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으로 아직 봄이지만 초여름 같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벌써 긴 소매 옷은 덥고 답답해서 하루 날을 잡고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매번 옷장 정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입지도 않고 쟁여두기만 하는 옷들이 왜 그리 많은지. 작년에도 분명 한 짐은 나왔던 것 같은데 올해도 그렇다.
특히 아이 옷은 작년에 입었던 옷이 올해도 맞을 턱이 없다. 옷뿐만 아니라 신발, 모자, 시기가 지난 장난감도 정리 대상 1호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시기라 한 철만 지나면 입지 못하는 옷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한때 ‘아나바다’ 운동이라고 해서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면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자 온∙오프라인 마켓이 활발하게 돌아갔던 것 같은데 요즘은 딱히 멀쩡한 새 옷도 괜히 남에게 주었다 좋지 않은 소리 들을 바에 그냥 버리자 싶은 마음이 든다. 그나마 아이 장난감 같은 것은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사이트를 이용하면 잘 팔리기도 하고, 저렴한 금액에 구매하기도 쉽지만 옷이나 신발 등은 특정 브랜드 제품이 아니면 교환도 거래도 쉽지 않다. 주변의 아기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집안 형제, 자매의 것은 물려주겠지만 다른 사람이 입거나 신었던 것은 왠지 찜찜하여 그냥 나누어 주겠다고 해도 거절한다고들 했다.
나의 경우도 첫아이라 그런지 무조건 좋은 것, 새것으로 입히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절인데 왜 그렇게까지 아이 용품에 무리한 소비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고 나는 그러지 않을 테니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조건 달라고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아이가 태어나고 현재 유행하는 멋지고 좋은 옷과 신발들을 보면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게도 우선 내 아이는 새것을 입히고 대신 누군가에게 중고로 물려주거나 팔면 되지 않나 싶은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일이란 참 쉽지 않다. 특히나 아이에 관한 것만큼은 더더욱. 이번에 아이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또 한번 내 욕심과 부딪혔다. 다시 필요한 옷과 신발들을 사면 이러한 반성과 후회로 가득한 정리가 매번 반복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좋은 것들로만 채워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그런데 때마침 아파트 부녀회에서 공고문이 붙었다. 쓰지 않는 중고 물품이나 옷가지 등을 사고파는 벼룩시장을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 전 종교 행사로 참여해 본 일 말고는 실로 오랜만에 있는 일이다. 몇 가지 아이 물품을 챙기고 빼기를 반복하다가 이번에야말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보자 결심했다. 쓰지 않는 것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필요한 것들 역시 벼룩시장을 통해 구매해 보자! 생각보다 준비 과정이 즐거웠고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 같았다.
또 우연히 지인을 통해 알게 ‘아름다운 가게’라는 상점에 옷이나 물품을 기증하면 조손가정을 도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기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기증한 물품들을 매우 저렴한 금액에 구매할 수도 있다고 하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기증한 물품에 대해 연말정산이 가능한 기부금 영수증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등 각종 행사로 가득한 5월에 내 아이 선물 사기에만 급급했지 정작 이런 날에 더 아프고 외로운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내가 도울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외면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늦었지만 아이에게 가정의 달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고 싶다. 지금이라도 아이 손을 꼭 잡고 본인의 물건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또 작은 마켓이지만 벼룩시장을 통해 착한 소비, 그리고 올바른 경제관념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하다. 여러모로 기분 좋아지는 5월의 마지막! 세상 모든 아이들이 햇살처럼 밝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간직한 어른으로 자라기를, 부끄러운 엄마지만 간절히 기도해 본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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