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안은선 기자】
8살 어린 아이가 계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숨지게 된 ‘울주 아동학대 사망사건’. 이 양이 사망에 이르게 된 배경을 조사해봤더니 아동보호체계의 제도적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관련 기관의 소극적 대처도 문제점으로 분석됐다.
6개 민간단체와 국회의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 위원회’(위원장 남윤인순 민주당 국회의원, 이하 위원회)는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의 조사와 제도개선 제안에 대한 중간 발표회를 갖고, 그 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24일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8살 이 양이 함께 살던 계모 박 씨의 학대로 숨진 뒤 다음달 25일 결성된 위원회는 약 2개월 간 24개 기관과 피해아동과 접촉한 적이 있는 3개 지역 아동보호기관 등 관련기관과 개인 33명을 대상으로 서면조사 및 면담조사를 진행했다. 이와 더불어 복지부와 법무부, 교육부, 경찰청, 법원 행정처 등 5개 중앙부처에 대한 조사도 실시했다.
그 결과, 위원회는 가해자의 이 양에 대한 학대가 약 3년 반 동안 지속됐으며 2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개입해 모두 22차례의 개입 시도가 이뤄졌으나 ▲아동보호체계의 제도적 허점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소극적 개입 ▲의사·교사 등 신고의무자의 역할 미흡 ▲학대 예방 모니터링 체계와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인해 이 양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 죽음 부른 아동보호체계 허점과 소극적 대처
아동보호체계의 제도적 허점과 관련해 먼저 제기된 문제는 신고자가 ‘지속적 학대’로 신고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현장조사를 통해 학대로 판정한 뒤에도 원가정 보호조치를 내린 부분이다.
이에 대해 위원회 김희경 사무국장(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당시 학대의 재발 가능성을 측정하는 지표에 결함이 있었고 기관에서 학대의 심각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으며 상급자의 체계적인 슈퍼비전이 미흡했다”며 “여기에는 학대행위자가 기관의 개입을 거부할 때 이를 강제할 수 없는 제도적 한계도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둘째로 문제가 된 부분은 가해자와 아동의 관계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친모 소재를 찾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김 사무국장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가족관계등록부 열람 권한이 없어 가족관계 파악에 제약이 있는데다, 이혼 가정에서 학대 발생 시 비양육부모의 소재를 파악하는 절차가 복잡해 응급대응에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친모 소재 파악을 위한 경찰과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도 문제”라며 “학대 행위자의 이혼이 확인되고 다른 사람이 키우고 있다면 아동학대 사실을 비양육 부모와 직계존속에게 비밀리에 고지하는 등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셋째, 포항에서 인천으로 사례가 이관되는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당시에는 관할 지역이 바뀔 경우 전산시스템 상 종결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었는데 해당 사건이 어떤 종류의 종결인지에 대한 양 기관의 해석 차이가 존재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의사소통이 미흡했다는 것. 또한 이후 과정에서 학대행위자가 상담을 거부할 때 이를 강제하고 개입할 권한이 없었던 점도 개입 중단에 영향을 끼쳤다는 게 김 국장은 설명이다.
◇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 대한 교육 미흡
아동보호체계의 제도적 허점과 관련 기관의 소극적 대처 외에도 신고의무자의 역할이 미흡한 것도 이 양의 죽음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위원회의 분석이다. 위원회의 조사결과, 신고의무자의 신고와 의무 불이행 시 처벌이 법에 규정돼 있으나 실제로 이를 위한 고지나 교육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 사무국장은 “이 양이 마지막으로 거주한 지역에서 이 양이 다녔던 학원, 유치원, 학교, 병원의 신고의무자 중 신고의무자 교육이나 아동학대예방 교육을 받았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또 이 양 사망 이후 신고의무자의 의무 불이행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으나 조사 절차와 주체를 둘러싼 혼란, 신고 의무 불이행 사실의 입증 어려움 때문에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위원회 이명숙 위원(변호사)는 “이 양의 경우 계모의 학대로 화상을 입고 병원치료를 받게 됐을 때 박 씨는 아이가 샤워하다가 화상을 입었다고 설명했으나 아이의 상태는 한 눈에 봐도 기본 의학서적에 나온 화상 사진과 같았다. 의사가 좀 더 면밀하게 관찰했더라면 이게 단순 사고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이렇게 됐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며 “교사나 의사 등 신고의무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아동학대 신고의식이 확대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중앙정부와의 면담을 통해 학대행위자에 대한 강제적 개입 등은 9월 시행될 아동학대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으로 대폭 강화됐으나,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등 처벌보다 학대를 예방하고 재학대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은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31일 통과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학대행위자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반영된 바 있다. 하지만 특례법에 근거해 책정된 2014년 예산은 전무하다. 아동보호예산으로 증액을 요청한 436억 원이 예산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위원회 정익중 부위원장(이화여대 교수)은 “이번 사건은 민간단체,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조사를 진행했으나 향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는 정부가 직접 진상조사를 실시해 현실에 맞는 구체적 대책을 마련, 보완해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가정 내 폭력이나 처벌을 개별 가족의 문제, 훈육으로 치부하면서 폭력에 대해 관대했던 우리 사회의 태도가 8살 아이의 아픔과 상처를 외면하게 만들었다”면서 “가정 내 체벌도 폭력으로 간주하고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국회의원 남윤인순 위원장은 이날 조사결과 발표 후 오후 2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아동보호체계의 근본적 개혁을 촉구하는 2만 6543명의 서명 명부와 진상조사 보고서 초안을 전하면서, 복지부가 수립 중인 아동보호종합대책에 이번 조사 결과와 위원회의 제안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