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와 육아의 병행... 미국 유학생 엄마의 딜레마
커리어와 육아의 병행... 미국 유학생 엄마의 딜레마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8.03.29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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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 유학생 엄마의 육아이야기

비몽사몽 눈을 비비고 작은 아이 수유를 한다. 아직 6개월도 안된 꼬물꼬물 순둥순둥 작은 아이도 나도 눈이 반쯤 감겨있다. 작은 아이를 아빠에게 맡겨두고 큰 아이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큰 아이는 날씨가 쌀쌀할 때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한식을 먹고 싶어 한다. 잔치국수를 해 줄 국물을 내어놓고 큰 아이를 깨운다.  

“엄마, 이거 옛날에 한국 외할머니 댁에서 먹던 거랑 국물 맛이 비슷한데?”

국수를 먹던 큰 아이가 엄지를 척 올린다. 외할머니가 해준 게 늘 제일 맛있다고 했던 아이니까 최고의 칭찬인 셈이다. 보통은 주로 미국식으로 시리얼을 먹거나 빵을 먹는데 오늘은 날이 꽤 쌀쌀해서 특별식이었다. 그 때문에 시간이 다른 때보다 촉박하다. 우리 집은 아이 학교까지 애매하게 가까운 탓에 스쿨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부랴부랴 아이와 집을 나선다. 학교 앞에 아이를 데려다주러 온 부모들의 차가 줄을 서 있다. 한 번에 다섯 대씩 순서대로 아이를 내려주면 선생님들이 대기하고 계시다가 아이들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신다.

집으로 돌아와서 작은 아이를 받아 안는다. 남편은 급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아침에 내가 싸놓은 점심 도시락을 챙겨들고는 의리의 뽀뽀를 하고는 집을 나선다. 아침 설거지가 쌓여져 있지만 일단은 미뤄둔다. 아이가 남긴 국수를 후루룩 마시듯 아침으로 먹고는 소파에 구겨지듯 앉아본다. 그나마 작은 아이가 순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바운서에 앉아서 방긋방긋 웃는 아이 덕에 나까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웃어본다. 아차차,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오늘 자정까지 논문 챕터를 보내기로 했다. 허겁지겁 노트북을 켜본다. 써놓은 것은 별로 없고 비루한 몇 페이지 뒤로 흰 공간의 커서만 껌뻑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첫째 때와는 달리 둘째 임신 중에는 입덧이 심해서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누워있어야 했다. 이 때만해도 남편도 아직 박사과정 학생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은 조정할 수 있었다. 남편이 비교적 오후에 일찍 귀가해서 큰 아이를 봤지만 오전반 프리스쿨(Preschool)에 다니던 큰 아이는 집에 오면 아빠가 올 때까지 거의 영상을 보거나 누워있는 엄마 곁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곤했다.

이제는 입덧은 없지만 남편도 일을 하느라 저녁까지는 귀가를 할 수 없어 평일 낮 동안은 본의 아니게 육아는 전적으로 내 몫이 됐다. 논문은 진도가 거의 나가지 않고 저녁이후의 시간에는 남편이 아이를 전담하지만 낮 동안의 피로 탓에 능률이 잘 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 없이 자려고 하지 않는 큰아이를 재우고 늦은 밤부터 공부하려고 하다가는 까무룩 같이 잠들어버려서 새벽녘에야 ‘이 잠퉁아’ 하며 자학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사실 이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공부하는 엄마의 흔한 책상: 노트북 주변에는 늘 장난감이나 젖병이 있다. ⓒ이은
공부하는 엄마의 흔한 책상: 노트북 주변에는 늘 장난감이나 젖병이 있다. ⓒ이은

모든 엄마들이 힘들고 각자의 딜레마가 있지만, 공부하는 엄마의 딜레마는 장학금을 제외하고는 수익 창출이 어렵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은 없는데 해야 하는 일은 따로 쌓여있으니 공부를 위해 따로 시간을 빼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말 그대로 “내가 좋아서 하는 공부”이기에 불평하거나 힘든 티를 내기가 더 힘들다. 특히 한국에서의 공부하는 엄마, 특히 유학 중인 엄마는 한마디로 거칠게 정리하면 ‘팔자 좋게 외국에서 공부 중인 여자’가 돼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지내는 얼마간 이 거친 어휘의 꼬리표 때문에 당황한 적이 꽤 되는데, 그 이유는 첫째, 미국에서의 생활은 금전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그리 녹록치 않다는 사실이다. 내가 한국에서 소위 명문대를 다녔고 내 전공의 교수님들과 커리큘럼에 꽤 만족을 했음에도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하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는 장학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있더라도 꽤 많은 시간을 학사일이나 조교 일을 수반했어야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미국의 대학에서는 학비를 면제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많지는 않지만 절약하고 살면 생활이 가능하도록 의료보험과 생활비까지 지원해주는 장학금을 합격과 동시에 미리 통보해주기 때문에 훨씬 계획성 있게 박사과정을 준비할 수 있었다. 물론 집에 생활비를 보조해 드려야 하는 상황까지는 아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유학생 전부가 소위 금수저 집 자제는 아니다.

둘째, 더 중요한 사실은 설사 소위 누군가가 보기에 정말 “팔자 좋은” 여자라고 해도 각각의 어려움과 고민은 모두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문제를 예단할 수는 없다. 타인의 상황과 어려움, 혹은 그들만의 고민들은 당사자가 돼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또한 어느 개그맨이 말했듯이 누군가가 그 사람보다 더 힘들어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덜 힘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공부하는 엄마는 공부하는 엄마대로 각자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덜 힘들거나 더 힘들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모두가 힘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이 나온 김에 엄살 좀 부려볼까. 피로에 입 안이 다 헐었다. 월세 내고 나면 남는 월급이 별로 없어 작은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길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집 안 일은 쌓여있고 자정까지 스무 페이지가 넘는 글을 마저 완성해야한다. 그래도 나는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을 때 교수님들이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Congratulations (축하한다)!”였지. 한국에서 공부 중인 내 친구가 들은 말은 “너 미쳤구나?’였다지. 그나마 나는 행복한 편인가. 타인의 안 좋은 상황에서 안도감을 느껴야하는 나의 이 어쭙잖은 행복이 불편하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 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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