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횡단보도, 유모차 이용자에게 안전한가?
[르포] 횡단보도, 유모차 이용자에게 안전한가?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7.09.27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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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시간 빠듯...신호등 없는 구간에선 차량 양보 전무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횡단보도는 유모차를 끌고 건너는데 어려움이 없을까. 일반보행자보다 보행속도가 대략 1.5배 정도 느린 유모차와 엄마가 횡단보도를 건너기에 신호등 보행시간은 충분한 시간일까.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운전자들이 얼마나 유모차를 배려해 양보운전을 해줄까. 현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가봤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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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단보도 신호시간 내 건너는 건 ‘빠듯’

 

지난 15일 금요일 오후 4시 50분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대로 광화문역 7번 출구 앞. 서울역 방향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서 횡단보도 신호등 녹색등 시간을 재봤다. 42초. 유모차 없이 혼자 도로를 건너봤다. '22초'면 충분하다.

 

본격적으로 유모차를 끌고 신호등 횡단보도 앞에 대기하다 녹색등이 들어오자 건너기 시작했다. 20초 정도 지나고 나서야 20부터 숫자 점멸등으로 바뀌었다. 19, 18, 17…. 유모차를 밀고 길을 건널 때는 평소 걸음걸이만큼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뛰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 5초를 남기고 횡단을 완료했다. 유모차를 밀고 길을 건너는데 ‘37초’가 걸린 셈이다.

 

녹색등 시간 '42초'를 기준으로 보면, 신호가 정확하게 바뀌었을 순간 바로 출발해야만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다. 신호가 바뀐 중간에 횡단보도로 뛰어들게 되면 녹색등 시간 내에 횡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도로를 7회 반복해서 건너봤다. 걸리는 시간은 차이가 거의 없다. 실제 유모차에 7~8kg 아이를 태우고 건넌다면 유모차를 끄는데 힘이 더 들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여러 차례 길을 건너보니 유모차 보행 시 주의해야 할 점이 눈에 띄었다. 바로 주변사람들과의 적당한 안전거리 확보다. 동시간에 길을 건너는 인파가 많을 경우 유모차 바퀴가 앞사람 발뒤꿈치를 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이런 점까지 감안하면 유모차 속도는 더 늦어질 수도 있겠다.

 

최성호 교통안전처 차장은 베이비뉴스와 통화에서 “유모차와 같은 보행기구를 고려한 보행시간이 현재 적용되지 않고 있다. 종종 어린이보호구역 내, 아파트 입구 등 녹색등 시간을 더 달라는 요구가 들어온다. 현장여건에 맞춰 주도로 소도로의 통행량, 보행자 수 등을 고려해 가능한한 늘려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보행신호등 시간과 관련해 최 차장은 “횡단보도 한 차로 폭을 3.5m로 보면 4차선 기준 15~18m(중앙분리대, 연석 등)로 볼 수 있다. 성인이 1초에 1m 정도 걷는 것으로 보고 15초, 초기 녹색등 시간 7초를 더해 22초 정도 주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노인과 어린이가 많이 다니는 도로의 경우, 1초에 0.8m로 이동한다고 본다. 이는 신체조건, 보폭 등을 반영한 교통공학적 연구와 해외사례 등을 고려해 정해진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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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섬, 배려 운전자는 한명도 없었다

 

오후 5시 50분, 유모차 이용자의 안전한 보행권에 대해 운전자들이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짚어보기 위해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옆 대로로 이동했다. 인도에서 교통섬으로 이동하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차량 운전자들이 유모차 이용자를 얼마나 배려하는지 살피는 실험을 했다.

 

교통섬(Traffic island)은 차량이 가야할 동선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도로의 한 가운데나 교차로에 특수한 모양으로 만들어놓는 섬 모양의 구조물을 말한다. 폭이 넓은 도로의 중앙이나 4거리의 모퉁이에는 보행자가 대기할 수 있게 하는 교통섬이 있다.

 

일단, 대로에서 우회전해서 들어오는 횡단보도 건널목 앞에 섰다. 여길 건너면 교통섬이 있고, 또 횡단보도가 있다. 거리는 한 차선밖에 되지 않아 열 걸음 이내 충분히 건널 수 있는 거리다. 횡단보도 앞에 섰다.

