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원에서 글을 씁니다
요가원에서 글을 씁니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3.03.1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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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게으름과 헤어질 결심

지난해 9월, 코로나가 나아진 틈을 타서 요가원 3개월 회원권을 끊었다. 주 3회였고 가급적 빠지지 않고 다니려고 했지만 거른 경우도 많았다. 운동보다 자주 쉰 건 글쓰기였다. 지난해 가을이 되기 전까지 거의 단행본 두 권 분량을 1년 가까이 썼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드문드문 투고를 하다 말았고 공모전에서도 떨어졌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3권의 책은 그저 행운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첫 책을 낸 후로 ‘회사 다니면서 2년에 한 권’이라는 야심 찬 포부를 세웠건만. 계획대로라면 올해 한 권의 책이 계약되어야 했는데 말이다. 

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왜 책을 내야 할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 자연히 내 글을 쓰기보다 딴짓하는 시간이 늘었다. 

평소 궁금했던 노래 가사 쓰는 법을 배우고, 완성된 가사를 곡에 붙여 녹음도 해봤다. 늘 그렇듯 좋은 책을 가까이하고 여행을 다니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더 많이 읽으면서 하루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6개월 정도 보내고 2023년을 맞았다. 새해 이틀째 되던 날, 나는 다시 요가원에 왔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게으름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이번에는 1년 회원권을 끊었다. 마침 오픈 1주년 기념이라 수강료 할인이 많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목돈을 들여 장장 1년이라는 긴 시간 운동을 결심한 데는 사실 다른 계획이 있어서였다. 바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요가원과 글쓰기가 무슨 상관이냐고?” 지금부터 그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

1년 회원권을 끊기 전, 3개월 정도 요가원을 다니면서 보니 수업 시간 앞뒤로 조금 일찍 오거나 늦게 가면 글 쓰는 시간을 30분 정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매일 운동을 온다면 매일 글을 쓰게 되겠지! 후훗). 요가 수업은 한 번 시작하면 중간에 들어가기가 상당히 애매한 강의실 구조라 정시에 시작하고 문을 닫는다.

차분한 공간에서 혼자서 글 쓰기. ⓒ베이비뉴스
차분한 공간에서 혼자서 글 쓰기. ⓒ베이비뉴스

그러니까 다음 수업 시간 전까지 오기만 하면 나는 대기 공간에서 혼자 글을 쓸 수 있었다. 요가원은 언제나 차분한 공간이므로 내가 글을 쓰는데 방해를 받을 만한 것은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카페의 음악과 다른 손님의 대화를 내가 듣게 될 이유도 전혀 없었다. 그러니 내가 이 시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을지는 상상에 맡기련다.

수업 시간보다 일찍 못 온 날에는 수업이 끝난 후에 “저 조금만 있다가 가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하고 30분 정도 더 머물렀다가 글을 쓴다. 대단한 주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날 쓰고 싶은 문장을 주욱 쏟아낸다. 하루 종일 입 닫고 일만 하다가 마음 속 이야기를 다 꺼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을 만나 털어놓듯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거미가 거미줄을 지어내는 것처럼 그렇게 막 뽑아 쓴다.

앞뒤 재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써 나가다 보면 글의 얼개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된다. 그 후로는 틈틈이 퇴고하면 된다. 마감은 어차피 내가 정하는 것이니 독자에게 보일 정도가 되었다 싶을 때까지 고친다. 불필요한 단락을 쳐내고, 문단을 나누고 설명이 필요한 문단은 채워 넣고. 그렇게 3개월째 나는 길게는 30분, 짧게는 10분, 15분씩 글 쓸 시간을 확보했다.

공모전에 냈던 글을 다시 고쳐 쓰면서 연재 '제목의 이해'를 시작했고, 외부 칼럼도 꾸준히 쓸 수 있었다. 이게 다 요가원에서 운동도 하고 글도 쓴 결과다. 자율적으로 매일 글을 쓰기는 참 어렵다. 그럴 때 뭐든 나를 옭아맬 '정신의 올가미' 하나 정도는 마련해 두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왜 책을 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나 스스로 찾은 것은 아니고 좋은 문장을 발견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 작가는 ‘가진 걸 내어주는 마음 그리고 돌려놓는 마음으로 책을 내고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나에게도 작은 용기를 주었다. 나도 가진 걸 내어주고 싶다. 아껴서 뭐하겠는가. 그 마음이면 계속 글을 써도, 그것이 책이 되어도, 혹은 그렇지 않아도 충분하다 싶다. 현장에 가는 것만이 봉사겠는가. 나는 글을 지어 봉사하련다.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가 닿을 것이라 믿으며.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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