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가 내신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고등학교가 내신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3.02.1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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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육아] 평준화 지역 고등학교 입학 배정 소식을 듣고

1월 9일 중학교 졸업 이후 기다리기 진이 빠진다고 느낄 때쯤 예비 고1 아이의 경기도 평준화지역 고등학교 입학 배정 결과가 발표되었다. 지난 1월 31일이었다.

휴. 이제 끝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대입이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이가 사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타 지역 고등학교 배정을 원했기에 더 마음을 졸였던 것 같다. 발표 하루 전날 아이가 말했다.

“동그라미(가명) 고등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어.”

나 역시 그랬다. 내신 따기가 만만치 않다는 이야길 많이 들은 학교라 걱정이 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아이가 원하는 학교에서 공부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이 과외 선생님에게 이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머니, 아이 학교 어떻게 되었어요.”

“아, 네… 동그라미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어요.”

“네? 아….(왜 그런)… 전 세모(가명) 고등학교에 지원했다고 들었는데…”

“아니, 그게… 처음부터 이 지역 학교에는 생각이 없어서 타 지역 학교로 지원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목소리가 왜 그렇게 안 좋으세요?”

“아니… 어머니. 그 학교 시험이 정말 자사고급으로 문제가 어려워요. 내신 생각해서 세모(가명) 고등학교 가면 더 좋았을 텐데 왜…”

“아는데… 그래도 아이가 원하니까… 저도 모르겠어요. 이제부터는 아이 몫이죠.”

“아, 어려울 텐데… 여하튼 알겠습니다.”

성적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꿈이든 사람이든 성적보다 더 중요한 걸 발견하는 학창 시절이 되길 엄마는 바라고 또 바란다. ⓒ베이비뉴스
성적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꿈이든 사람이든 성적보다 더 중요한 걸 발견하는 학창 시절이 되길 엄마는 바라고 또 바란다. ⓒ베이비뉴스

그러니까 내가 해석한 선생님의 말은 이런 거였다. 아이를 대학에 보내겠다는, 아니 아이의 대학 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엄마가 아이 말만 믿고 내신 따기 어렵다는 학교로 지원하겠다는 것을 말리지 않고 뭐 했냐라는. 내신 받기 좀 더 수월한 곳도 있는데... 그러나 어쩌랴. 학원은 안 다녀도 된다는 아이 말만 믿고 중학교 3학년까지 학원을 보내지 않은, 나는 이미 그런 엄마였던 것을. 물론 그러다가 낙하하는 영어 성적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중3 여름방학에 개인 과외 열차 꼬리칸에 탑승하게 된 사연이야 글로 따로 써도 될 만큼 버라이어티 하지만.

그리고 보니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도 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 왜 아이 말만 듣고 학원을 보내지 않았냐는. 그래도 그때는 아이가 성실하기만 하면, 시키는 대로 잘 따라와 준다면 늦지 않았다고 희망을 주셨는데... 지금은 왜 그러시는 거예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랬는데요.

이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나의 중3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고입 시험이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이 30년 가까이 되는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너, 사실 이 학교 갈 점수가 간당간당한데 내가 너 믿고 원서 써주는 거다. 그러니까 열심히 해라.”

떨어지면 후기고를 가야 하는데 선생님은 뭘 믿고 그 고등학교 원서를 써주신 걸까. 지금 생각해도 모험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다행스럽게도 시험에 붙었다. 그후 고등학교 3년 내내 롤러코스터 같은 성적을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나의 미래를 낙관했다. 꿈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버틴 시간이었달까.

대학 입시 결과는 역시나. 원하는 전공은 아니었지만 그 대신 대학신문사를 찾아가 수습기자부터 편집장까지 3년을 학생기자로 활동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나와 맞는지 충분히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이 일을 꽤 좋아하고 졸업 후에도 계속해보고 싶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제일 중요한데, 오래 함께 하고 싶은 좋은 선후배들도 만났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쓰리게 좌절한 다양한 경험은 놀랍게도 무슨 일이든 크게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주었다. 어떻게든 될 일은 된다는. 안 되면 말고. 시간을 되짚어봐도 해도 안 된다고 섣불리 포기하기보다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요령도 생기겠지라는 마음으로 버틸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일까? 나도 했으니까, 내 아이도 잘 견뎌줄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근성이 아이의 DNA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고 있을 거 같아서.

그리고 고등학교 생활이 내신 따는 게 전부는 아니지 않나(어딘가에서 이 엄마 아직 멀었네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고등학교 시절의 내 성적, 반 석차는 잘 기억나지 않아도 시험 끝나면 친구들과 극장으로 달려가서 본 영화, 단골 피자집, 늘 가던 매점, 고3 선배들 빠진 빈 교실에서 몰래 먹은 호박죽 같은 것들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광고회사 에세이 쓰기 대회에 제출할 원고를 붙들고 문학 선생님과 씨름했던 일이나 무작정 중앙일보 편집국을 찾아가 편집기자를 만난 일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쓰고 보니 내가 편집기자가 된 것은 운명이었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나만 아는 그 시간들은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다.

과외 선생님의 말처럼 이번 아이의 선택은, 대학 입시 측면에서는 무모한 진학이 될지도 모르겠다(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아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학교 배정 소식을 들은 아이는 꽤 기분이 좋아 보였으니까. 벌써부터 동아리는 밴드부로 할지 말지, 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뭘 하는지 알아보고 있으니 말이다. 예비소집일에는 처음 학교에 가는 아이처럼 설레는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뭘 더 바라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 꺾이지 않는 마음이랬다. 성적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꿈이든 사람이든 성적보다 더 중요한 걸 발견하는 학창 시절이 되길 이 엄마는 바라고 또 바란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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