한라산 정취까지 함께 담으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는데요. 일명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는 포토존이기에 밭담길을 걷다 잠시 사진 한 장 찍고 가도 좋습니다. 

수산봉을 벗어나 당동 마을로 내려가면 당동 삼거리와 만나게 됩니다. 당동 삼거리에는 커다란 팽나무 세 그루가 정자를 이룬 쉼팡이 탐방객들을 반겨줍니다. 이 팽나무 아래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마을 일을 의논하는 모습이 아릅답다 하여 물메마을 호반 8경 중 제7경으로 꼽힙니다. 팽나무 아래에 걸터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다 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이 나무 그늘 아래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당동 삼거리에 있는 팽나무 쉼팡. ⓒ김재원
당동 삼거리에 있는 팽나무 쉼팡. ⓒ김재원

당동 삼거리에서 수산교 쪽으로 걷다 보면 동학사상을 계승한 ‘수운교’와 수질이 맑고 수량이 풍부하여 주민들의 음용수로 사용했던 ‘큰섬지 물통’을 지나게 됩니다. 이어 물메초등학교 뒤편 마을을 지나면 어느새 물메 밭담길의 종착점이자 출발지에 도착하게 되는데요. 물메 밭담길은 약 4km 정도 되는데 성인 기준으로 도보 1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을 풍경과 역사를 살펴보며 느릿느릿 여유 있게 걸어보기를 추천합니다.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지요. 밭담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또 다른 제주의 모습을 반드시 만나게 되실 거예요. ‘물메 밭담길’을 자신 있게 추천드립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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