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할마, 할빠가 없다? 미국 엄마들도 도움이 필요해"
"미국에는 할마, 할빠가 없다? 미국 엄마들도 도움이 필요해"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8.03.1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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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 유학생 엄마의 육아이야기

어느 금요일, 여느 때처럼 큰 아이를 데리러 큰 아이 킨더가든(Kindergarten)에 갔다. 아들과 같은 반 아이들이 줄지어 학교 교문으로 나오고, 스쿨버스를 탈 아이들은 스쿨버스로, 저녁까지 있을 데이케어(Daycare:방과후에 아이들이 가게 되는 사설 어린이집 종일반 같은 곳)로 이동할 아이들은 데이케어 버스로 이동하고 있었다. 나처럼 부모가 픽업하러 온 아이들은 신나서 엄마나 아빠에게 달려온다. 큰 아이와 같은 반 아이인 에밀리가 “하무니(Nana)!”하고 신이 나서 소리치며 뒤 쪽으로 달려간다. 에밀리의 엄마에게 바쁜 일이 생겼는지 오늘은 두시간 거리에 사시는 에밀리 할머니가 에밀리를 대신 데려가려고 오셨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이를 많은 교육기관에 보내 본 적은 없지만, 아이와 함께 다니는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들을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만해도 한국에선 늘 친정 어머니와 친정 아버지, 그리고 동생의 도움을 받곤 했다. 외할머니 등에 업혀서 '어부바'의 맛을 알아버린 아이는 외할머니의 허리와 무릎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모차나 자동차도 거부하며 늘 어부바 상태로 문화센터 강좌를 찾곤 했다. 그 때마다 힘든 내색하지 않고 늘 기꺼이 손주의 전용 가마 노릇을 해주신 친정 어머니 덕에 나는 늘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교차되어 묘한 표정을 짓곤 했다. 엄마보다 할머니 노릇이 더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에서 늘 외할머니 품을 떠날 줄 몰랐던 큰 아이. 다 큰 엄마가 여전히 필요로 하는 엄마가 외할머니인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있었나 보다. ⓒ이은
한국에서 늘 외할머니 품을 떠날 줄 몰랐던 큰 아이. 다 큰 엄마가 여전히 필요로 하는 엄마가 외할머니인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있었나 보다. ⓒ이은

미국에서는 조부모의 양육 참여를 보기가 쉽지 않을 꺼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많은데다, 산후 회복도 빠른 미국 엄마들은 더 수월하게 혼자 아이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했던 탓이다. 하지만 미국 역시, 조부모님이 가까이 사신다면 자주 손주의 육아에 참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독박육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힘든 일이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항상 찾아온다.

사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치솟는 이혼율과 십대들의 이른 임신 등을 원인으로 조손 가정의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2016년 기준으로 미국 전역에 270만 명의 조부모들이 부모대신에 손주들을 키우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2016년 2월 미국 PBS뉴스 참고). 물론 이 통계의 경우는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조손가족인 경우만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부재할 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분이 조부모임은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아이를 데리러 가다 에밀리의 엄마를 마주쳤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지난 번에 에밀리가 할머니를 보고 너무 좋아하면서 뛰어가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에밀리의 엄마는 웃으면서 아이들의 할머니가 다행히 자신들이 바쁠때면 손주들을 자주 봐주신다며 참 감사한 일이라 말한다. 아이들이 할머니를 너무 너무 좋아해서 더 마음 편히 부탁드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던 그녀는 “도와줄 수 있는 다른 가족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야"라고 덧붙인다. 갑자기 궁금해진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육아 방식이 달라서 조금 불편할 때는 없었어?”

“있지. 왜 없겠어! 항상 이건 이렇게 해야한다. 애들한테 이렇게 해야지하고 의견을 계속 말씀하시지.”  

그러고나서는 너도 알지 않니 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에밀리의 엄마가 장난스레 덧붙였다.

“그럼 열심히 듣다가 그냥 다 원래 내 생각대로 해.”

같은 음모의 공모자라도 되는 듯이 우리는 소리 낮춰 함께 웃었다. 육아 패러다임에 혁신적인 변화가 찾아 오지 않는 이상, 아이를 키우는 내내 다른 가족 혹은 돌봄노동자의 도움이 많든 적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의 엄마들도 미국의 엄마들도, 아니 모든 엄마들이 여전히 종종거리고 때로는 안도하고 때로는 작은 혁명(?)을 모색하며 살아가겠지.

친정 어머니가 유난히 보고 싶은 미국의 겨울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 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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