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유모차도 정말 달리고 싶다
쌍둥이 유모차도 정말 달리고 싶다
  • 칼럼니스트 전아름
  • 승인 2018.09.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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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트윈스 육아일기] 유모차에게 좋은 길은 모두에게 좋은 길

우리는 해방촌에 산다. 남산 아래 첫 마을, 그 해방촌 맞다. 우리 동네 장점? 정말 많다. 침실에서 고개만 살짝 돌리면 창문 너머로 남산타워가 코앞에서 빛난다. 고도가 높아 굳이 남산타워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서울 시내가 한눈에 다 담긴다. 남산공원, 남산도서관이 근처에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다.

외국인들이 많이 살아 동네 분위기가 '글로벌'하다. 트렌디한 술집, 카페 등 개성이 살아 있는 다양한 상점과 90년대 정취를 간직한 오래된 가게들이 함께 공존한다. 동네 분위기도 인간적이라 이웃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다. 교통도 편리하다. 강남, 종로, 영등포, 명동 등 서울 시내 어디든지 멀지 않게 갈 수 있다.

살기 좋고 놀기 좋은 동네지만,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아이 키우며 살기에 정말 ‘빡센’ 동네라는 점이다.

아빠 목마 타고 남산공원 산책중인 경진이. 집 앞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가는 길이 너무 고달파서 문제지만 말이다.
아빠 목마 타고 남산공원 산책 중인 경진이. 집 앞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가는 길이 너무 고달파서 문제지만 말이다. ⓒ전아름

◇ 아기를 낳고 알았다, 정말 살기 힘든 동네라는 걸

우리 동네 길 대부분은 오르막길로 돼 있다. '남산 아래 첫 마을'이라는 수식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동네에서 어딜 가더라도 언덕 하나는 반드시 지나게 돼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래된 동네다 보니 노면이 울퉁불퉁하다. 깨지고 금 간 도로, 푹 패인 도로를 보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됐다.

그러나 처음 해방촌에 왔을 땐 이런 것들이 불편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르막이야 조금 힘들더라도 씩씩하게 운동 삼아 걸어서 올라가면 됐다. 길이 좀 울퉁불퉁해도 맨발로 다니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었다. 오르막길과 울퉁불퉁 깨진 길이 불편하게 느껴진 것은 아기를 낳고서부터였다.

쌍둥이들이 태어난 지 200일 즈음 됐을 때, 처음 어린이집 등원하던 날이었다. 나란히 붙어 있는 쌍둥이 유모차에 아기들을 태워 어린이집 가던 날. 늘 다니던 언덕길이 그렇게 비탈진 길인지 그때 처음 느꼈다. 두 개의 오르막길과 한 개의 내리막길을 지나 어린이집으로 가는 그 10분이 너무 고달프고 힘겨웠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종아리에 알이 뻣뻣하게 서는 느낌이었고 내리막으로 갈 때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유모차 핸들을 잡은 양 손과 발가락 끝에 쥐가 날 정도로 힘을 주고 간다.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는 아기들도 덩달아 같이 흔들렸다. 차도와 인도가 따로 구분되지 않은 곳이라 자동차가 지나갈 때면 그 경사진 길에서 커브를 틀어 길을 비켜줘야 하는 일도 늘 있다.

등원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고 만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등하원은 너무 힘들다. 가끔 친구들이 내 하소연을 듣고 어린이집 하원을 도우러 온다. 그러고 나서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한다. "어떻게 이걸 만날 하냐"라고.

등원 길에 한 컷. 유모차 뒤로 금간 도로가 보인다. 그래도 이정도면 좋은 길에 속한다.
등원 길에 한 컷. 유모차 뒤로 금간 도로가 보인다.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길에 속한다. ⓒ전아름

◇ 약한 사람 중심으로 세상을 만들면 모든 사람들이 편해질 텐데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는 곳도 한정적이다. 동네에 카페도 많고 빵집도 많고 식당도 많고 마트도 있지만 가게 입구에 있는 턱이 너무 높아 유모차가 들어갈 수 없다.

어떤 날엔 가끔 오기를 부려 유모차를 억지로 들어올려 가게에 들어가 빵이나 커피를 사서 먹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이나 행인들이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맙긴 하지만 너무 민망하고 눈치 보여, 먼저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오히려 '괜찮다'고 말하고 집으로 달아나듯 돌아오게 된다.

최근에 집 앞에 편의점이 새로 생겼는데 그 편의점만이 턱이 아닌 슬로프로 입구가 조성돼 있어 유모차가 편히 드나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급히 계란이나 바나나나 우유 같은 것이 필요할 때,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아기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편의점으로 가고 만다.

아기를 낳고, 항상 아기들을 데리고 다니다보니 그 전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이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수많은 교통약자들이 느꼈을 불편함을 생각하게 됐다.

오르막의 경사를 조금 더 완만하게 보수했다면, 울퉁불퉁한 노면을 정비했다면, 깨진 보도블럭을 치웠더라면, 통행로를 넓히고 인도와 차도를 구분해줬더라면, 쌍둥이용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건물의 입구가 넓었더라면 아기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부모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조금 더 편리하게 이 도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아기를 키우며 또 다른 세상을 알고, 느끼게 됐달까.

*칼럼니스트 전아름은 서울 용산에서 남편과 함께 쌍둥이 형제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다. 출산 전 이런저런 잡지를 만드는 일을 했지만 요즘은 애로 시작해 애로 끝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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