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 숨이 턱 막혔다. 감기로 한 달을 고생하던 차였다. 휴대폰 벨이 울렸지만 숨이 차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동생 전화를 받았다.
“숨이 차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겠어.”
2011년 5월, 임신 8개월에 접어든 신지숙(36) 씨는 으레 배가 많이 부르면 숨이 차오른다고 생각했다. 임신 중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니까…. “아기 낳으면 괜찮아지니까 걱정 마.”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뱃속의 딸을 만날 날만 손꼽았다.
숨이 막히는 고통은 계속됐다. 한번 걸린 감기는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침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 얼마나 아픈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벽에 박았다.
“원인을 알 수 없네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아기를 바로 꺼내겠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그날 밤 제왕절개로 예정일보다 빨리 딸을 출산했다. ‘우리 딸도 만나고 치료도 잘 할 수 있겠지.’
신 씨의 예상은 빗나갔다. 수술을 마치고 겨우 눈을 뜨자, 어두운 방에서 친정엄마와 동생이 자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현재 미확인된 원인미상의 폐렴으로 산모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신 씨와 같은 증상을 보인 산모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모두 감기 증세를 보이다 호흡곤란을 겪고 폐가 급격하게 굳는 폐섬유화 증상을 겪고 있다고 했다. 신 씨와 정말 똑같았다.
신 씨는 언제 잘못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 남은 중환자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갓 낳은 딸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죽을 수는 없었다. 하루에 30분 두 번, 가족과 면회했다. 아내를 보기 위해 하루를 견뎠을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뒤범벅됐다. ‘정신줄을 놓으면 정말 끝이야. 정신 똑바로 차려야해.’ 잠드는 순간마저 두려운 시간이었다.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늘 장군감이라는 이야기를 빠지지 않고 듣던 아이가 왜 이리도 아픈 것인지…. 2008년 5월, 최지연(36) 씨는 첫 딸이 하늘나라로 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서인이는 왜 그렇게 아팠던 것일까.’
처음 아이가 미열이 났을 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감기 증상으로 동네병원을 방문하니 습도 조절을 잘하라는 형식적인 처방뿐이었으니까.
큰 병원에 갔을 땐 이미 폐가 다 망가진 뒤였다. 의사는 ‘간질성 폐렴’이 의심된다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생활한지 두 달, 아이를 품에 안고 집에 돌아갈 날을 꿈꿨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엄마 품을 떠났다.
아이 낳은 달에 유독 엄마 몸이 아프다는 이야기처럼 5월, 철쭉이 만개할 때면 최 씨는 몸도, 마음도 너무나 아프다. 운명의 장난이랄까. 서인이가 떠난 날은 서인이의 첫 생일이었다. 매년 최 씨 부부는 케이크를 들고 딸이 쉬고 있는 곳을 찾는다.
“아가야, 엄마 왔어.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사랑한다, 아가야.”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김성태(42) 씨는 매일 두려움에 떨고 있다. 김 씨는 IT관련 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도 그만두고 일 년에 몇 번씩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양쪽 폐를 이식하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폐기능이 계속 떨어져 일반인의 26% 수준밖에는 안 된다. 2011년 여름, 호흡 곤란으로 쓰러졌고 단 몇 시간 만에 폐가 하얗게 굳어갔다. 폐 이식은 그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폐 이식 후 3년이 된 지금도 김 씨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신장까지 문제가 생겼다. 올해 8월 만성신부전증 3기 진단을 받았다. 폐 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많이 사용해서란다. 최근에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몸이 아프니 더욱 종교에 의지하게 됐다. 세례명은 ‘콘스탄티노’. 황제의 기운을 받으라는 뜻이다. 김 씨는 아내와 하나뿐인 딸과 함께 살 수 있다면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다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들이 왜 숨을 쉴 수 없게 된 것일까? 그리고, 어린 서인이는 왜 그렇게 빨리 하늘나라로 떠나게 됐을까? 2011년 8월 31일이 돼서야 많은 사람들이 원인도 모를 폐질환에 걸린 원인과 서인이를 죽인 범인의 윤곽이 드러났다. 범인은 집 안에 있었다. ‘살균 99.9%! 안심하고 쓰세요’라는 문구로 많은 사람들을 속인 가습기 살균제였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 겉면에는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정부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폐질환에 걸릴 확률이 47.3배나 높음이 증명됐다.
믿기 힘들었지만 사실이었다. 정부는 2012년 2월 동물독성흡입실험 결과에 따라 원인 미상 폐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최종 확정지었다.
