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태, 5년 동안 무슨 일이?
가습기살균제 사태, 5년 동안 무슨 일이?
  • 김은실 기자
  • 승인 2016.04.27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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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업의 외면 속 외롭게 투쟁한 피해자들

【베이비뉴스 김은실 기자】

“옥시는 피해자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라!”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는 신현우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전 대표이사의 뒤로 빨간색 펼침막이 펼쳐 졌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최대 가해 기업으로 지목해온 옥시의 관계자가 검찰에 소환된 26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이하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손에 펼침막을 든 채 그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검찰이 올해부터 가습기살균제 수사에 박차를 가하면서 언론 보도가 이달 들어 쏟아지고 있지만, 사건이 터진 건 2011년이다. 사건이 터지고 기업 관계자가 소환되기까지 5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시작은 2011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임산부 8명 중 4명이 사망하고 3명이 폐를 이식한 일이 알려지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사건을 조사한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가 원인 미상 폐손상의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고 그해 8월 발표했다. 이듬해 2월에는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며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 인산염과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의 독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나서서 원인을 밝혔기에 피해자들은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가 빨리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그 후 5년 동안 정부와 수사기관, 기업의 외면 속에 투쟁해야 했다.

◇ 피해자 구제에 미적댄 정부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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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피해자 구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2011년 11월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을 확인하고 제품 수거 명령 및 판매 중단을 내리면서도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은 발표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환경보건법상 환경성질환으로 인정해달라”는 피해자들의 요구는 2012년 해당 안건을 부결하면서 거부했다가 2년 뒤에야 받아들였다.

정부 차원의 피해자 조사가 시행된 건 2013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이후다. 정부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3차례에 걸쳐서 피해자 신고를 받았다. 세 차례에 걸쳐 접수된 사례는 총 1282건이며 이 중 사망 사례는 225건이다.

피해자들은 피해 신고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31일로 신고를 마감했다. 그러다가 언론이 사건에 주목하자 환경부는 5월부터 4차 피해자 신고를 받겠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피해자 지원 규모나 방식도 소극적이다. 피해자 조사는 신고자의 폐 손상과 가습기살균제와의 관계를 기준으로 이뤄지고, 그 인과관계에 따라 피해자를 1~4등급으로 나눈다. 3~4등급으로 분류되면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지원금은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을 전제로 지원된다. 쉽게 말해 국가가 기업에 돈을 받아서 피해자에게 주는 형식이다. 하지만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가습기살균제의 피해 규모를 축소했다는 의혹마저 불거졌다. 심상정 의원은 정부가 CMIT(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MIT(메칠이소치아졸리논)이 독성이 있다는 걸 알았을뿐더러, 가습기살균제가 폐 이외의 장기를 손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26일 발표했다.

◇ 첫 형사 고발 4년여 만에 기업 소환

피해자 구제가 지지부진했다면, 가해자 처벌은 아예 없었다. 가습기살균제 기업을 상대로 한 제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 가습기살균제를 안전하다고 허위로 표시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전부다. 당시 옥시레킷벤키저는 5000만 원, 홈플러스는 1000만 원, 버터를라이이펙트(세퓨)는 100만 원을 냈다. 롯데마트는 경고 조치만 받았다.

정부가 기업들을 상대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자, 피해자들이 나섰다. 2012년 8월에 1차로 형사고발을 시작했고, 2014년에는 피해자와 가족 102명이 옥시레킷벤키저 등 14개 제조회사를 살인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검찰은 피해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수사를 미루다가 2016년에서야 본격적으로 나섰다.

검찰 수사는 올해 1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이 가습기살균제를 전담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특별수사팀은 2월 옥시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제조·유통사를 추가 압수수색을 했고, 이달 초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롯데마트 PB제품)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세퓨 가습기살균제 등 4개 제품이 폐 손상을 유발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수사 과정에서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수상한 행보가 속속 드러났다. 검찰은 옥시레킷벤키저가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을 부인하려 연구 조사 결과를 은폐하거나 왜곡한 정황 △자사 홈페이지에 부작용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고의로 삭제한 정황 △책임을 피하려 법인을 고의로 해산한 정황 등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26일 옥시레킷벤키저 관계자의 소환을 시작으로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을 알았는지를 조사한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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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호소 외면한 기업, 검찰 수사에 사과

검찰이 가습기살균제 기업의 관계자를 소환하기 시작한 4월 중순, 기업들은 처음으로 사과문을 내기 시작했다. 18일 롯데마트가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문을 발표하더니 이어서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피해자들이 5년 가까이 사과를 요구했지만 응답하지 않다가 검찰의 소환 조사를 앞두고 사과를 시작한 것이다.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세퓨를 사용한 피해자는 정부의 1·2차 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규모만 각각 103명, 22명, 15명, 14명으로 추산된다.

