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기대했다, 육아 휴직한 남편에게
아침밥을 기대했다, 육아 휴직한 남편에게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05.0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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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남편은 엄마가 아니었다

"선배 남편 육아휴직하니까 어때요?"

"좋은 점도 있고, 안 그런 것도 있고."

"뭐죠? 좋기만 한 건 아니네요?"

"그렇더라. 큭큭..."

"왜요, 왜 웃어요?"

"내가 지금 생각해도 웃긴 게... 남편 육아 휴직한 첫날, 내가 남편이 차려준 아침밥을 기대했지 뭐니."

"아, 선배...(웃겨요) 원래 선배가 남편 아침밥 차려줬어요?"

"아니, 내가 새벽에 먼저 나오는데 뭐... 평소에는 남편이 애들 아침 먹이고 출근하거든."

남편의 육아휴직 첫날. 나는 평소대로 오전 5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오전 8시까지 출근한다). 남편은 아직 자고 있었다. '왜 안 일어나지?' 생각하다 순간, '내가 미쳤구나' 싶었다. 남편이 아침밥을 차려줄 거라 기대했던 거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왜 이래... 남편이 엄마냐?"란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이런 속마음을 남편에게 들킨 것도 아닌데 얼굴이 빨개졌다. 서둘러 집을 나왔다. 지하철 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났다. 남편에게 아침밥을 기대하다니... 하하하(육아휴직한 아내에게 아침밥을 기대했던 남편도 어딘가에 반드시 있었을 거라 장담한다).

주말 오전이면 단골로 내오는 남편의 브런치. ⓒ최은경
주말 오전이면 단골로 내오는 남편의 브런치. ⓒ최은경

결혼 후 지금껏 아침은 각자 알아서 해결했다. 그러니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다고 해서 아침밥을 기대한 건 순전히 내 오버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편은 엄마가 아니니까. 오히려 내가 출근한 후에 아이들 깨우고 씻기고 아침을 먹여서 학교에 보내려면 남편에게 아침 잠은 1분 1초가 아까울 거다. 생각해보니 육아휴직 때 내가 그랬다. 그래도 육아 휴직한 남편에게 기대한 게 하나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터. 이번에는 그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내 보려고 한다.

[기대1] 남편이 살림은 다 해주겠지?

남편은 깔끔한 성격이지만 매일 청소하는 스타일은 아닌 듯했다. 남편이 청소했다고 한 날에도 내 눈에는 집안에 쌓인 먼지가 보이고, 여기저기 머리카락이 나뒹구는 게 눈에 띄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치워야 할 것들이 먼저 보였다(그렇다고 치우지도 않으면서). 솔직히 남편이 집안일 하는 것만 보면 '내가 휴직을 하고 말지' 싶을 때도 있었다. 잔소리를 하고 싶을 때마다 '그래도 뭐라도 하는 게 어디야'라며 내 입을 막았다. 퇴근 후 해야 할 설거지가 쌓여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아, 빨래도 있었지! 남편이 주기적으로 한번씩 세탁기를 돌려주니 참으로 좋았다. 심지어 이불 빨래도 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하지만 남편이 절대 하지 않는 게 있었다. 바로 욕실 청소다. 참고로 우리 집 욕실 청소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인 내 담당이었다(남편이 정해줬다). 욕실 청소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해도 내 담당이었다. 남편 육아휴직 전 역할 분담은 육아휴직 후에도 유효했다. 남편이 쉬니까 욕실 청소도 하겠지는 내 생각일 뿐이었다. 하긴 나도 육아휴직 때 음식물 쓰레기는 절대 버리지 않았다. 분리수거도 한 적이 없다. 그건 남편 담당이었으니까. 혹시 그때 남편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을까. 설마 지금 나한테 복수하는 건 아니겠지? 나의 결론, 살림은 '집에 있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각자 역할을 찾아 최선을 다하자. 함께 해야 덜 힘들다.

[기대2] 집에 돌아오면 늘 웃는 남편?

15년 만의 휴식. 처음부터 남편은 아이들 돌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겠노라고 선전포고 했다. 무조건 쉴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쉬면 그간 힘들고 어두웠던 남편의 표정이 좀 밝아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잠자는 자세마저 똑같은 아빠와 달. 출근하면서 몰래 찍어둔 이미지에 뽀샵질 좀 했다. ⓒ최은경
잠자는 자세마저 똑같은 아빠와 달. 출근하면서 몰래 찍어둔 이미지에 뽀샵질 좀 했다. ⓒ최은경

실제 남편은 육아 휴직하니까 회사에서 주는 스트레스가 없는 건 참 좋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집에는 쉬는 남편은 늘 녹초가 되어 있었다. 내가 집에 오면 밝고 환한 표정보다 무기력하고 지친 표정일 때가 더 많았다. "뭐야? 회사 다닐 때랑 표정이 똑같잖아. 집에서 놀면서 왜 그래?" 내가 장난 삼아 놀릴 때면 남편은 "쉬는 게 아닌 것 같아. 더 피곤해" 한다.

1학년, 5학년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육체적인 힘듬보다 정신적인 피로도가 큰 일이다. 애들 싸우는 거 중재하는 것도 그중 하나. 에너지 소모가 많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바통 터치하듯 아이들을 맡기고 지친 몸과 마음 쉴 곳을 찾아 집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녔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남편 모습이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의 결론, 가정도 하나의 일터. 아이들이 주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아이들과 잠시 떨어져 있을 시간은 부모 모두에게 필요하다.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자주 갖자. 경험상 동네 산책이 최고다. 미세먼지 때문에 자주 나가지 못한 게 아쉽다면 아쉽다. 남편과 대화를 많이 해야 부부가, 아이들이 평화롭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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