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놀이에도 돈과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놀이에도 돈과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3.02.0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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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나는 마을 방과 후 교사입니다(2022)

아이를 늦게 낳아서 내 친구들의 아이는 지금 대부분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전일제 맞벌이로 일하는 친구들의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부모의 퇴근 전까지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돈다. 학원을 보내는 이유가 막연히 교육 목적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실상은 돌봄 목적도 크다. 지금 당장 내 직장 옆자리에는 나처럼 다섯 살 딸을 키우는 동료가 아이의 하원 시간과 본인의 퇴근 시간까지 딱 한 시간이 비어서 그 한 시간을 위해 아이를 날마다 태권도 학원에 보내고 있다.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버는데 그 돈 버는 활동 때문에 자녀를 돌볼 수 없고, 부모가 부재하는 시간 동안 아이가 성인 보호자와 안전하게 있을 수 있도록 학원비를 쓴다. 이 무슨 거대한 아이러니인가.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튜디오 그레인풀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튜디오 그레인풀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2022)는 서울 마포의 오래된 공동체 '성미산 마을'의 방과 후 교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성미산 마을’의 초등학생 60여 명은 하교 후 ‘도토리 마을 방과 후’에서 다섯 명의 교사와 함께 생활한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오기 전에 센터에 도착해서 환기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밥을 지어먹고,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면 내일은 아이들과 어떻게 놀지 진지하게 회의한다.

카메라는 사회에서 흔히들 '그림자 노동'이라고 부르는 돌봄 노동하는 교사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찍는다. ⓒ스튜디오 그레인풀
카메라는 사회에서 흔히들 '그림자 노동'이라고 부르는 돌봄 노동하는 교사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찍는다. ⓒ스튜디오 그레인풀

공기놀이로 대결을 하면 결국엔 잘하는 아이 개개인의 능력만 돋보일 뿐, 함께 노는 활동이 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를 두고 회의를 하는 교사들을 보고 나는 마음속으로 기립박수를 쳤다. 한번도 그런 생각을 못해봤는데, 정말 그렇네요. 이렇게나 아이들 놀이에 진심인 교사들이라니요.

그럼에도 공동육아 방과 후 교사들은 공식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10년을 일해도 경력이 ‘0일’이라고 한다.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어서 조합의 예산만으로 교사들의 월급을 충당하기 때문에 이들의 노동에 정당한 임금이 지불되기도 힘들다.

이 장면에서 아니 밤 8시가 넘었는데 퇴근은 언제 하시는지 궁금했던 불성실한 직장인 관객이 나였다. ⓒ스튜디오 그레인풀
이 장면에서 아니 밤 8시가 넘었는데 퇴근은 언제 하시는지 궁금했던 불성실한 직장인 관객이 나였다. ⓒ스튜디오 그레인풀

아마도 영화의 가장 큰 주제는 마을 방과 후 교사 일의 기쁨과 그에 상반되는 이 직종에 대한 열악한 처우일 것이다. 그런데 양육자로서 나는 조금 이기적이게도(?) 영화 속 아이들이 노는 광경이 가장 인상적이고 놀라웠다. 아...? 초등학생들이 하교 후에 저렇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구나?! 팔씨름, 줄다리기, 씨름, 잡기 놀이... 어린이들이 정말 신나게 노네...? 학원 안 가나? 계속 노네...?!!

내 머릿속에서 초등학생이 하교 후 일상을 보내는 장소는 방과 후 수업(공교육), 학원(사교육), 집(가정) 이 세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도토리 마을 방과 후에 모여드는 아이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0명의 아이들이 그야말로 ‘떼를 지어서’ 논다. 동네 놀이터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노는 아이들과는 그 스케일이 다르다. 꺄르르르 뒤집어지게 웃으면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노는 어린이들! ⓒ스튜디오 그레인풀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노는 어린이들! ⓒ스튜디오 그레인풀

내가 상상한 초등학생 둥이들의 미래에는 배움과 휴식밖에 없었다. 내 퇴근 전까지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뭔가를 배우고 있으면, 내가 최대한 빨리 퇴근해서 아이들이 집에서 쉴 수 있게 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놀이. 내가 빠뜨린 건 놀이였다.

물론 아이들은 놀이의 천재들이라서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놀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친구들이 다 학원에 가니까 친구 사귀러 학원에 가는 아이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러나 도토리 마을 방과 후처럼 어른들이 아예 아이들이 놀 ‘판’을 본격적으로 짜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엔 그 판을 짜는 데 저렇게 열띠게 골몰하는 어른들도 있었던 것이다. 난 모르고 살았지만.

우리도 당장 아이들을 놀게 합시다! 오늘부터 학원에서 해방시킵시다! 이런 순진한 구호를 외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영화를 관람한 후, 맞벌이 부부들이 점점 증가하는 사회에서 어린이들을 놀게 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계획과 많은 돈이 필요한지를 절감했다.

이 방과 후 건물의 소유주는 누구일까 궁금했던 자본주의에 찌든 관객도 나였다. ⓒ스튜디오 그레인풀
이 방과 후 건물의 소유주는 누구일까 궁금했던 자본주의에 찌든 관객도 나였다. ⓒ스튜디오 그레인풀

내가 아이들이 노는 모습에 감탄을 하면서 든 매우 현실적인 의문은 이것이었다. 저 마을 방과 후 건물은 족히 3,4층은 돼 보이는데 조합 소유 건물인가? 월세를 내는 건가? 아이들이 마음껏, 실컷 놀 수 있는 판을 짜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나. 조합 소유든 임대든 건물을 유지할 돈,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이 다양하고 건전한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머리를 싸매는 교사 인력, 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대화하고 노력하는 부모들이 필요했다. 영화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그야말로 온 마을의 돈과 인력이 들러붙는 치열한 과정을 보여준다.

아이들과 함께일 때 얼굴에 행복이 뚝뚝 떨어졌던 교사 '논두렁'. ⓒ스튜디오 그레인풀
아이들과 함께일 때 얼굴에 행복이 뚝뚝 떨어졌던 교사 '논두렁'. ⓒ스튜디오 그레인풀

이렇게 쓰면 현실의 벽에 한숨만 유발하는 영화라는 오해를 심어줄 것 같아서 첨언한다.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간 극장에는 상영관 전체에 관객이 나 한 명뿐이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니, 이 좋은 걸 나 혼자 보다니!’ 하며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그 아이들과 뛰고 등산하고 산책하고 자전거 타고 요리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밥 먹는 교사들의 모습이 함께 빛난다. 직업인으로서 성실하게,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존중하며 그들과 함께 일상을 꾸려가는 교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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