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처럼 다가온 아이
눈처럼 다가온 아이
  • 강석우 기자
  • 승인 2010.12.23 23: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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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 행복체험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보건복지부(장관 진수희)는 지난 26일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보건복지부 청사에서 ‘우리아이 행복 체험수기 공모전’ 시상식을 열고 총 622편의 출품작 중 최종 11편(대상 1편, 우수상 10편)을 선정해 시상했다.

 

다음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송월(여, 서울시 송파구) 씨의 ‘눈처럼 다가온 아이’ 전문이다.

 

눈처럼 다가온 아이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우리아이 행복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송월씨의 아들. ⓒ송월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우리아이 행복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송월씨의 아들. ⓒ송월

 

2003년 나는 잘 살 수 있을 거란 천진한 꿈에 부풀어 한국 땅을 밟았다. 신기해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주는 시댁식구들, 입이 귀에 걸려 사소한 것까지 배려해주는 남편, 적어도 겉으로만은 행복했다.

 

양파껍질 까듯 하루 이틀 지나서 한 달에 가까워 올 무렵 난 이것이 내가 바라던 행복이 아님을 깨달았다. 날마다 전화기에 대고 아기부터 낳아야 한다는 시어머님, 아기 있기 전엔 직장을 다니지 말라는 남편, 잠깐 밖에 나가도 허둥지둥 찾는 시댁식구들, 도망 갈까봐 보이지 않는 감시를 하면서 불안에 떠는 그들의 모습에 국제결혼을 단순하게 생각한 난 그저 허탈하고 서글펐다.

 

어항에 갇힌 듯 답답하고 눈물이 먼저 나오는 외로운 나날 속에 모두의 바람대로 덜컥 임신을 했다. 시부모님들은 동네방네 경사 났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고 남편은 친구들에게 한턱을 쏘면서 한껏 들떠있었다. 허나 기쁨도 잠시 한 달이 조금 지나서 일주일째 지속된 하혈과 함께 아기가 집밖을 나가서 그만 유산이 되고 말았다.

 

풍선에서 김새는 듯 한 시댁식구들의 실망을 피부로 느끼면서 난 내 몸부터 추스려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하고 건강한 아기를 위해서라도 한 일 년 후에 다시 아기를 갖기로 상의를 했다. 다행이 남편은 내말에 순순히 수긍을 했다. 시댁식구들의 보이지 않던 감시도 어느 정도 풀려 직장을 다니면서 한국문화를 배우고 한국 사회를 이해하게 되었다.

 

선진적으로 발전한 바깥세상과의 소통은 나에게 꿈을 꾸는 것 만 같았다. 날아갈 듯 신나던 생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조차 없는 증상이 나를 꿈에서 깨여나게 했다. 그렇게 아이가 눈처럼 머뭇거리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우리 곁에 다가왔다.

 

2005년 1월의 마지막 날 나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기다리고 바라던 남자아기를 출산했다.

 

20일 먼저 출산한 딸을 제쳐놓고 나한테 달려와서 산후조리를 해주시는 시어머니, 잠든 나를 깨우지 않고 자다가 아기울음소리만 들리면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아주는 남편, 나를 진심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그러나 한 달 뒤에 치른 시동생의 결혼식에서 난 국제결혼의 높은 마음의 장벽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의 결혼식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에 가득 찬 눈동자로 결혼식장에 간 나는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시어머님과 아가씨들 모습에 비교되는 양복을 입은 나의 초라함에 거리감을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가기 싫다는 나를 억지로 결혼식장에 데리다 놓고는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결혼식장 밖에서 유모차를 끌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동안 결혼식은 진행되었고 누구하나 문안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결혼식이 끝나서 결혼식장이 텅 빌 때까지도 난 모두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밖에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어렵게 찾은 폐백식장에서 시부모님과 아가씨들은 절을 받고 있었고 남편도 나에겐 무관심한 채 폐백받기에 급급했다.

 

아무리 외국에서 왔다고 해도 명색이 맏며느리인데 이건 너무한 것 같았다. 시동생이랑 한집에서 일 년 넘게 같이 살면서 임신막달까지 빨래해주고 밥 챙겨주고 나름대로 잘해주려고 애를 썼는데 눈길 하나 마주치지 않는 시댁식구들에겐 난 아직까지도 단지 외국에서 시집온 여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못생긴 아기 오리의 소외감과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과연 내가 한국여자라면 이러했을까? 하는 서러움에 가슴속엔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당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숨어버리고 싶은 무서운 생각이 나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혼자 나오려다가 포대기에 쌓인 아이의 초롱초롱한 맑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애비없는 자식이라고 무시당할 아이의 모습이 얼른거리면서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강한 자존심에 눈물은 흘리지 못하고 가슴에선 피가 뚝뚝 떨어져도 꼼지락 대는 아이에 대한 모성애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나안의 또 다른 나를 이겨낼 수 있었고 참아낼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부딪치는 문화충돌에 티격태격 다투기가 일쑤였지만 앙앙 울어대는 아이의 얼굴이 눈에 밟혀 확 가버리고 싶은 수많은 내 발길을 잡았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 항상 생선같이 팔딱팔딱 날뛰던 내성격도 순해져갔고 이해와 인내로 가정을 지키는 법도 배웠다.

 

아이가 거의 한 돌이 될 무렵 시어머님이 금덩이를 보자기에 싸갖고 찾아왔다. 결혼식도 못해주고 패물이라도 얼른 해주어야 했었는데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었다. 그건 단순이 금덩어리가 아니었다. 이젠 너를 믿고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내식구로 받아들인다는 증표였다.

 

위기를 넘기니 찬란한 햇살처럼 눈부신 행복이 찾아왔다. 수많은 전쟁 끝에 지금 우린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부부가 되여 화목하게 살고 있다. 금방 시집을 왔을 적 올케라고만 불러주던 아가씨들도 이제는 언니라고 부르고 시부모님도 무슨 일이 있으면 나부터 찾는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물과 기름처럼 마음을 서로 섞지 못할 때 아이가 핏줄로 끈끈이 묶어주었기에 진정한 가족을 만들 수 있었고 다문화라는 힘들고 어려운 가정을 남들보다 백배 더 노력하여 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눈부신 행복은 저절로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눈처럼 다가온 아이-울 아들이 가져다주고 만들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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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ys**** 2011-04-30 18:51:00
아이가.. 보물이네요..
이제는 행복하

qer**** 2011-02-18 23:57:00
정말
정말 다행이네요^^
그래도 한번슬픔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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