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잠재적 아동학대자” 보육교사 커뮤니티가 뜨거운 까닭은?
“난 잠재적 아동학대자” 보육교사 커뮤니티가 뜨거운 까닭은?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8.11.08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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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점검 부적절 사례’ 문서 논란… 당사자와 전문가 입장 들어보니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최근 보육교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된 ‘어린이집 CCTV 점검 부적절 사례’ 내용. ⓒ베이비뉴스
최근 보육교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된 ‘어린이집 CCTV 점검 부적절 사례’ 내용. ⓒ베이비뉴스

“어른보다 약자인 아이들이 우선순위라는 것은 당연하다 받아들일 수 있지만 텀블러에 있는 음료나 커피도 안전상이라는 잣대로 안 된다니 근로자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항목인지….” (보육교사 A 씨)

“부적절 사례 작성하신 분들이 꼭 일주일만 보육교사 체험 좀 해봤으면 좋겠다. 같이 근무해보고 싶다.” (보육교사 B 씨)

지난달 26일 한 보육교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된 ‘어린이집 CCTV 점검 부적절 사례’ 게시물에 달린 댓글 일부다. 해당 문건은 어린이집 원장들이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어린이집 집중점검을 앞두고 보육교사들에게 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보육교사들의 반응이 뜨겁다.

문건의 21가지 부적절 사례에 따르면, 보육교사는 보육시간에 영아 옆에서 유리컵으로 물을 마시거나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CCTV에 찍혀서는 안 된다. 안전상의 문제라고 적혀 있다. 또 보육시간에 교사가 텀블러를 들고 커피나 음료를 마시는 모습이 찍히는 것도 부적절하다.

교사가 영아와 상호작용 시 영아 눈높이에 맞추지 않고 상호작용하는 모습("영아가 고개를 들고 교사에게 말을 하는 것 또한 아동학대"), 낮잠 시간에 교사가 영아의 이불이나 베개를 밟고 지나다니는 행동도 부적절 사례로 적혀 있다.

부적절 사례에는 그밖에도 ▲교사가 과자나 초콜릿, 비타민 등으로 영아에게 자주 보상을 하는 행동 ▲교사가 영아 놀이 시 CCTV 사각지대에 있거나 한 곳만 응시하며 영아 전체를 지켜보지 못하는 모습 ▲연령이 다른 영아들을 한 교실에서 보육하는 모습(0세와 2세) ▲기저귀갈이 매트가 아닌 영아 개인 이불 위에서 기저귀 갈이를 하는 모습(위생·건강) ▲영아들을 한 곳으로 몰아 재우고 교사가 누워서 자거나 쉬는 행동 ▲낮잠시간이 끝난 후 영아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이불을 개려고 하는 경우 등이 포함돼 있다.

◇ "점검에 포함되는 기본적인 것들… 왜 만들었는지 이해 안 돼"

온라인 커뮤니티 내 보육교사들은 굳이 이런 문건을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종이컵도 안 되고 텀블러, 유리컵도 안 되고, 방임하지 않으면 학대한다 그러고, 몇몇 사항은 당연히 지키는 것이지만 항목까지 만들어서 저렇게 공개한다는 게 (문제다)”라고 반응했다.

또한 심리적인 압박감을 표현하며 “아동학대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하라고 작성된 지침이라기보다 교사를 옭아매기 위해 필요한 이들의 보험약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려면 1 대 1 보육 해야 한다”, “진짜 숨 막힌다”, “나는 잠재적 아동학대자인 건가”, “정말 설 자리가 없게 만든다” 등의 의견을 남겼다.

일부는 부적절 사례로 적시된 내용을 반박하며 “교실은 닭장만 한 크기에 애들 스무 명. 평소도 좁디좁은데 이불이라도 깔고 밥이라도 먹을 때에는…”, “각 가정에서 이부자리 위에서 기저귀를 갈지 않나. 이게 학대라니 참 어이가 없다”, “집에서도 (통제) 못하는 문제 행동을… (점심시간에) 세 번 거절하면 먹이지 말고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자. 자유 선택으로 존중해주면 된다”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어린이집 CCTV 점검 부적절한 사례' 게재 후 달린 댓글 내용 중 일부 캡처. ⓒ베이비뉴스
'어린이집 CCTV 점검 부적절한 사례' 게재 후 달린 댓글 내용 중 일부 캡처. ⓒ베이비뉴스

‘CCTV 부적절 사례’에 대해 보육교사들이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해당 문건을 어떻게 봐야 할지 교사 노조와 학부모, 원장을 비롯해, 학계 및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들어봤다.

우선 서진숙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기본적으로 교사들은 자는 아이들을 넘어 다니지 않고, 아이의 이불을 실내화 등을 신은 채 밟지 않는다. 특히 뜨거운 물 같은 건 아이들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둔다. 이러한 것은 아이들에 대한 예의이자 안전을 위해 지키는 것들”이라고 전제했다.

그리고 서 부위원장은 “그러나 ‘잠시라도 아동에게 눈을 떼지 않는다’, ‘교사가 둘 있으면 (자주) 이야기하지 않는다’와 같은 내용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맥락을 봐야 한다. 특정 행동만 보고 아동학대로 보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 아동이 가장 약자이기 때문에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맞지만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 문건이야말로 반인권적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 "교사는 감시당한다 생각할 수도… 헌법상 기본권 침해"

어린이집 원장들의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 주혜영 산내들생태어린이집 원장은 CCTV를 설치한 것부터가 인권침해라며,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 원장은 “이런 문건은 처음 본다. 원장 입장에서 보면 잘 정리한 것 같다"라며, "하지만 이렇게까지 교사를 교육하는 것은 어린이집 아동학대에 대한 불신 때문에 원장과 교사가 짜고 몸을 사리는 것으로 조심하자는 의미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 김옥주 원장은 “(이 같은 문서를) 본 적 있다. 원장 입장에서 교사회의 시간에 언급하거나 전달할 수는 있지만 지침으로 할 것까진 아니라고 본다"라고 답했다. 또한 "만약 정리한다면 일부 내용 중에 상식선에 포함되는 내용은 구분해서 주의해야 할 점 정도로 따로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이한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학부모의 시각에서 이야기했다. 이 활동가는 “부적절 사례라고 지적된 것들이 CCTV 설치의 본질적인 목적인지 의문이 생겼다. 지적된 대부분이 가정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양육하기 위해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텀블러에 음료를 마시는 문제, 낮잠 잘 때 이불을 깔고 나면 맨바닥이 안 보이는데 밟지 않을 수 있는지 등 일부 내용은 과한 것 같다. 인간이길 포기한 로봇에게 아이를 맡기지 않고선 어떻게 다 지켜질 수 있겠느냐”며 “전혀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학계 전문가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해당 문서의 필요성에 의문을 던졌다. "특별한 것이 아닌 아동학대 예방 요령이고 지자체 점검 내용에 포함되는 기본적인 것들인데 굳이 필요한가"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왜 이런 것을 만들어 돌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장이 교사를 지도할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고 CCTV 설치 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법률 전문가의 의견은 어떨까. 법률사무소 휴먼의 류하경 변호사는 “이는 헌법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 침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류 변호사는 “아동학대 등 범죄예방을 위해 설치가 허용되는 것이지 업무감시 목적으로 설치 운영하는 것은 위법”이라면서 “교사가 느끼기엔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테고 행동도 위축될 수 있다. 교사가 이런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에 놓이면 아이들에게 좋을 게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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