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히 아이 낳고 키우는 세상, 불가능한가?
마음 편히 아이 낳고 키우는 세상, 불가능한가?
  • 칼럼니스트 김보영
  • 승인 2015.01.21 0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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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지키기 위해선 CCTV보다 더 근본적 대책 마련 필요

[연재] '솔이 엄마' 김보영 아나운서의 워킹맘 다이어리

 

인천 어린이집 교사의 4살 아이 폭행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이 처음도 아닌데 이번에는 유독 여파가 셉니다. 짐작컨대 그동안 참고, 참고, 또 참았던 부모들의 인내심이 드디어 한계에 달해 폭발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문제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던 날, 저희 집 두 딸내미는 밤늦도록 잠을 자지 않아 속을 썩였습니다. 그날따라 남편도 귀가가 늦어 혼자서 두 아이를 재워야했는데, 평소 잠투정이 없는 솔이 마저 혼자 자기 싫다며 애를 먹이더군요. 하는 수 없이 제 침대 옆에 큰 매트를 깔고 두 아이를 나란히 눕힌 뒤 강제로(?) 눈을 감게 했습니다. 빨리 잠들지 않으면 늦게까지 자지 않는 아이들만 잡아가는 ‘초록색 도깨비’가 출몰한다는 무시무시한 뻥(!)을 쳐가며 말이지요. 이런 유치한 협박(?)은 올해 초등학생이 되는 솔이에게는 먹히지 않지만, 둘째 진이에게만큼은 효과 만점입니다. 세상에 나온 지 아직 3년도 채 안된 진이는 ‘도깨비’ 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 눈을 꼭 감습니다. 이토록 순수한 아이에게 사기를 걸다니 꽤 미안한 일이지만 아이들이 잠들어야 저도 잘 수 있으니까요. 모성애도 본능을 이기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어렵사리 아이들을 재우고 비몽사몽간 잠속으로 빠져드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수화기를 귀에 대자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 뉴스 봤어?” 난 또 무슨 사고라도 났는가 싶어(요즘 하도 큰 사고들이 많아 웬만하면 크게 놀라지도 않습니다) 무슨 일인지 되물었습니다.

 

“어린이집 CCTV뉴스 안 봤어? 나 곧 들어가니 자지 말고 기다려봐!”

 

대체 무슨 큰일이 났기에 이러나 싶어 졸린 눈을 비비며 스마트폰을 열어 기사를 찾았습니다. 문제의 영상을 찾는 데에는 1초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천 어린이집, 어린이집 폭행 동영상’ 등의 단어가 인기검색어 1, 2위에 올라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뉴스의 메인은 관련 기사로 가득했고 성난 네티즌들의 수많은 댓글들이 모든 기사 아래 도배되어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 있는 일도 아닌 터, 그 때까지만 해도 크게 대수롭지 않은 마음으로 관련 기사가 담긴 동영상의 재생 단추를 눌렀습니다.

 

