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놀 아줌마’와 ‘미세먼지 아줌마’가 만났다
‘페놀 아줌마’와 ‘미세먼지 아줌마’가 만났다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8.02.0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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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미대촉 회원들과 김은경 환경부 장관의 뜨거운 토론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 31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시민단체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이하 미대촉) 회원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 31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시민단체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이하 미대촉) 회원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제 아들 10개월 때 페놀 사태를 겪고 페놀로 오염된 물로 우유를 타 먹이고 나서 정말 화가 났었어요. 그때 시민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오늘 여러분들 보면서 여러분들 마음이나 그때 제 마음이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시민단체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이하 미대촉) 회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렇게 인사말을 전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7만 명의 회원이 가입한 온라인 카페 미대촉 회원 50여 명과 환경부 직속 미세먼지대책위원장 정해관 성균관대 교수가 참석했다.

미대촉 회원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양평, 분당, 인천 등 각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간담회에 참석해 ▲미세먼지 관련 입법강화 ▲미세먼지 관련 국내 기준 WHO 기준으로 조정 ▲교육시설에 미세먼지 환기시설 도입 강화 ▲미세먼지 심각성 교육 의무화 ▲취약계층의 실효적 미세먼지 대책 마련 등 아이 키우는 엄마의 관점에서 환경부 장관을 만나 정책적 한계를 지적하고 직접소통에 나섰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과 시민단체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이하 미대촉) 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회원은 “실내외 미세먼지 측정 기준을 세계보건기구(WHO)기준으로 강화해 달라”고 제안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김은경 환경부 장관과 시민단체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이하 미대촉) 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회원은 “실내외 미세먼지 측정 기준을 세계보건기구(WHO)기준으로 강화해 달라”고 제안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실내외 미세먼지 측정 기준, 세계보건기구 기준으로 강화해야”

이곳에 모인 엄마들은 미세먼지가 ‘나쁨’으로 나오더라도 지금 현재 시간 기준이 아니고, 측정 장소에 따라 미세먼지양이 다를 수 있어 신뢰할 수 없는 ‘평균치’ 정보에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애를 태웠다. 그렇다고 실내 공기질이 실외보다 좋은 것도 아니다.

아이 둘을 둔 서울 화곡동에서 온 회원은 “실내외 미세먼지 측정 기준을 세계보건기구(WHO)기준으로 강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교육부에서는 놀이 중심 교육을 강조하지만 미세먼지가 심각해지면서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는 날이 많다. 아이들의 실내 활동이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WHO에서는 실내 공기질 기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외부배경 농도를 줄이는 게 기본이 돼야 한다”고 말하자, 한 회원이 “WHO 보고서엔 ‘실내 공기질도 외부기준과 동일하게 관리하게 돼 있다”고 반박하며 토론의 열기가 달아올랐다. 실제 WHO는 미세먼지 25㎍/㎥를 실내외 모두 같은 기준으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학교 실내 공기질 기준을 실외 기준과 같이 해달라’는 엄마들의 요구에 김 장관은 “여기 계신 분들이 교실 공기질 개선을 구체적으로 해보면 어떠냐. 몇몇 학교를 선정해 구체적으로 현재 상태를 측정하고 어떤 대책이 효과가 있는지 시범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엄마들은 입을 모아 “이미 하고 있다. 시범학교에서 조사해 보니 공기정화 시설이 공기청정기보다 더 좋다는 결과가 다 나와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공기정화시설 결과를 받아 보고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 31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시민단체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이하 미대촉) 회원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 31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시민단체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이하 미대촉) 회원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미세먼지 국내 기준 내려달라” vs “기준 낮추는 문제가 아니다”

엄마들은 “미세먼지 측정 기준수치를 내리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았으나, 김 장관은 “그 수치를 낮추는 게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하면서 양 측의 입장이 충돌했다.

한 회원은 대기오염도를 공개하는 홈페이지 ‘에어코리아’에 강화되는 미세먼지 기준과 함께 ‘외출 자제’ 등 행동요령을 함께 게재해 달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기준 수치는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고 답하자, 회원들은 “질문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비판했다.

김 장관은 “에어코리아에서 매일 나가지 말라고 나올 수도 있다. 구체적 행동요령을 고지하는 것은 위해성 근거를 갖고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고 하자, 회원들은 “위험한 상황임을 국민에게 공지해 주는 것 자체가 왜 문제가 되느냐. 장관의 마인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회원은 “기준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한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사이트에 공개한다면 공감대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과민하다’는 말을 환경부에서 듣게 될 줄 몰랐다”

학교나 유치원, 어린이집 교사에게 미세먼지 ‘나쁨’인 날 아이들의 바깥 활동 자제를 제안했다가 ‘유난 떠는 엄마’, ‘유별난 엄마’로 찍힌 경험을 갖고 있는 엄마들은 누가 뭐라고 하든 미세먼지에 관한 한 우리 아이들을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안양에서 온 한 회원은 “‘과민하다’는 말을 환경부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며 “당장 신생아들은 호흡기가 약해 숨을 잘 쉬지 못한다. 숨을 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김 장관이 “미세먼지 문제는 100년에 가까운 생산, 소비 방식과 연관돼 장기적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면서 “시민들이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언급한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수원에서 온 7살 아이를 둔 회원은 “(장관님이) 페놀 사건을 언급하셨을 때 동지애를 느꼈다. 그런데 지금 장관님이 그때 당시 정부 차원의 입장이 아니신가, 저희 목소리의 근원을 개인의 불안감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며 “내 아이가 페놀이 섞인 수돗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 낙동강 정화만을 위해 애쓰겠나. 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하지만 당장 우리 아이가 숨 쉬는 지금 미세먼지가 덜 하도록 단기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시민단체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이하 미대촉) 회원들과의 간담회를 가지는 동안 한쪽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시민단체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이하 미대촉) 회원들과의 간담회를 가지는 동안 한쪽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정부-국민, 미세먼지 대책 간극 크지만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

뜨겁게 달아오른 간담회 열기 속에 이날 엄마들로부터 쓴소리를 많이 들은 김 장관은 “속이 좀 후련해지셨다면 다행이다. 그동안 정부가 신뢰를 갖지 못했다”며 “환경부가 힘이 없어 교육부나 다른 부처에 얘길 안 하고 있다든지, TF팀이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년 동안 만들어진 것을 깨야 하는데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해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끝으로 김 장관은 “미세먼지 환경기준을 ‘나쁨’ 기준 현행 50㎍/㎥→35㎍/㎥로 강화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지금 법제처가 심사 중이다. 3월 말까지는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미옥 미대촉 대표는 간담회 직후 베이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우려했던 만큼 정부와 국민들 간에 미세먼지 대책에 있어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간극이 크니 '해결될 것 없다'가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면서 “우리 엄마들이 미세먼지 때문에 얼마나 생활하는 데 불편하고 고통받고 사는지 장관님도 간담회 통해 자극 받으시고 정책 펼칠 때 반영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대표는 “미세먼지 기준 강화만 돼도 위험성을 인식하기 시작하니까 반은 성공한 것이다. 장관님이 3월 말까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만 해도 큰 성과"라며 "앞으로 미세먼지대책위원회에 들어가서도 인식 개선과 취약계층 관련해 공론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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