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와서는 한참 놀다가 사라졌다. 분명 부엌 근처에서 놀고 있었는데 어리둥절해서 작은 아이 이름을 부르니 식재료를 넣어놓은 팬트리 안에 숨어있다가 폴짝 튀어나온다. 깜짝 놀라서 “왜 숨어 있었어? 엄마 놀라게 하려고?”하고 웃었더니 “아니, 유치원에서 연습한 거 한번 더 해보고 있었어”하고 대답 하는 것 아닌가. 자세히 물어보니 혹시라도 발생할 총기 사고를 대비해서 아이들 유치원 교실에 두꺼운 문의 옷장 같은 것이 생겼는데 반 전체 아이들이 그 안에 숨어서 아무 소리 내지 않고 참고 있는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마치 화재 대비 대피 훈련을 하듯이 총기 사건 대비 훈련을 주기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득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개인적으로 미국 생활이 제일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총기 사건과 인종차별 관련 문제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이들이 가장 안전해야 할 공적 장소인 유치원에서조차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 총기 사건은 모든 엄마들의 공포의 대상이다. 지인의 딸은 아빠가 어둠 속에서 반짝 거리는 운동화를 선물해줬더니 만약 총을 들고 누군가 유치원에 들어왔는데 자기 운동화가 빛나서 숨어있던 자기가 들키면 어떻게 하냐면서 그 선물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같은 반 엄마들 모두 서로 이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울분을 어디에 돌려야 할지 몰라 함께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있다.
참 무섭게도 미국에서 총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쉬운 일이다. 물론 총기 소유가 가능한 허가서를 받아야하지만 의외로 그 절차가 복잡하지 않고 집 안 내에 총기를 보관하니 어린 청소년들이 이에 접근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얼마 전에 동네 번화가 쪽에 생긴 스포츠 용품점이 있길래 테니스 라켓을 볼까 하고 오랜만에 구경을 갔더니 넓은 가게 한 면 전체가 사냥용 총과 권총으로 가득하길래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이렇게 총기에 대한 노출이 일상적이다 보니 오히려 총기 관련 이야기나 언급이 터부시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한국에서 이년간 지내다 온 큰 아이가 학교 미술 시간에 용사가 나오는 그림을 그리다가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렸는데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에서는 절대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리면 안된다고 주의를 받았던 경험이나 , 실제 총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 장난감은 절대 판매도 소지도 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면들이 그렇다. 남자 아이들끼리 유치원에서 장난으로 빵빵 총 쏘는 시늉을 하면서 놀아도 선생님께 불려가서 한참 혼나는 일도 생긴다. 일상 생활에서 총을 접하는 경험이 거의 없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총이란 그저 막연한 존재, 알 수 없는 무기의 일종이지만 미국인들에게 생활에 맞닿아있는 직접적인 공포이자 위험인 셈이다.
지난 2월에도 미시건 주립대학(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8명이 사상을 입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22년에만 647건의 대량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아직 2023년이 2달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67 건의 대량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그나마 일반적인 총기 사건은 포함조차 되지 않은 숫자이다. 다수가 사상을 입은 사건만 포함했는데도 벌써 60건이 넘었다. 어린 아이들조차 총기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공포인지 미국인들 다수도 인지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정책도 방지법도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끝없이 답답한 하루 하루이다. 안전이 늘 최우선인 미국 사회 분위기에서 어째서 총기 문제는 늘 되돌이 표인지 마음이 참 많이 무겁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낙천적인 엄마이기도 하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