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학생 부모의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단상
미국에 사는 학생 부모의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단상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3.05.0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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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미국 엄마가 회상하는 학생 엄마로서의 경험

몇 주 전 어느 강의 시간, 강의를 마치고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맨 뒤에 앉아있던 남학생 하나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수업 내용에 대해 질문이 있어서 그러나 싶어서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었더니 남학생은 망설이다 성큼성큼 내 쪽으로 걸어왔다. 평소에 수업은 열심히 듣지만 말수가 많지는 않은 학생이어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많지 않았던 학생이었다. 학생은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기가 곧 아이 아빠가 될 예정인데 앞으로 한 2주간 수업을 빠져도 이해해 줄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다. 그 학생은 다른 또래 학생보다는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그렇더라도 이십대 중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공부를 했었다가 4년제 학사 공부를 할 생각으로 내가 가르치고 있는 대학에 얼마 전 편입을 한 상태였다. 작년에는 결혼도 했으니 인생의 여러가지 중요한 일들이 최근에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셈이었다. 학생은 지난 번에 한번 수업을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아내의 산부인과 정기검진 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빠졌던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공부하는 학생 엄마를 도와주던(?) 우리 집 아이의 모습. ⓒ이은
공부하는 학생 엄마를 도와주던(?) 우리 집 아이의 모습. ⓒ이은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역시 학생 신분(박사과정생이긴 했지만)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다니고 수업을 듣고 또 강의 조교로 강의를 가르쳤던 내 경험이 다시금 떠올랐다. 만삭으로 펭귄처럼 뒤뚱뒤뚱 걸으면서 강의실을 옮겨 다니 던 일, 추위에 떨면서 한시간에 한번 오는 버스를 기다려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받으러 다닌 던 일들이 이제는 모두 추억이 돼 버렸다. 나는 흔쾌히 아무 걱정 말고 아내와 출산과 첫 육아를 함께하라고 이야기해줬다. 수업 자료는 온라인 강의 게시판에 모두 업로드 되니 추후에 잘 읽어보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학생은 2주만 지나면 다시 수업에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하고는 다른 도시에 사시는 부모님이 한달 뒤면 도와주러 오시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산모와 아이가 우선이니 부모님이 오시기 전 4주 동안은 수업에 나오지 않고 아내와 아기에게 집중하는 것도 좋은 생각 같다고 조언을 해줬다.

나 역시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이 곳 미국 교수님들의 배려와 당시 대학 노동조합이 만들어 놓은 선례로 큰 문제없이 학기 중에 아이를 출산하고 큰 문제 없이 강의를 쉴 수 있었다. 조교와 같이 미국 대학에서 근무하는 경유에는 대부분 유급으로 6주, 무급으로는 12주까지 엄마와 아빠가 모두 출산 휴직을 할 수 있다. 생물학적 부모가 아니더라도 법적 보호자인 자가 자신의 법적 아동이 태어났을 경우 같은 기간을 부모의 자격으로 쉴 수 있다. 다만 수업을 듣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수업 내용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쉴 수는 없는 입장일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부모 역시 부모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모두 누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또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선배 부모로서 최대한 아이와 아내와 중요한 순간을 함께 나누고 관계를 공고하는 것은 비단 강의 하나를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소중한 배움이기 때문이다. 학생에게 온라인으로 질문을 해도 상관없으니 돌아 올 수 있을 때 돌아오면 된다고 이야기 해주고 나서 2주가 좀 지났을 때 학생이 다시 수업에 나타났다. 다시 수업에 나타난 첫 날 수업이 끝나고 나서 학생이 다시 슬그머니 다가온다. 반가운 마음에 아내와 아이는 건강하냐고 물어보니 갓 아빠가 된 학생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교수님, 제 아들 사진 좀 보실래요?”

학생이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낸다. 학생의 눈 밑에는 다크 서클이 생겨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학생이 내민 전화기 속의 아기는 눈과 코가 아빠를 꼭 닮아있었다.

“너무 너무 귀엽네요. 축하해요!”

감사하다고 말하며 활짝 웃는 이 학생은 앞으로도 밤잠을 설쳐가며 과제를 하고 시험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잠시 일을 쉬고 있다는 학생의 아내는 산후 조리원도 없는 이 곳에서 아직 회복이 덜 된 몸으로 고군분투 육아를 해야할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부모들이 특히 엄마들이 그 많은 기쁨과 축복과 사랑에 행복해하겠지만 동시에 앞으로도 겪게 될 많은 예측 불가능한 일들, 극복하기 힘들 일들, 그리고 제도적으로 막혀져 있는 갑갑한 현실들을 마주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인류학적 문화상대주의로 상대방의 입장을 상대방의 맥락에서 최대한 이해해주는 것, 가능한 모든 제도 안에서 최대한의 기회를 주는 것. 작지만 그것 뿐일 것이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그리고 또 다른 어느 곳에서든 성적이나 실적 그리고 어떤 이윤 보다도 더 중요한 우리의 미래를 키우는 일이니까. 생명에 대한 일이니까.

*칼럼니스트 이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낙천적인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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