가습기는 겨울철 건조한 집의 습기 조절을 위한 필수품으로 여겨진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 분무액의 세균을 없애주는 물질로 사용돼왔다. 이런 생활용품이 어떻게 541명의 피해자를 만들고 그중 144명(2013년 11월 1일 기준)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을까.
“내 손으로 넣은 게… 우리 아이를 죽였어요!”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아이를 잃은 한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한 말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처음 개발, 판매되기 시작했다. 사용자만 800만 명이 넘는다. 세계 최초로 우리 기업들이 만든 제품이었다.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은 PHMG(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와 PGH(에톡시에틸 구아니딘).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에게 해로운 세균(박테리아)을 죽이는 화학물질이다. 애초 카펫을 세척하는 약제였다. 이것을 가습기에 넣었고 화학물질은 물 분자와 함께 기도를 지나 폐로 들어갔다. CMIT, MIT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도 피해자를 낸 건 마찬가지였다. 해로운 세균을 죽이는 목적으로 쓰이는 독한 물질이 폐에 직접적으로 들어갔다니, 생각만 해도 오싹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허가해줬고, KC마크(국가통합인증)까지 줬다. 나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난 뒤에, 정부는 “과학 기술 수준으로는 가습기 살균제의 결함을 알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99.9% 살균 안심? 절대 안 믿어요.”
지난 22일 만난 가습기 살균제 사태 피해자 신지숙 씨는 4년 째 산소호흡기를 꼽은 채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발병 당시 낳았던 아기는 어느 새 4살이 됐다. 다행히 건강하고 예쁘게 자랐다. 반면 신 씨의 건강은 더 악화됐다. 폐 기능은 일반인의 20% 수준. 폐의 80%는 굳어서 죽었다고 보면 된다.
호흡이 어려우니 이산화탄소가 몸에 쌓여 몇 번이나 입원했는지 모른다. 일반 사람들은 호흡을 통해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 하지만 자가 호흡이 어려운 신 씨에게는 산소호흡기와 이산화탄소 배출기가 없으면 안 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신 씨. 건강을 빨리 되찾아서 폐 이식을 하고 말 것이라고, 그래서 딸 정아의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꼭 손 붙잡고 가겠노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딸의 어린이집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해 늘 미안한 엄마이기 때문이다.
“사치품, 밀수품을 사서 쓴 것도 아니고 누구나 어디서나 다 살 수 있는 마트에 가서, 생필품 코너에 가서 산 생활용품이에요. 가족들의 안전을 생각하면서 ‘99.9% 살균, 아이에게도 안심하세요’라고 쓰여 있어서 사용했단 말입니다.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서 책임감 있게 자기들 상품을 만들 거라고 믿었어요. 그 생활용품이 폐의 80%를 딱딱하게 만들고 어린 아이들을 죽이는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99% 안심’이라고 적힌 제품은 싫어요. 코로 입으로 들어가는 모기향, 스프레이 제품도 안 써요. 기업들은 안전하다고 했지만 나중에 무슨 일 터지면 ‘독성 있는지 몰랐다’고 할 거잖아요. 살충제로 무언가를 죽이면 사람의 몸에는 어떨지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딸이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이 뭔지 말이에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생활용품이 제2의,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만드는 건 아닐까?’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4만종 이상이다. 화학물질은 우리가 사용하는 생활용품 대부분에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화학물질들이 소중한 아이와 가족에게 어떤 위협을 가할지 모른다고 가정하는 것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유해 화학물질 성분이 들어있었던 가습기 살균제도 처음에는 마트에서 판매된 단순 생활용품이었다.
유해 화학물질 논란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에서는 ‘유해 화학물질’ 이슈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3일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 받은 ‘어린이용품 안전성 조사 결과’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시중에 유통된 어린이 관련 제품 6480개 중 유해물질이 검출된 부적합 제품 수는 모두 515개(7.9%)로 나타났다. 유해물질이 검출된 제품들로는 유아용 의류를 비롯해 보행기, 유모차, 어린이용 장신구, 유아보호용품 등 다양했다.
