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만 고집한다면 그것 참 유감입니다
모유수유만 고집한다면 그것 참 유감입니다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05.0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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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엄마 되기 첫 관문! 모유수유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할 때다.”

임신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일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끝내고 여섯 살 난 아들을 키우는 내 입장에서는 이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렇다고 임신부가 들어서 좋을 말은 아니다. 출산을 앞두고 예민해진 임신부에게 지금보다 더한 고난이 오리라 알려주는 게 무어 좋겠는가. 육아가 힘들 거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출산한들 실전에 강해질 리도 없는데… 엄마 경력 6년차지만 육아만큼 인생에서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 일은 단연코 없었다. 특히 갓난아기를 키울 때는 더 자주 ‘멘붕’에 빠졌다. 내 경우에는 아기를 낳던 그날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그림책 「엄마, 고마워요!」은 출산일 풍경을 담고 있다. 출산일을 넘겨 병원에 입원한 엄마는 진통을 기다리며 운동 삼아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아픈 환자들을 보면서 아이를 건강히 키우겠노라 다짐도 하고 신생아실을 둘러보며 배 속 아기와 어서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린다. 엄마의 낯빛에서 두렵거나 초조한 기색은 찾기 어렵다. 드디어 진통이 시작되고 출산, 그리고 아기와의 감격적인 첫 만남이 이어진다. 이내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린 엄마의 모습까지 온통 밝고 평화로워 보인다. 어린 아이에게 엄마가 너를 낳던 날 이야기라며 들려주기에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림책 속 산모는 매 순간을 씩씩하고 의연하게 넘긴다. 출산 직후에는 아기를 안아 젖을 물리는데 더없이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엄마라고 다 그럴까? 내가 아기를 낳던 그날을 떠올려보면 달라도 너무 다른 이야기이다. 유도분만을 위해 입원하던 날 밤, 잔뜩 위축돼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다행히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순산했는데 출산 직후 어떤 두려움이 찾아왔다. 출산이 여성에게 숭고한 경험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분만 과정은 예상보다 더 폭력적이었고 이 때문에 출산 직후 감정이 요동쳤다. 간호사가 다 끝났다며 아기를 보라고 재촉했지만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열 달 내내 꿈꿨던 순간, 아기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어긋나버렸다.

마음을 추스른 뒤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아기 면회를 갔는데 아기를 보자 모유수유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병원 측에서도 엄마가 줄 수 있는 건 모유밖에 없다며 힘을 실어줬다. 임신 기간 동안 ‘완분’만을 생각했던 터였다. 모유수유 하면 따라붙는 수유티도 싫었고 모유수유를 빌미로 남편이 아빠 역할에 소홀해지는 건 더 싫었다. 산모 가슴이 공공재인 양 이 사람 저 사람 젖은 잘 나오는지 부족함은 없는지 한마디씩 거드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생각도 못했던 모유수유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여러모로 애써봤지만 모유수유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 출산보다 더한 젖몸살이 온다는데 그런 상황은 피해갔다. 문제는 아기가 먹는 양에 따라 모유양이 맞춰지는 통에 자연스레 말라버린 것이다. 때마다 유축해 병원에 전달한 모유조차 아기가 퇴원하던 날 상당 부분을 돌려받았다. 애물단지가 된 모유를 보니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분유 먹고 자란 우리 아이는 지금 건강하다. ⓒ한희숙
분유 먹고 자란 우리 아이는 지금 건강하다. ⓒ한희숙

“엄마, 고마워요. 달고 몸에 좋은 젖 배불리 먹여 주셔서 고마워요. 내가 하도 쪽쪽 빨아 대서 젖꼭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면서요? 한밤중에도 몇 번씩이나 젖 달라 칭얼대는 바람에 잠도 푹 주무시지 못하셨죠?” 그림책 「엄마, 고마워요!」의 화자인 아기는 젖을 먹여주는 엄마에게 이렇듯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젖을 먹여줘 고맙다면 나처럼 분유 먹여 아이를 키운 엄마는 어떻게 되는 걸까? 모유수유만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 같은 분위기에서 다른 선택을 한 엄마들은 마음의 짐을 질 수밖에 없다. 나도 당시에는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리 자책할 일이 아니었다. 분유 먹은 우리 아이는 지금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병원에서도 조리원에서도 입을 모아 모유수유를 강조한다. 오죽하면 산모 몸조리를 위해 들어간 조리원이 ‘모유수유 사관학교’ 같다는 우스갯말이 나올까. 조리원의 잦은 수유콜 때문에 모유수유를 하는 산모조차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엄마로서 내 아기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모유수유든 다른 육아 문제든 엄마들에게만 과한 책임을 지우는 건 옳지 않다. 엄마 스스로 지나치게 자책할 필요도 없다. 아이에게 잘해주지 못해서 한 번씩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그림책 「엄마, 고마워요!」를 펼쳐 봐도 좋겠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엄마인지 상기시켜준다. 아이는 엄마에게 열 달 내내 배 속에 품었다가 건강하게 낳아주고 먹이고 씻기고 정성껏 돌봐주어 고맙다고 말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수고와 정성을 알아봐주기 때문이다. 누가 알아봐주길 기대하고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니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힘이 나는 책이다.

그림책 「엄마, 고마워요!」의 한 장면. ⓒ한희숙
그림책 「엄마, 고마워요!」의 한 장면. ⓒ한희숙

아이는 “엄마, 고마워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엄마에게 고마운 이유 열다섯 가지를 꼽는다. 그중에는 엄마마다 부족한 부분도 넘치게 잘해주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모유수유에 실패했어도 그림책 속에서 언급한 몇 가지는 더 잘하려고 애쓰고 있다. 먹거리 문제에 관심이 많고 아이의 정서적 안정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경험의 폭도 넓혀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육아도 부족한 부분은 넘치는 부분에서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다면 육아가 좀 수월해질 것 같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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