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애들 키운다면 천국일 거 같아요, 천국"
"미국에서 애들 키운다면 천국일 거 같아요, 천국"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8.09.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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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살이의 그림자

“얼마나 좋아요? 저도 애들 미국에서 키운다면 정말 소원이 없겠어요. 천국일 거 같아요, 천국.”

지난여름 우연히 알게 된 한국의 지인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미국살이에 나름의 고민과 고뇌가 있던 나를 다독여주려고 배려와 응원 차원에서 더 그러겠지 하고는 말았다.

자랑할 것도 별로 없고 자랑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정말 미국이 천국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뒤로 나랑 통화를 할 때도 메신저를 할 때도 심지어 이메일을 할 때도 빼놓지 않고 저 코멘트를 했다. 마치 정말 100% 그렇게 생각하는듯이. 그래서 나는 그 오해를 거두기 위해 오늘 아이들을 키우는 한국인 엄마로서 미국에서 산다는 것의 그림자,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 중 하나를 잠시 말하고자 한다.

미국에서 한국인 엄마로 살면서 인종차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국에 살면서 인종차별을 한 번도 안 겪어본 아시아인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상대적으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훨씬 적은 대학 내에서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인종차별을 겪은 적이 종종 있었다.

내가 겪어본 인종차별을 간단히 나열해보자면, 일부러 (대학에서 대학생들 수업을 가르쳤을 만큼 내 영어는 최악이 아니건만) 내가 하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 하기, 지나가는데 이유 없이 경적을 울려 쳐다보게 하고는 손가락으로 욕하고 가기, 눈을 양옆으로 당겨 아시아인을 모욕하는 대표적인 제스처 하기 등이 있다.

◇ 미국에서 ‘한국인’ 엄마로 산다는 것은…

이런 인종차별은 당하는 것 자체로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데, 더 큰 문제는 혹시라도 아이와 같이 있을 때 이런 일을 당하면 아이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줘야 하는가 하는 민감한 부분이다.

어째서 어떤 사람은 단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 차별 자체가, 그리고 그 원인이 전혀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아이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 위에 나열한 것과 같은 인종차별을 직접 경험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이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시아계로서, 특히 한국계로서 조금씩 불편한 상황을 겪어보는 것 같았다.

아이는 이미 ‘인종’에 대한 막연한 개념을 이해하고 느끼기 시작했다. 프리스쿨 때까지만 해도 하지 않았던 말인데, 킨더가든에 가더니 중국계 아빠와 폴란드계 미국인 엄마를 둔 같은 반 친구를 ‘나랑 비슷하게 생긴 아이’라고 지칭했다. 아시안계가 거의 없는 아이의 학교에서, 아이의 눈에는 그 친구가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아이라고 느껴졌던 것이다.

교문 앞에서 인사를 건네던 선생님이 어설픈 중국어로 인사를 한다든지 (물론 좋은 의도였겠지만), 아이가 싸간 김밥을 보면서 아이들이 “스시다!”라고 했던 일들은 아이에게는 조금 불편한 인상으로 남은 것 같았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설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아이에게 미안하게도 아시안계가 별로 없는 지역에 주로 산 까닭에, ‘다양성’을 강조한다는 학교에서도 아시아 문화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선생님들은 많지 않았다.

좋은 선생님들도 많았지만 일부 선생님들은 부적절한 멘트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아이는 노력을 해서 수학 과제를 잘 한 것인데, " 너의 '문화' 덕분에 너는 수학을 잘 하는구나"라는 어처구니없는 피드백을 준 적도 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학교 밖으로 나가기 전에 복도에서 기다리는 중인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학교 밖으로 나가기 전에 복도에서 기다리는 중인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 ⓒ이은

◇ 아직 어디에도 '파라다이스'는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수는 소수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소수가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소수자 집단은 비교적 쉽게 라벨이 붙여지고 스테레오 타입화 되는 경우가 많다. “동양인은 숫자 계산을 잘해”, “동양인은 운전을 못해”와 같은 단순한 것들로 시작된 일반화가 결국은 편견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아이가 미국에 살면서 아시아계라서 받게 될 편견이 두렵다. 미디어에 아이가 롤모델로 삼을 만한 아시아계 유명인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우리 가족이 어떤 말이나 행동이나 신념을 보여주기도 전에 이미 우리에게 붙여져 있는 라벨이 불편하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Where are you from?(너는 어느 나라 출신이니?)”이라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많은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당혹감이 안타깝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도 이런 감정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내가 느끼는 안정감은 사실 내가 주류 인종이기 때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길거리에서 혹은 관공서에서 혹은 상점에서 “흑인들은 게으르다”, “동남아 외노자들은 수준 이하다”, “중국인들은 왜 여기 와서 시끄럽게 돌아다니냐?”와 같은 인종차별적 코멘트들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미디어에서는 얼마나 많은 인종차별적 시선이 여과없이 드러나는가.

아직 어디에도 파라다이스는 없다. 그저 우리 아이들은 다르다고 해서 틀리거나 더 우월하거나 더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기억하길 바랄 뿐. 어른들이 반복하는 실수를 부디 되풀이하지 말기를. 적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본적인 존중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 그런 마음이 우리 아이들에게 온전히 담기기를 소망해본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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