지난 5일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의약외품으로 허가 받은 2050개의 치약 가운데 파라벤이 함유된 치약은 1302개(63.5%), 트리클로산이 함유된 치약은 63개(3.1%)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파라벤이 함유된 치약 중에는 어린이 전용 치약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 6일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도 국내 구강티슈의 파라벤 허용기준치는 0.01% 이하인 데 반해 어린이용 치약의 파라벤 허용기준치는 0.2% 이하로 20배나 높게 설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3일에는 대형 할인마트의 PB상품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일었다. 김영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환경정의, 여성환경연대 등의 환경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이 뭉친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은 대형 할인마트 PB상품인 세제, 욕실화 등 47개 제품에 대한 화학물질 안전성 조사를 직접 실시한 결과, 납, 카드뮴, 프탈레이트, 1,4 다이옥신 등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아이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유아용품에서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됐다는 뉴스는 하루 이틀 머다 않고 터져 나온다. 특히 영유아용 물티슈의 안전성 논란은 몇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30일 일부 물티슈에서 영유아에게 치명적인 화학물질 세트리모늄브로마이드이 들어갔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엄마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물티슈는 기저귀를 갈 때 뒤처리를 하거나 아이의 손과 입을 닦는 등 주로 아이의 몸에 직접 닿기 때문에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식약처와 기술표준원이 나서 “세트리모늄브로마이드는 0.1% 이하로 화장품에 보존제로 사용 가능한 안전한 물질”이라며 논란을 종결시키려 했지만, 여전히 물티슈에 대한 안전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PVC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아이들의 학용품이나 장난감에는 가소제인 프탈레이트가 사용되는데, 이에 대한 위험성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PVC는 다른 플라스틱에 비해 가격이 싸고 제조가 쉬워 생활 곳곳에서 사용된다.
하지만 딱딱한 PVC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가소제인 프탈레이트는 가장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으로 생식독성뿐 아니라 아토피, 학습 및 행동장애를 유발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등 환경단체들은 ‘PVC 없는 어린이 안전 환경 만들기 <PVC FREE>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사실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소비자를, 국민을 지켜내는 일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 그리고 제품을 판매하도록 허가해주는 정부가 해야 한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대참사에서 보듯이 가해 기업들은 ‘유해한지 몰랐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하고 있다. 가해 기업들은 여전히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공식적인 책임 인정과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피해를 보상하라는 피해자들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3년간 피해자 목소리를 외면해오던 정부는 지난해 의료비 지원 등의 예산을 편성해 올해부터 지원하고 있다. 이마저도 가해기업에 대한 구상권 청구를 전제로 한 긴급지원에 그쳤고 모든 피해자들을 포용하지 못한 반쪽짜리 지원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식적으로 피해자 신청을 한 361명 중 168명만이 의료비 등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피해자들의 염원을 담은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안들(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장하나 의원 2013년 4월 18일 대표발의,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률안-홍영표 의원 2013년 6월 14일 대표발의)은 국회에서 표류한 지 오래다.
“정부도, 기업도 내 아이를 지켜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환경단체들은 안전하다는 문구로, 좋은 향기로, 알록달록한 색깔로 뒤덮인 화학물질이 우리 아이들의 몸을 병들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욕망이 생활 속 곳곳에 퍼트린 화학물질. 화학물질의 위험은 세대를 넘어 먼 미래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더 위협적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가능성 높은 그 위험으로부터 아이와 가족을 지키는 일은 일반 국민들에게 떠넘겨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원인모를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였다는 사실이 정부에 의해 발표된 지난 2011년 여름부터 현재까지 피해자들과 함께 정부와 가해기업을 상대로 피해자 지원 대책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여왔던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최예용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뻔히 용도가 다른 제품을 만들면서도 그에 맞는 안전검사를 하지 않고 사고 이후에도 발뺌하는 기업, 정부가 만든 제도는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런 사고가 또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전혀 의심하지 않고 사용하는 생활용품 속 화학물질이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일 수 있다는 경고를 바탕으로 우리 주변의 생활용품의 안전성을 돌아봐야 한다.”
환경운동가들과 환경단체들에 따르면 아이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현재 사용하고 있는 생활용품에 어떤 화학물질이 들어있는지, 그것이 왜 들어가야만 했는지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꼭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면 사용을 피하고,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한다면 아주 적게 사용하는 것이 상책이다. 어쩔 수 없지만 화학물질로 아이와 가족을 잃는 분통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이게 최선이다.
최 소장은 “우리 스스로가 일정한 감시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국가는 우릴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생활용품의 안전성에 대해 스스로 지켜보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정부와 기업의 문제점을 감시하고, 화학물질 안전관리 제도에 대해서도 관심 가져야 한다. 그런 행동만이 생활용품 속 화학물질로부터 아이와 가족을 지켜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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