 

차량 6대가 ‘휙휙’ 지나갔다. 횡단보도 앞 정지선에 정지하는 차량은 한 대도 없었고, 단 한 대도 먼저 지나가라고 양보해주지 않았다. 20여 분 동안 그 자리(교통섬)에서 횡단보도를 건널 준비를 한 채 유모차를 붙잡고 서 있었지만 끝내 양보 운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교통섬을 가운데 두고 양 차선에서 차량이 지나갈 땐 종종 고립되기도 했다.

 

교통섬 공간이 좁아 사람이 많을 때는 부피가 큰 유모차가 서 있을 공간이 부족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진입하는 차량을 보니 아이가 유모차에 타고 있었다면 공포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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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길 건너기

 

오후 6시 20분. 교통섬에서 조금 떨어진 근처 아파트 단지 입구 신호등 없는 비탈길 횡단보도로 장소를 옮겼다. 여긴 어떨까. 유모차를 붙잡고 길 건널 채비를 한 채 서 있었다. 차량이 많이 다니는 곳은 아니었지만 배달 오토바이가 빛의 속도로 유모차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양쪽을 살피고 양쪽에서 차량이 오지 않을 때 비로소 길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다.

 

이번에도 20여 분간 길을 왔다 갔다 해봤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유모차를 끄는 기자에게 먼저 지나가라는 사인을 주는 양보 운전자는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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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안전구역 내 횡단보도는 과연 안전할까?

 

오후 6시 50분. 서울시 마포구 한 초등학교 정문 앞 어린이안전구역 내 횡단보도 상황은 어떨까. 신호등은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차량이 많이 다니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드문드문 차량이 4~5대씩 한꺼번에 지나갔다.

 

횡단보도 앞에 20여 분을 서 있었다. 단 한 대의 차량 운전자도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해 주지 않았다. 차량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기 때문에 양보하거나 배려해 주지 않아도 지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을까. 아니면 유모차를 끄는 엄마에 대한 배려심이 전혀 없어서 였을까.

 

◇ 교통약자 보행권 확보 대책과 인식 개선 필요

 

행정안전부는 지난 26일 '보행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21년까지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42% 감축시키자는 목표로 ▲보행자 중심의  법과 제도 정비 ▲보행안전 문화의식 향상 ▲보행환경 인프라 확충 ▲취약계층 보행안전 개선 ▲새로운 보행안전 위험요소 대응 관련해 주요 과제를 내놨다.

 

2015년 교통사고 분석 자료집에 따르면, 어린이 교통사고 6세 이하 보행 중 사망자 수는 22명, 부상자는 1,440명으로 조사됐다. 1세 10명, 2세 7명, 3세 5명, 4세 4명 등으로 나타났으며 사고유형은 차대 사람 사고가 71.0%인 것으로 조사됐다.

 

가해운전자의 법규위반별로는 안전운전의무불이행 77.4%, 보행자보호의무위반 9.7%, 신호위반 3.2%, 중앙선침범 3.2% 등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보행 중 어린이 교통사고 6세 이하 2명 사망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서울시 영등포구는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통해 대표적인 보행약자인 어린이의 경우 2014년부터 4년 연속 교통사고 사망자 제로화를 실현하고 있다.

 

보행약자와 관련된 사회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노인복지관 및 경로당, 녹색어머니회 등 시민단체와 브레인스토밍을 실시해 ▲횡단보도 신설 ▲무신호 운영 횡단보도 신호등 설치 ▲보행신호 연장 ▲무단횡단 펜스 설치 ▲대영초,대방초 안전한 통학로 조성 어린이보호구역 연장 등 총 11개소에 시설개선을 완료한 결과, 이 같은 성과가 나타난 것.

 

특히 보행분야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 구청, 경찰서, 안전실천연합회 등이 회의를 통해 방향별, 시간대별 보행량의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구간을 선정해 ‘보행자 우측보행 유도 노면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같이 교통약자를 비롯한 모든 보행자의 안전한 보행을 보장해 주기 위해선, 지자체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보행편의를 위한 보행자 중심 환경개선사업과 안전교육, 지속적인 홍보 캠페인을 통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김기복 시민교통안전협회 대표는 "현재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로, 노인보호구역, 어린이보호구역 등 특정구역에는 교통약자의 안전을 위해 횡단보도 보행시간을 다른 곳보다 더 주고 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은 곳이 많이 있는 게 사실이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보행자 권리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대표는 "횡단보도에 버튼을 설치해 버튼을 누르면 보행시간이 연장되는 시스템을 오랫동안 요구하고 있다. 설치하는데 경제적 부담이 있더라도 유모차를 끄는 엄마를 비롯해 휠체어 이용 보행자 등 교통약자 보행자가 훨씬 안전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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