기자가 말하길 아이는 네 살 이라고 했습니다. 한 눈에도 제법 큰 체구의 교사와 대비되어 유독 더 작아 뵈는 몸집의 여자아이는 진이 또래쯤으로 보였습니다. 교사는 의자에 앉아 아이에게 연신 뭐라고 하는 것 같더니 곧이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를 밀친 것도, 꼬집은 것도, 하물며 매를 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약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 것입니다. 가격을 당한 아이는 저만치 나동그라졌습니다. 동영상을 보고 있는 제 입에서 헉 하는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이의 반응이었습니다. 아이는 넘어지기가 무섭게 재까닥 다시 일어나 선생님 앞에 서더니 바닥에 있는 음식(자신이 뱉은 것으로 보이는)을 주워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주변의 다른 아이들은 모두 일사분란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습니다. 마치 영상 속 맞은 아이가 제 곁에서 곤히 자고 있는 딸 진이인 것만 같아서 가슴 한 쪽이 조이듯 아파왔습니다. 때마침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남편은 퇴근 길 지하철에서 우연히 문제의 동영상으로 보고는 너무 놀라 집으로 오는 내내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날 밤이 늦도록 잠 들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왔습니다. 저는 ‘어린이집에 CCTV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 곳에 계신 선생님들은 모두 다 좋은 분들’이라는 말로 남편을 다독였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을 겉만 보고 어떻게 알 수 있나, 혹시 우리 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도 이런 교사가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경한 의심마저 슬그머니 피어올랐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여가 지났지만 파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깁니다. 폭행 교사에게는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해당 어린이집은 폐쇄됐지만 해당 교사와 원장에 대한 비난 여 론은 수그러들 줄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이와 비슷한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모두 잠깐의 화제 뒤 곧바로 잊혔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보도 프로그램에 따르면(MBC 시사 매거진 2580, 1월 18일 방송), 작년 8월 교사의 아동학대로 문제가 된 어린이집이 지금도 버젓이 운영 되고 있고 당시 폭행으로 문제가 된 해당 교사는 벌금 200만원의 가벼운(?) 처벌을 받는데 그쳤다고 합니다. 반면 학대를 당한 피해 아동과 그 부모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아마 그 부모는 앞으로 어떤 교육기관에도 아이를 맡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구나 아이의 엄마가 ‘워킹맘’이었다면? 아마 사건 직후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일 때문에 소중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 인천 어린이집 사건은 그리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정치권도 성난 여론을 감지해 연일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야 모두 각각 긴급 대책팀을 꾸리고 어린이집 시찰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분위깁니다. 관련법도 개정한다고 하지요. 앞으로 모든 어린이집에 폐쇄회로(CCTV)설치를 의무화 하고 보육 교사의 자격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그간 교사들의 인권 문제 등의 이유로 어린이집 폐쇄회로 의무화에 반대 입장을 보였던 의원들도 들끓는 국민적 여론에 반기를 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어린이집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것으로 교사의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를 통해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거나 잘잘못을 가릴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결국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의 이야깁니다. 학대 사실이 밝혀지고 폭행 교사를 처벌한다 한 들, 피해를 당한 아이와 그 부모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겠지요. 이를 위해서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처우문제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애 볼래, 밭 맬래? 하면 차라리 밭을 맨다’는 옛말도 있지요. 저는 고작 아이 둘을 돌보면서도 한숨을 내쉬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하루에 몇 차례나 됩니다. 제 새끼에게도 그러한데, 남의 새끼가 미운 짓을 하면 예뻐 보일 리 없습니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교사의 폭력은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돌보는 일이 그만큼 고되고, 동시에 몹시 중요한 일이므로 그에 대한 정당한 대우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현재 모든 부모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양육수당을 부모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차등지원하고 그에 따라 남는 예산은 어린이집 교사들의 처우를 높이는 데 쓰면 어떨까 하고요. 노동의 질이 개선되면 그만큼 자질 있는 교사들이 늘어날 테고 이처럼 어이없는 사건들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섭니다.

 

이번 사건의 대처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이유로 어렵게 쌓은 경력을 포기하는 여성이 많아지면 결국 그것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일을 포기할 수 없어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그 또한 큰 문제가 되겠지요.

 

어제 오후, 사건이 발생한 인천 지역의 엄마들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거리로 나섰다고 합니다. 똑같은 사건이 여러 차례 반복되도록 별 다른 개선도, 대책도 없는 현실에 지친 엄마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로 한 것입니다. 이번 집회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동심을 담은 동요가 울려 퍼졌다고 하지요. ‘마음 편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다짐이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도록 이번만큼은 반드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반짝 화제 끝에 나온 성급한 미봉책이 아니라 부디 오랜 시간 고심한 흔적이 담긴 제대로 된 해결책 말입니다.

 

어제 오후 퇴근 길 아이를 데리러 들른 어린이집에서, 원장님이 무겁게 전한 한 마디가 귓가를 맴돕니다. 이와 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누구보다 속이 상하고 기운이 빠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몰지각한 일부 보육교사들의 행태 때문에 불필요한 의심을 받고 있을지 모를, 지금 이 순간에도 사명감과 보람을 가지고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고 계신 수많은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엄마들을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칼럼니스트 김보영은 두 딸 솔이와 진이의 엄마이자 국회방송 아나운서로 <투데이 의정뉴스>, <TV, 도서관에 가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육아서 <대한민국 대표엄마 11인의 자녀교육법>을 내고 워킹맘을 위한 강연 및 기고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워킹맘 다이어리에 하고 싶은 이야기나 조언,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메일(bbopd@naver.com)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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