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고은 기자】
갓 태어난 핏덩이를 팔순의 노모에게 데리고 온 건 아기의 할아버지였다. 아들이 버리다시피 자신에게 맡기고 간 손녀딸을 재혼한 처가 도저히 기를 수 없다고 하자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기고는 서둘러 떠나버렸다. 그렇게 황망히 사라진 아들을 차마 원망도 못하고 노모는 어미젖을 찾으며 우는 아기가 가여워 며칠 밤을 내내 울었다.
갓난아기 아람이(2, 가명)를 돌보는 일은 신부전증 합병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증조할머니 김양자(80, 가명) 씨에게 너무 고된 일이었다. 수시로 자다 깨서 우는 아이를, 하루에 몇 번이고 젖을 찾는 아이를 마음껏 안아 줄 수 없어 답답한 가슴만 내리쳐야 했다. 생활고는 김 씨를 더 힘들게 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으로 정부에서 받는 한 달 40여만 원으로는 양껏 분유를 먹일 수도, 제때 기저귀를 갈아줄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애가 울 때마다 나도 울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되나 막막하더라고. 아람이 엄마는 애 낳자마자 연락두절이고 아람이 아빠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야속하지. 그래도 시설에는 보내고 싶지 않아요. 내가 거둬야지 누구 손에 맡기겠어요.”
아람이 아빠는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손수 키운 손자, 미워할 수 없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렇기에 할머니는 아람이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늙고 병든 몸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아람이를 키워내겠다는 의지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다행히 아람이는 증조할머니의 깊은 사랑 덕분에 크게 아픈 곳 없이 쑥쑥 자라며 얼마 전 첫 돌을 맞았다.
하지만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람이를 키워내기에 집은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고, 위험한 것 투성이다.
재래식 화장실을 마당 밖에 둔 집은 지은 지 70년이 훨씬 넘어 집 안 구석구석이 헐은 지 오래. 얼마 전 군청에서 지붕을 새로 올려주기 전에는 벽마다 빗물이 새 비가 올 때마다 아람이의 이부자리가 젖을까봐 밤잠을 설쳐야 했다. 다행히 지붕은 고쳤지만 아직도 큰 비는 이 집의 걱정거리다. 마당의 지대가 낮아 빗물이 고이면 집 밖은 고사하고 화장실도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루며 마당 곳곳에 놓인 건축자재와 벽돌, 낫과 곡괭이는 아람이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이지만 할머니 혼자 치우고 정돈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저 아람이가 위험한 물건에 손을 대지 않도록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마당 앞에 밭은 남의 것인데 내가 돌보고 있어요. 애가 요즘 얼마나 뛰어 다니는지 내가 이제 쫓아다니기가 힘들어. 애 따라서 한 바퀴 같이 돌고 마루에 앉아서 한참 있고. 그러다보면 하루가 가요. 내가 많이 아팠는데 아람이 키우면서 좀 좋아졌어요. 아람이 없으면 이제 어떻게 사나 싶고 그래요.”
아람이는 한 달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집 근처 군인 가정에 아이들이 하나둘 씩 태어나기 시작하면서 마을에 생긴 어린이집 덕분에 할머니가 양육부담을 덜 수 있게 된 것이다. 활동량이 부쩍 늘어난 아람이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옹알이 발음도 점점 정확해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아빠’ 단어를 뗐다.
“아람이 아빠가 애 잘 부탁한다고 하고는 연락 한 번 없다가 얼마 전 돌 때 영상통화가 왔어요. 아빠라고 알아보는 건지 아람이가 ‘아빠’, ‘아빠’ 하더라고요.”
언젠가 아람이를 아빠 손에 보낼 때까지 잘 키워내고 싶은 마음이지만 변변한 장난감 한 개, 옷 한 벌 사기도 어려운 형편에 할머니는 속이 상할 뿐이다. 밥그릇과 주걱을 장난감 삼아 노는 아람이에게 할머니가 줄 수 있는 건 사랑이 전부. 밥에 된장국뿐인 끼니라도 정성으로 지어 먹여주기 위해 매일 굽은 등을 일으켜 밥을 짓고 아이를 안는다.
“오래된 집을 고쳐서 아람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영양 상태 보충도 필요해요. 아이의 양육에 필요한 환경 조성을 위해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강원지역본부 김주영 과장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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