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여기에 물고기 많아~ 앗! 잡았다!”
“나는 4개나 잡아먹었어!”
지난 21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구립 보듬손어린이집(원장 이순희) 놀이방. 빨간 리본에 노란 부리와 발을 단 펭귄들이 옹기종기 모여 물고기를 잡느라 여념이 없다. 새하얀 얼음이 가득한 남극의 얼음나라에 모인 펭귄들은 다름 아닌 보듬손어린이집의 해님반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각자 자석이 붙어있는 낚싯대를 들고 낚시터에 모여, 클립이 붙어있는 물고기 모양의 과자를 낚시한다. 자석과 클립이 착 달라붙는 순간, 아이들은 “잡았다!”는 환호성과 함께 한쪽에 마련된 모닥불에 고기를 굽고 꼬치에 끼워 맛있게 먹는다. 신난 아이들은 물고기를 잡아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교사들의 입에 직접 넣어주기도 한다.
이날 진행된 프로그램은 '뒤뚱뒤뚱 펭귄'. 만 3세(우리 나이 5세) 장애아동통합반인 해님반(비장애아 12명, 장애아 3명)이 한 달에 두 번 정도 실시하는 장애아동통합 인성교육 프로그램인 대그룹 활동 '너랑나랑 마루놀이'로, 해님반 아이들 모두가 놀이를 통해 신나게 화합하는 자리다. 대그룹활동에는 통합보육이 필요한 만 1세(우리 나이 3세) 병아리반의 박민우(4·가명) 군과 이지훈(4·가명) 군도 참여하고 있다.
한 아이가 낚시터 안에서 “발 담그고 있으니까 시원해요!”라고 외치자, 모든 아이들이 낚시터로 들어가 발을 첨벙첨벙 흔드는 흉내를 낸다. 장애아, 비장애아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이유다.
이날 프로그램을 진행한 교사는 장애아동통합보육교사(2명)와 일반보육교사, 파견특수교사 등 총 4명. 모든 교사들은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소통하며 놀이를 진행하는데 신경을 썼다. 특히 비장애아보다 서툴 수 있는 장애아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모든 아이들의 행동을 세심히 살폈다.
‘올바른 인성교육’을 최종 목표로 2005년 운영을 시작한 보듬손어린이집은 지난해부터 만 1세반과 만 3세반에 장애아동통합반을 따로 만들었다. 아이들의 올바른 인성교육을 위해선 장애아동통합보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에서다. 이순희 원장은 “한 논문을 통해 장애아동통합보육이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좋은 영향을 주고, 주위를 배려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장애아동통합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는 왕따를 하지도 당하지도 않는다”며 장애아동통합보육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처음에는 학부모의 반대가 심할까 우려했었는데, 장애아동통합보육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비장애 아이들은 인지·언어 등의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를 배려하면서 크게 성장해갔다. 이는 장애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원장은 “장애아동통합보육반 아이들이 다른 반 아이들보다 더 활발하고 밝다. 통합반을 통해 아이들이 같이 공존해가는 모습이 참 예쁘다. 어떤 부모님들은 아이를 통합반에 넣어주길 바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배려는 생활 속에서 항상 묻어난다. 대그룹활동을 마치고 신발을 신고 나가려던 강성진(6·가명) 군은 신발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서 있는 박민우 군을 위해 흐트러진 신발을 정리했다. 이를 본 교사가 “성진아, 민우 신발 신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 민우 혼자 신발 잘 못 신거든”이라고 칭찬하자, 성진이는 으쓱한 듯 민우의 신발 신는 걸 더 열심히 도왔다.
아이들의 배려는 특히 장애아와 비장애가 1:1로 함께 활동하는 소그룹활동을 할 때 더욱 빛을 바란다. 소그룹활동은 현장학습을 가거나 소풍갈 때 비장애아이들이 장애아이들과 짝을 지어 활동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린이집 도서관으로 잠깐 이동하거나 외부 일정에 따라 이동할 때도 짝 끼리 손을 잡고 다니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이밖에도 반 아이들이 교사들과 함께 장애아이의 집에 직접 방문해 함께 놀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 같은 장애아동통합보육은 현재 보듬손어린이집이 진행하는 아이 인성교육의 일부분이다. 보듬손어린이집의 인성교육은 크게 아이, 부모, 교사 교육으로 나뉜다. 아이 인성교육은 장애아동통합보육을 비롯해 매일매일 진행되는 기본생활습관, 다름을 이해하는 다문화교육, 도서교육, 지역사회 연계 교육 등으로 구성된다. 최근에는 지역사회 연계 교육의 일원으로 교사와 아이들이 쌀과 김을 챙겨 마을의 독거노인을 찾아가 인사드리고 안마도 하며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부모 인성교육은 부모들이 동화도우미, 도서도우미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언제든 어린이집에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또한 매월 부모 인성교육 자료가 가정통신문으로 보내진다. 아울러 교사 인성교육은 매월 1회 원내 동료장학, 전문강사 초청 강연, 공연관람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교사 간의 협력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실시된다.
보듬손어린이집은 교육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2012년 인성교육 실천 우수어린이집 선정에서 서울 지역 최우수 어린이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보듬손어린이집에 입학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아이만 1200명 가까이 된다.
체계적인 인성교육은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바르게 정립시켜 나갔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안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도 먼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고 있다. 어른을 보면 공손하게 인사하라고 배운 가르침에 따른 행동이다. 이 원장은 “인성교육이 잡히지 않으면 아이가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라도 빛을 발할 수 없다. 어린이집의 교육은 인성교육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아동통합보육을 마친 아이들이 해님반에 모여 선생님이 읽어주는 동화책에 빠져 있는 동안 김민서(5·가명) 양은 다른 선생님과 함께 점심식사 준비를 했다. 민서는 이날 일일 급식도우미 역할을 맡았다. 선생님과 함께 교실 밖에 놓인 식판과 반찬 등을 교실로 옮기는 게 민서의 역할이다. 아이들 스스로 급식도우미를 자청하기도 하고, 교사가 직접 기분이 안 좋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좀 도와주는 건 어떨까?”라며 급식도우미 활동을 유도하기도 한다.
민서는 선생님이 건네준 식판 몇 개를 들고는 씩씩한 걸음으로 반으로 향했다. 선생님을 돕는 게 뿌듯한 지 식판을 내려놓기 무섭게, 또 다른 식판을 들고 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남을 배려하고 돕는 마음을 가진 민서, 그리고 밝고 씩씩한 민서의 같은 반 친구들 모습을 통해 올바른 인성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아동과 함께 어울려 같이 노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