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는 두 아이 엄마의 번아웃 증후군 극복해나가기
미국 사는 두 아이 엄마의 번아웃 증후군 극복해나가기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2.09.29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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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몸의 건강도 마음의 건강도 엄마에겐 쉽지 않다

번아웃(burn out)의 사전적인 의미는 ‘무언가가 다 타다’, ‘소진되다’ 혹은 ‘에너지를 소진하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번아웃 증후군이란 무언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정신적 신체적 무기력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처음에는 내가 그저 피곤하거나 게으름을 떨고 있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더 잠을 얼만큼 자는 지와는 상관없이 피로감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무기력의 강도가 점점 심해져서 식구들 식사를 챙겨주는 것조차도 정말 억지로 나를 몰아붙이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 아침에 아이들 아침 식사 챙기는 것과 도시락 싸는 것은 한번도 거르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면 손가락 조차 움직일 힘이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라 하염없이 소파나 책상 의자에 앉아 멍하니 몇시간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약간의 두통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었고 짜증이 나는 날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끝없는 무기력감 끝에 깊은 우울감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서 참 맥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랜 미국 생활, 잦은 이사 탓에 미국 곳곳에 친구는 있지만 마음 저 갚은 곳까지 터놓을 사람은 많지도 않고 가까이 있지도 않았다. 일도 육아도 마음 다스리기도 아무리 쉬어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렇게 두 달 가까이 지내면서 무언가 스스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피로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한국에 있는 정신건강의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20년 지기 친구와 오랜만에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내 모든 증상이 번아웃 증후군과 일치한 다는 것을 깨달았다. 딱히 치열하게 산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에너지가 참 많이 소진되어 있었나보다. 생각해보니 길고 긴 박사 논문을 마치기까지 사실 쉴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면서 무슨 성과를 이룬 것 같은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조용히 앉아서 계획된 일을 하기 좋아했던 미혼의 나라는 사람은 아이 둘을 낳고 육아를 하고 또 자연스럽게 집에서 육아와 가사, 그리고 밖으로는 공부와 티칭(teaching)을 병행 하면서 점점 바뀌었다. 나이 탓인 건지 아니면 임신과 출산, 육아의 영향인 건지 그도 아니면 그냥 심적 여유도 그 밖의 모든 여유도 사라져버린 것인지 기억력도 점점 감퇴 되는 것 같았고 집중력도 떨어졌고 무엇보다도 어떤 열정이나 에너지가 점차 사라져버렸다. 그러다 결국 번아웃이 와버린 것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활기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산책 중. 녹지를 오래 보는 것도 참 좋다.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근처 공원을 자주 산책한다. ⓒ이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활기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산책 중. 녹지를 오래 보는 것도 참 좋다.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근처 공원을 자주 산책한다. ⓒ이은

친구의 조언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데려올 때 말고는 거의 하루 종일 집안이나 연구실에만 있던 일상에 변화를 주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풀타임으로 일하는 남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일단 이번 학기만 하고 있던 대학 강의를 줄였다. 오전반이라 11시 반이면 하원 하던 작은 아이의 프리스쿨 프로그램도 2시반에 하원 하는 오후반으로 연장했다. 좋아하던 소설 책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20년 지기 친구에게 부탁해 더 자주 통화를 하면서 내 일상이나 기분을 나누기 시작했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까지 일하던 패턴을 바꾸고 차라리 새벽 일찍 일어나 일할 수 있게 노력하기 시작했다.

아직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적어도 마음은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하려하지 않고 집안 일도 더 슬렁슬렁,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뒹굴뒹굴도 해보았다.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아이들을 육아 중이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이제 조금씩 번아웃을 극복해가고 있다. 인생에 쉼표도 가끔 필요하다는 것은 다시금 인식하면서 세상 모든 엄마들이 쉼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 열정적이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몸도 마음도 건강한 엄마 최고이다. 천천히 그리고 쉬어가면서 가자. 다시 기력을 찾기를 바라면서 스스로 다짐해본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낙천적인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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