기업은 그동안 책임을 회피해왔다. 롯데마트와 옥시레킷벤키저는 2012년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당시 증인으로 출석하라고 요구받았으나, 출석하지 않았다. 다음 해 열린 국정감사에는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의 대표가 출석했고, 당시 옥시레킷벤키저의 대표였던 샤시 쉐커라파카는 사과 대신 인도적 차원의 기금 지원을 약속했다.

기업의 때 늦은 사과는 오히려 피해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사과문 발표 전에 피해자들에게 소식을 알리거나 상의한 기업은 없었고, 사과문에는 구체적으로 제품의 위해성을 인정하는 대목이 없었다. 그나마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피해자 보상을 언급했지만, 옥시레킷벤키저는 보상 대신 기금을 내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피해자모임이 최대 가해 기업으로 지목한 옥시레킷벤키저는 사과문을 발표했을 때조차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을 전혀 몰랐다는 태도를 보여 피해자들의 반발을 샀다.

◇ 2011년 그날 이후, 한 번도 멈추지 않은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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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라도 정부와 기업이 움직인 것은 피해자들이 쉼 없이 투쟁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11년 8월부터 지금까지 기자회견과 시위, 토론회와 기자회견 등 수백 차례의 항의 행동을 통해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옥시레킷벤키저 앞에 벌인 시위만도 400회가 넘는다.

더 많은 피해자를 발굴해 보상을 받게 하려는 노력도 이들의 몫이었다. 정부가 피해 사례를 접수하기 전부터 피해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고, 정부가 피해자 접수를 마감한다고 발표했음에도 민간 차원에서 피해자 신고를 계속 받아왔다. 피해자 신고가 마감되기 전에는 전국을 순회하며 신고를 독려했다.

지난해에는 영국에 있는 옥시레킷벤키저를 찾아가 시위했고, 영국 본사를 상대로 국제 소송도 시작했다. 검찰이 뒤늦게 특별조사팀을 꾸려 수사에 나서자 가습기살균제 기업들을 연속해 고발하면서 살인죄로 고발하라고 촉구했다.

집단 민사 소송도 시작했다. 피해자들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함께 가습기살균제 기업을 상대로 소송할 예정이다. 피해자모임은 24일 열린 총회에서 집단소송 참가자 74명을 모집한 상태다. 피해자모임은 집단소송에서 △제조사의 공식 사과 △충분한 개별 피해보상 △피해기금 조성을 요구할 계획이다.

피해자들의 노력에 시민사회도 응답했다. 피해자모임을 비롯한 37개의 환경·소비자 시민단체는 25일부터 옥시레킷벤키저 불매운동을 시작했고, 불매운동은 온라인으로 퍼졌다. 누리꾼들은 SNS에서 옥시레킷벤키저의 물품 목록을 실어 나르고 있다.

◇ "이제 중요한 건 20대 국회의 역할"

5년 동안 외친 울부짖음에 이제야 응답하는 사회를 보며 피해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강찬호 피해자모임 대표의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제일 아쉬운 점은 국가의 대처다. 정부는 이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고 밝힌 것 말고는 진상규명, 적극적인 피해자 구제, 재발 방지 대책 등에서 최소한의 것들만 처리하는 자세로 접근해왔다.

특히 피해자 대책에서는 손을 뗐다. 피해자와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발을 뺐다. 이런 태도가 문제를 키운 것이다. 정부가 발을 빼니까 기업도 피해자들이나 정부를 우습게 보고 딴짓하고 발뺌했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사고가 터졌을 때 사건을 수습하고 제도 개선책 만들고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고,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어야 했다. 숱한 국민이 다친 참사고 재난인데 정부가 발을 빼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19대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특별법 등 관련 법안들이 추진될 때도 정부가 무력화했다고 들었다. 그나마 피해자 구제도 환경보건법에 시행령 하나 만들어서 의료비만 지원했고, 신고 접수도 지난해 마무리하려 했다. 구제 자체도 최소한의 수준에서 행정 편의적으로 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의 사태를 대하는 정부의 시각이 안일했다.

검찰 수사가 왜 이렇게 늦어졌는지는 참 의아하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을 발표한 시점에 수사했더라면 상황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특별수사팀을 꾸린지 3개월 만에 이렇게 진상이 드러났다. 그 덕분에 피해자들이 자신감이 생기니까 집단소송까지 할 수 있었다.

5년 동안 소비자운동단체들이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한 활동을 하지 않은 점도 의아했다. 그런데 옥시의 만행이 드러나자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걸 봤다. 우리나라 국민이 그 내용만 알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는 분들인데…속절없이 5년이 흐른 느낌이다. 그래도 작지만 강한 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해결은 이제 시작이다. 옥시 같은 파렴치한 다국적 기업은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국민이 반드시 쫓아내 줄 거라 믿는다.

20대 국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대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특별법이 통과되고 청문회가 열려야 한다. 그래서 이런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고, 참사가 생긴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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