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죽인 기업들, 사과 한 마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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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4.08.26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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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가습기살균제 기업 살인죄 고소하던 날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문 앞. 인체에 안전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를 건강을 지키려면 꼭 사야하는 제품인 것처럼 홍보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회사들은 사람을 죽인 기업으로,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살인기업을 처벌하라”고 목청을 높이는 10여 명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소속으로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 아내, 가족을 잃거나 겨우 살아난 가족을 지키고 있는 피해자들이었다. 이 중에는 직접 피해를 입어 평생 산소 호흡기를 꼽고 살아야 하는 이도 있었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15개 기업을 살인 기업으로 형사고소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고소인단은 모두 56가족 109명으로, 이중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은 77명이고 나머지는 가족들이었다. 직접 피해를 입은 이들 중 20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날 기자회견에 동참한 최지연(36) 씨는 처음으로 공개적인 자리에 나와 피해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냈다. ‘내 아이와 내 아내가 하늘에서 보고 있다’는 기자회견 플래카드의 문구처럼 최 씨는 첫 아이를 하늘나라에 보냈다. 2007년 태어난 첫째는 그해 가을 무렵부터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에 의해 폐 손상을 입어 첫 생일이 되던 날에 죽고 말았다. 당시 간질성 폐렴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를 먼저 보낸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최 씨는 “이제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8월 31일 원인미상의 폐손상 사망 사건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 햇수로 4년이 됐지만, 아직까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가해 기업들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피해자에 대한 공식 조사를 실시해 올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손상 의심사례에 해당하는 361명 중 피해 가능성이 높은 168명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나중에 기업의 책임이 명확해지면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답답한 심정이다. 최 씨는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쏟아냈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던 27개월 된 막내아들은 엄마를 위로라도 하듯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한참동안 엄마 곁을 지켰다.

 

첫 아이를 가습기살균제로 잃은 최지연(36) 씨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사건 재수사촉구 및 제조 판매기업 형사고소 기자회견을 갖는 가운데 생후 27개월된 셋째 아이가 내민 손을 잡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첫 아이를 가습기살균제로 잃은 최지연(36) 씨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사건 재수사촉구 및 제조 판매기업 형사고소 기자회견을 갖는 가운데 생후 27개월된 셋째 아이가 내민 손을 잡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살인 기업’으로 고소한 15개 기업은 ▲옥시레킷벤키저 ▲(주)한빛화학 ▲롯데마트 ▲용마산업사 ▲홈플러스 ▲크린코퍼레이션(주) ▲(주)버터플라이이펙트 ▲아토오가닉 ▲코스트코코리아 ▲(주)글로엔엠 ▲애경산업 ▲SK케미칼 ▲이마트 ▲GS리테일 ▲(주)퓨엔코다.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을 맞아 2012년 8월 3일 피해 유족 9가족이 10개 가해업체를 과실치사 혐의로 형사고발했지만, 당시 검찰은 피해판정을 기다리겠다는 이유로 사건 조사를 미루다가 형사고발 6개월 뒤 기소중지로 처분결과를 통지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에 대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라며 한 목소리로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피해자들은 서울지검 민원실을 찾아가 15개 기업에 대한 형사고소장을 제출했다. 산소호흡기를 꽂은 피해 당사자들은 호흡이 곤란한지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섬유화 피해를 입은 아이의 아버지 이세섭(40) 씨는 “살 수 있는 가망성이 30%였던 아이가 다행히 살아났지만, 피해에 따른 부작용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나중에 자라면서 어떤 증상이 다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걱정을 놓을 수가 없다”며 “죽음으로 내몬 살인 기업은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8년 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세 살배기 딸을 잃은 백승목 씨는 “제대로 된 사과, 그리고 엄정한 법 집행에 따라 가해기업이 징벌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저희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정부의 공식 발표 3년을 맞아 지난 25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회사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28일에는 서울역 광장 계단에서 가습기 살균제 희생자 추모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이며, 31일에는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3년, 살인 기업 규탄 및 피해자 추모대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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