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의 우주이면서도 티끌만도 못한 존재, 부모
한 아이의 우주이면서도 티끌만도 못한 존재, 부모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2.12.0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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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칠드런 액트(2017)

※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 제목 '칠드런 액트'는 영어로 아동 법을 뜻한다고 한다. ⓒ씨나몬㈜홈초이스
영화 제목 '칠드런 액트'는 영어로 아동 법을 뜻한다고 한다. ⓒ씨나몬㈜홈초이스

‘칠드런 액트’는 영어로 아동 법을 뜻한다. 이 영화는 부모가 자녀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극단적 상황을 관객들 앞에 들이민다. 17세 청소년 애덤 헨리는 백혈병에 걸려 입원을 했는데, 여호와의 증인인 그의 부모와 애덤은 수혈을 거부한다. 애덤은 아직 미성년이라 부모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치료를 하려는 병원 측의 긴급 요청으로 재판이 열리고 메이 판사가 이 사건을 맡는다.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서는 피에 영혼이 담겨 있기 때문에 피는 신의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자들은 다른 사람과 피가 섞이는 것을 거부한다. 메이는 이례적으로 애덤의 말을 직접 듣겠다며 병원으로 그를 찾아간다. 메이에게 애덤은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신이 가르쳐준 규칙 안에서 살려고 할 뿐이다.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이건 내 선택이다.

메이는 애덤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다며 병실을 찾아간다. ⓒ씨나몬㈜홈초이스
메이는 애덤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다며 병실을 찾아간다. ⓒ씨나몬㈜홈초이스

메이는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준다. 판결문은 “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앞날에 다가올 삶과 사랑”을 위해 “그의 존엄성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다”며 수혈을 포함한 치료 행위는 적법하다고 선고한다. 판결문이 이렇게나 간결하면서도 문학적일 수 있다니, 나는 이 장면에서 감탄했다.

메이의 판결문대로 애덤은 그의 부모와 교단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부모, 학교, 지역 사회, 더 나아가서는 국가 제도가 미성년을 보호하는 울타리라면 애덤의 부모는 그 울타리가 돼 주지 못했다. 그 빈 자리에서 국가가 법을 집행함으로써 애덤의 생명을 지켜낸다.

애덤이 살아난 후, 영화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씨나몬㈜홈초이스
애덤이 살아난 후, 영화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씨나몬㈜홈초이스

영화가 이렇게 끝났다면 참으로 ‘사이다’ 결말이었을 텐데, 애덤이 치료를 잘 받고 살아난 이후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건강을 회복한 애덤은 메이를 거의 스토커처럼 따라다닌다. 그는 수혈을 거부했던 과거의 자신이 겉멋만 든 바보였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신앙은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애덤에게 기존의 세상은 무너졌고, 그는 다시 자신의 세상을 구축하느라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메이가 애덤의 병실을 찾아갔을 때, 메이는 애덤이 좋아하는 기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에게 예이츠의 시를 가사로 옮긴 노래를 직접 불러줬다. 신과 사후의 천국만을 이야기하던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애덤에게, “삶과 사랑”을 알려준 어른은 메이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애덤은 메이에게 간절하게 호소한다.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당신이 허락한다면 당신과 남편이 사는 그 집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결혼 생활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던 메이는 흔들린다.

너무나 진지하게 당신과 당신 남편이 사는 집에서 집안일이라도 하겠다고 말하는 애덤. ⓒ씨나몬㈜홈초이스
너무나 진지하게 당신과 당신 남편이 사는 집에서 집안일이라도 하겠다고 말하는 애덤. ⓒ씨나몬㈜홈초이스

메이가 애덤을 뿌리친 후, 둘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곳은 애덤이 입원한 호스피스다. 병이 재발했는데 애덤은 치료를 거부한다. 그는 이제 법적으로 성인이다. 그의 선택을 법적으로 막을 장치는 없다.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하라는 메이에게 애덤은 이 한 마디만을 남기고 마지막 숨을 거둔다. “내 선택이에요.”

법이 적용되지 않는 지점에서는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메이가 뒤늦게 발견한 애덤의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써 놓았다. “언젠가 병이 재발하면 저는 자유로워지겠죠.” 애덤의 자유 의지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애덤의 편지를 읽는 메이. ⓒ씨나몬㈜홈초이스
애덤의 편지를 읽는 메이. ⓒ씨나몬㈜홈초이스

전체적 분위기가 품위 있고 우아한 영화였으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시선으로 보면 좀 오싹하기도 했다. 애덤과 그 부모의 관계는 부모 자식 관계가 얼마나 복합적인 권력 관계인지를 보여준다. 부모는 아직 미성년인 자녀 목숨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일련의 사회적 장치들이 그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를 수 없도록 한다.

애덤이 성인이 된 후엔 어떤가. 애덤은 부모와 교단이 제시한 세상이 완전히 사기였다며 그 밖으로 저벅저벅 나아간다. 의지할 만한 어른을 찾아 메이에게 매달려보기도 한다. 애덤은 이리저리 세상에 부딪쳐보는데 그 끝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다. 애덤의 선택 앞에 메이는 물론이고 그의 부모마저 속수무책이다. 부모 자식도 서로에게 완벽한 타인이기에.

부모의 손은 자식을 옥죄는 손아귀가 될 수도 있지만, 자식의 얼굴을 스치는 바람만도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한때는 한 인간의 우주였으나 티끌만도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니, 부모란 얼마나 두렵고도 무력한 자리인지.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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