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엉덩이 밀어 드릴게요”
“제가 엉덩이 밀어 드릴게요”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3.03.0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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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육아] 나의 에너지를 넘겨주는 일이 주는 감동

어쩌다 이런 말이 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제가 엉덩이 밀어 드릴게요”라니. 뭐라도 쓰고 싶은 글이 있으면 쓸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드리겠다는 마음이었는데, 말하고보니 이런 문장이 되어 있었다. 내가 한 말이지만 말하는 순간에 알아챘다. 기막힌 비유라고. 이런 건 적어야 해. 지금 당장. 

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럴 때 있지 않나? 일부러 준비해둔 말인 것처럼 누군가 들어도 썩 괜찮은 표현이라고 생각할 법한 그런 말을 나도 모르게 해버렸을 때. 글쓰는 사람으로서 이건 좀 살릴 만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밀려들 때가.

잊어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종이에 메모했다. 그분도 자신을 계속 지켜봐주고 기회를 줘서 고맙다며 내가 한 말을 따라한다. “엉덩이 밀어주겠다고 하셔서 고맙습니다.” 나만큼이나 그 말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엉덩이 밀어주는 그 장면을 어디서 봤더라. 맞다.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계주에서 자주 봤다. 내가 이 종목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기가 힘들다. 심장이 쫄려서. 선수들이 추월하거나 코너링을 할 때 넘어지는 상황이 되면 내가 그런 것처럼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아유, 저걸 어째..." 실력이 아닌 이유로(넘어지지 않는 것도 실력이라면 할 말 없다만), 불가항력의 이유로 순위에서 밀려나는 선수를 보는 것은 힘들 때가 많았다. 대회에 나서기까지 많은 시간 동안 고되게 훈련했을 거라는 걸 아니까. 실제로 선수 부모들은 애가 타서 경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하던데, 가족은 아니지만 지켜보는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계주에서 엉덩이를 밀어주는 장면을 볼 때는 달랐다.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1초 차이로도 메달 색이 바뀌는 살벌한 경기에서 그렇게 다정한 플레이라니. 올림픽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알아보니 쇼트트랙 계주 경기시 선수 교대할 때 자주 본 엉덩이 밀어주기는 규칙에 없는 일이란다. 

엉덩이를 잘 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베이비뉴스
엉덩이를 잘 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베이비뉴스

쇼트트랙 계주 경기시 선수 교대 규정에는 그저 ‘교대는 터치로 이루어진다’고만 나온다고. 규칙에도 없는 이 행동을 규칙인 것처럼 하는 이유는 그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달리던 선수가 추진력을 유지할 수 있어 운동 관성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어서란다.

쇼트트랙 뿐만 아니라, 인라인스케이트 같은 계주 경기 때도 이 엉덩이 밀어주기 방법을 쓴다. 이 규칙이 다정하다고 느낀 건 달리던 선수의 추진력 즉 에너지를 동료에서 넘겨주기 때문이다. 줄 수 있는 한 힘껏, 승리를 바라는 나의 에너지를 상대에게 넘겨주는 일. 그 모습이 지극한 감동을 준다. 그걸 보는 나까지. 줄 수만 있다면 나의 에너지까지 얹어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러다가 생각난 질문 하나. 엉덩이를 기술적으로 잘 밀어주는 사람도 있을까. 후배들일까, 선배들일까, 동기들일까. 나이를 떠나 힘이 센 사람이 잘 밀어줄까, 그런 건 상관 없이 요령 있는 사람이 잘 미는 걸까. 방법을 알 수만 있다면 나도 엉덩이를 잘 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준 에너지를 받은 사람이 거침 없이 앞으로 나가는 걸 보는 일도 꽤 멋진 일일 것 같다. 내가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직은 자신이 글을 잘 쓰고 있다는, 원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겸손이든 실력이든 간에 누구든 자신감을 가지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그들의 엉덩이를 힘껏 밀어주고 싶다. 나는 그들의 가능성을 아니까. 

그리고 특히 요즘의 나는 그 누구보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큰아이의 엉덩이를 잘 밀어주고 싶다. 막힘없이 시원하게 자유롭게 얼음판 위를 달리는 선수들처럼 나의 에너지를 받아 자신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기를 바라서다. 그러니 나도 내 에너지를 평소에 잘 쌓아두어야겠다. 나의 힘이 필요한 사람들, 나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잘 밀어줄 수 있도록.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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