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이는 재롱잔치에 보내지 않겠습니다"
"저희 아이는 재롱잔치에 보내지 않겠습니다"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9.01.2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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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한부모에게 지옥 같은 유치원 행사

“선생님, 사랑이는 재롱잔치에도 졸업식에도 보내지 않겠습니다.”

처음으로 사랑이 담임선생님에게 냉정한 어투로 말했다. 처음 듣는 나의 차가운 음성에, 사랑이 담임선생님은 긴장된 목소리로 사랑이를 왜 재롱잔치에 보내지 않는지 그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흘 전, 핸드폰에 사랑이 유치원의 공지사항 알림이 떴다. 2월 셋째 주 화요일 오후 3시에 재롱잔치, 같은 주 금요일 오후 1시에 졸업식. 남들이 보면 '그게 왜? 뭐가 문젠데?'라고 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다. 2월 초에 설날이 있어서 가뜩이나 쉬는 날도 많은데, 같은 주에 재롱잔치와 졸업식을 이틀이나 넣어 놓으면 어느 회사가 좋다고 보내주겠느냐는 말이다.

하루는 눈치 보며 월차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롱잔치는 사랑이가 춤 연습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꼭 보러오라고 미리 예고하며 신신당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졸업식도 고민이었다. '그래도 첫 졸업식인데…'라는 생각도 들었고, 7년 동안 사랑이를 혼자 키운 나에게 '잘 견뎠다 잘 버텼다'라고 상을 주는 기쁨이 있는 날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고민 끝에 '시간 변경을 부탁해볼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소망으로 전체 행사를 좌지우지 하는 건 너무 과한 치맛바람이라고 생각됐다.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회사를 다니는 엄마아빠들이 있으니 그분들을 등에 업고 시간 변경을 조심스럽게 부탁하면 긍정적으로 고민은 해주시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전화를 했다.

"원장님, 이번 행사가 일주일에 두 번이 잡혀 있는데, 혹시 시간 조정은 안 될까요? 오후 3시, 오후 1시는 회사 다니는 엄마들은 오기가 힘들거든요. 또 아빠들 중에도 오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요?“

어렵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벌써 공지가 다 나갔고, 장소를 힘들게 빌려서 시간 변경이 어렵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라는 교과서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재롱잔치 날 엄마가 왔을까 두리번거리는 사랑이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이가 받을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내 가슴을 후벼파는 것처럼 너무도 아팠다.

그래서 화가 났다. 그 순간은 원장님의 말이 너무도 잔인하게 느껴졌다. '다른 유치원은 잘도 저녁이나 주말에 행사를 잡던데!'라고 따지고 묻고 싶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그냥 이해해주시길 바란다'는 원장님의 대답에 눈물이 핑 돌고 화가 났다. 하지만 혹여나 내 딸이 눈총을 받게 될까봐 감정을 꾹꾹 누르며 얘기했다.

“요즘 사랑이처럼 한부모, 조부모와 사는 아이들이 많은 건 원장님도 더 잘 아시죠? 사랑이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졸업하니까요. 하지만 내년에 행사 진행할 때는 이런 아이들의 상황까지 이해하고 챙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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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원장님의 말을 듣고 나서 정중히 전화를 끊었다.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결국 이 사달이 난 건 모두 나의 이기적 선택 때문인 것 같았다. 우리 딸이 이렇게 상처 받고 자라는 하는 원인제공자가 바로 나인 것 같아서, 미안함 마음과 속상한 마음이 뒤섞였다.

그날 퇴근 후 딸에게 재롱잔치는 못 갈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마자 사랑이는 대성통곡을 했다.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엄마, 재롱잔치에 못 와요? 흑흑… 저 엄마한테 보여주려고 춤 연습 열심히 했는데… 엉엉엉….”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딸을 보며 또 심장이 미어질듯 아팠다. 전 남편이 생각나면서, 마음 같아서는 "당신 때문에 결국 이 사달이 나서 사랑이만 상처 받잖아!"라고 쏴붙이고 싶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전 남편을 욕해봤자 내 기분만 나빠질 게 뻔하지만, 내 아이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상처받는 것을 보니 너무 슬펐다.

그걸 무능력하게 지켜보는 착찹함과 비참함이란…. 그 감정이 그대로 쌓여 밤새 잠도 못 잤다. 결국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담임선생님께, 사랑이를 재롱잔치도 졸업식도 보내지 않겠다는 전화를 하게 된 것이다.

나의 전화에 선생님도 울었다.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죄송하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나도 그만 같이 울어버렸다.

“선생님, 저는 사랑이가 상처 받는 게 싫어요. 가뜩이나 저 혼자 아등바등 해도 채워지지 않는 아빠의 빈자리가 있는데, 이번 행사 일정은 정말 배려가 없어서 화가 납니다.”

나와 선생님은 서로의 잘못이 아닌데도 서로 죄송하다 사과하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부부라면 휴가를 번갈아 써가며 "당신은 재롱잔치에 가, 나는 졸업식 갈게"라고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그들이 부러웠다.

나는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할 것들을 위해 매일 내 상황을 조율하고 고민하고 선택하며 살아왔다. 그 선택과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든지 상관없이 혼자 책임지며 사랑이를 지켜왔다. 그동안 그래왔듯 나는 최대한 씩씩하고 당당하게 이번 재롱잔치 사건도 지혜롭게 잘 넘겨 사랑이를 웃게 하리라 다짐한다.

왜냐하면 나는 사랑이를 지켜줘야 하는 유일한 단 한 사람, 사랑이 엄마니까!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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