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엄마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6.07.0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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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뱅이 쓰고 그린 <소피가 화나면 정말정말 화나면>

[연재]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그럴 거면 먹지마. 밥 안 먹어도 좋아."

화가 났다. 기어이 터졌다. 엄마도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애가 된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속 주인공 소피처럼 된다(소피는 언니가 장난감을 뺐어 화가 났다). 발을 쾅쾅 구르고 소리를 지른다. 들고 있던 것을 던져 버리고 싶을 만큼 행동이 과격해진다. 활활 타오르는 화산이 된다. 화가 나는 이 순간은 오로지 나만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확인하게 되는 순간. 아이들은 이런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따윈 잠시 잊게 되는 순간.

책읽는 곰
책읽는 곰

저녁을 먹기 전 '엄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하고 아이들에게 미리 사인을 주었다. 그러면서 빨리 목욕하고 밥 먹자고 사정했다. 6살 작은 아이가 이런 내 마음을 헤아려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번만은 알아주길 바랐다.

"내 마음은 내 거니까 내 맘대로 할 거야"라는 아이. 엄마는 목욕을 잽싸게 하고 저녁을 먹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욕조에서 물놀이를 더 하고 싶을 뿐이고, 엄마는 빨리 저녁을 먹으면 좋겠는데 오늘따라 카레가 담긴 언니 접시가 더 예뻐 보일 뿐이다.

반드시 언니 접시에 밥을 먹어야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하는 작은 아이. 그 요구가 좋게 들릴 리 없는 나. 다시 한번 알려준다. "엄마 기분이 좋지 않으니 그만 하라"고.

또 "그건 원래 언니 접시니까 네 접시에 담긴 저녁을 먹으라"고. "그래도…그래도" 무한반복되는 작은 아이의 "그래도" 타령. 계속 듣고 싶지 않은 후크송이 따로 없다. 분노 게이지가 슬슬 올라가며 위험 신호를 보내온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성으로 제어가 가능한 상황.

고집을 꺾지 않는 둘째. 울기 시작한다. 강력한 무기. 최후의 수단. 앙칼지게 운다. 들으라는 듯 운다. 삑삑삑. 분노 게이지가 최고점을 찍는다. "먹지마. 안 먹어도 좋아" 식탁에서 접시를 빠르게 치운다. 더 서럽게 우는 둘째. 그 상황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1도 없다. 신경을 거슬리는 울음 소리. 먹던 밥 숟가락을 던지듯 놓고 방으로 들어온 나. 사춘기때나 했던 짓을 애엄마가 돼서 다시 하게 될 줄이야. 왜 이렇게 됐을까.

아이가 시끄럽게 울더라도 계속 식탁에 앉아있어야 했다. 흥분하지 않고 단호하게 왜 안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야 했다. 더 참고 기다려야 했다.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제 접시에 담긴 카레밥을 먹을 때까지. 더 참고 기다려야 했다. 육아 서적에서 배운, 그러나 적용하지 못한 훈육 이론들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이어지는 자책모드. '난 왜 이렇게 좋은 엄마가 못 되는 거지?' 그때였다.

"문 열어."

문을 두드리는 남편. 전혀 반갑지 않다. 벼락같이 울고 있는 작은아이 입장에서는 든든한 지원군이 한 명 등장한 셈일 테니까.

"작은 애랑 또 한판?"
"응."
"이거 받아."
"뭔데."
"네잎 클로버. 행운이 함께 하길."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하는 남편이 고맙다가도 "또 한 판"이라는 말에 다시 서운한 마음이 생긴다. 뜻밖에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 밀린 원고나 쓰자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그때, 남편과 함께 작은 아이가 방으로 들어오며 말한다. "엄마 미안해요" 아빠가 시킨 게 누가 봐도 분명하지만 (이번에는 어느 책에서 읽은 대로 확실히) 말 없이 가만히 안아주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언제 울었냐는 듯 생글생글 웃는 아이. 눈웃음을 치며 묻는다.

"엄마, 나 밥 다 먹었는데… 초콜릿 먹어도 돼요? 이제 엄마 거(아이패드)로 색칠 공부 해도 되요?"

뒤끝 없어 좋구나. '아이들 때문에 백날 속 끓여봐야 소용없다'는 말은 진리다. 어른들 말대로 어쩌겠나, 그래서 애인 것을. 아차, 그런데 소피는 어떻게 됐을까.

화가 난 소피는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갔다. 뛰고 또 뛰고. 그러다 주저앉아 울고. 한참을 지나서야 숲에 들어온 걸 알게 된 소피.

산들바람을 느껴요.
일렁이는 물결을 봐요.
드넓은 세상이 소피를 포근하게 감싸줘요.

나무들, 고사리들 그리고 새소리에 한결 기분이 나아진 소피는 집으로 향한다. 따뜻한 집에서 나는 좋은 냄새. "다녀왔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소피를 반겨주는 가족들. 소피의 표정이 환하다.

생각해보니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준 작은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엄마에게 사과하라고 설득하는 아빠에게 "내 마음은 내 거니까 내 맘대로 할 거야"라고 고집을 부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답지 않게 행동해서 미안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가족은 이런 거겠지. 불같이 화를 내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하하호호" 하는 참 이상한 관계. 그래서 믿을 건 가족 뿐인 거겠지.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로, 10살 다은, 6살 다윤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두 딸과 함께 읽으며 울고 웃은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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