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당한 성추행, "그따위로 살지 마세요"
극장에서 당한 성추행, "그따위로 살지 마세요"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03.05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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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엉덩이 손으로 치고 간 할아버지를 쫓아가다

다자매야, 알고 있니? 요즘 미투운동(#metoo)으로 시끄러운 거 말이야. 미투운동이 뭐냐고? 여성들이 당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사실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밝히는 운동을 말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제대로 사과받지 못해서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성범죄를 세상에 말하는 미투운동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에서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이후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왜냐고? 가해자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부당한 일을 계속해서야.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말하지 않으면 가해자는 잘못인 줄도 모르고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니까. 피해자들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그 자제만으로도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고 해. 잘못된 일을 바꾸려면 먼저 나서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대.

사실 엄마는 뉴스를 편집하는 일을 하면서, 그와 같은 일들을 많이 봤어. 지금과 달리 대부분 익명으로 피해 사실을 알렸는데 가해자의 처벌과 진정한 사과를 바라는 피해자의 절실함과는 달리,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는 경우도 봤어. 그런 문제를 지적하고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행동들도 많이 봤지. 엄마는 그때마다 참 답답했어.

특히 너희들을 낳고 나서는 더욱 그랬어. 너희들과 내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 이 상태에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슬프고 우울했어. 지난 2008년 8세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이 벌어졌을 때를 계기로 엄마가 여성단체에 후원을 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야. 엄마가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도, 여성단체를 후원함으로써 그들이 하는 운동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여성단체에 후원을 하니까 온라인으로 소식지가 오더라. 단체에서 한 여러 가지 활동들을 알려주는데, 가끔은 성희롱, 성추행에 대처하는 법 같은 것도 실려 있었어.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이라, 꼼꼼히 읽어 봤지. 그런데 그렇게 배운 지식을 실제 써먹을 수 있는 상황이 엄마에게 생길 줄이야. 엄마 이야기 좀 들어볼래?                                                                              

모처럼의 휴가. 엄마는 혼자 조조영화를 봤어.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지. 영화를 보고 나와 출구로 향하는 긴 복도 한쪽 구퉁이에서 친구가 남긴 카톡을 확인하고 있는데... 뭐지? 갑자기 누군가 엄마 엉덩이를 손으로 슬쩍 치고 가는 거야. 깜짝 놀라 방금 지나간 그 남자의 뒷모습을 확인했어. 멀끔한 정장 차림의 60, 70대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였어. 그때 엄마 심장은 이미 엄청나게 뛰었어. 너무 당황했고, 기분도 나빴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가 복잡한 가운데 생각난 단 하나는 '참지 말고, 말해야 한다'는 거였어. 그 할아버지를 뒤쫓아 갔어. 사람들이 적당히 모여 있는 영화관 매점 앞에서 할아버지를 불러 세워 말했지.

제대로 사과받지 못해서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성범죄를 세상에 말하는 미투운동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베이비뉴스
제대로 사과받지 못해서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성범죄를 세상에 말하는 미투운동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베이비뉴스

"저기요. 아저씨가 지금 제 엉덩이 치고 가셨나요?"

"무슨 말입니까?"

"아저씨가 저 복도에서 제 엉덩이 치고 가셨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난 그런 적 없어요. 왜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합니까? 뭔가 착각을 했나 본대요."

엄마는 여기서 좀 당황했어. '내가 잘 못 느낀 걸까' 생각했지만 아니었어. 그 복도에는 앞서간 아줌마 무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저 아저씨가 아니면 누가 내 엉덩이를 치고 갔겠냐고.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문제제기 했을 때 가해자가 외려 큰 소리를 친다더니,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어.

"저야말로 이 아침에 왜 아저씨한테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합니까? 나이도 적지 않은 분이, 그따위로 살지 마세요."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할 말을 하고 급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어. 다리도 벌벌 떨리고, 심장도 쿵쾅 거렸어. 혹시나 그 할아버지가 엄마를 따라올까 봐 무섭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어. "잘했어, 아... 속 시원해. 나쁜 XX".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 엄마 그때 쫌 참 잘한 것 같아. 물론 약간은 무서웠지만 억울하고 화나는 마음은 없었어. 어찌나 통쾌했던지... 할 말 다 하고, 그 사람이 뭘 잘못했는지 분명히 알려줬으니까.

엄마가 만약 그때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면 생각날 때마다 억울했을 거야. 그 일을 계기로, 엄마는 생각했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참지 말아야겠다고. 다행히 그 이후로는 그런 일이 생기진 않았지만,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엄마는 똑같이 할 생각이야. 아니지. 하나 더. CCTV도 확인해서 경찰에도 신고할 생각이야. 제대로 처벌받게 해야지. 그때는 너무 당황해서 나중에야 CCTV 생각이 나더라고.

그런데 다자매야. 만약 네가 어딘가에서 그런 일을 당한다면, 엄마처럼 직접 말하기보다는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른들은 너희들보다 힘이 세니까, 힘으로 제압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꼭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렴. 경찰을 불러달라고 해도 좋아. 그리고 꼭 엄마 아빠에게도 말해줘. 겁내지 말고. 혼내지 않아. 절대로 너희들 잘못이 아니니까.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너희들 편이라는 거 꼭 기억해줘.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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