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맘 8년차, 내가 짓고 싶은 표정은
전업맘 8년차, 내가 짓고 싶은 표정은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9.02.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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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자란다] "재미지게 살아~ 재미지게 살아~"
각양각색의 삶이 있듯, 부부의 모습도 다양하다. 우리만의 분위기를 만들며 8년째 '투닥토닥' 하는 부부로 살고 있다. ⓒ신은률
각양각색의 삶이 있듯, 부부의 모습도 다양하다. 우리만의 분위기를 만들며 8년째 '투닥토닥' 하는 부부로 살고 있다. ⓒ신은률

명절을 며칠 앞두고 거창 시골 할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아흔이 넘으신 친할머니께서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 생을 마감하셨으니 말하자면 호상이었다. 부랴부랴 짐을 싸서 거창에 마련된 빈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거창에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하기 전에는 명절마다 다니던 거창이었다. 결혼 후에는 시댁이 있는 논산으로, 친정이 있는 부산으로만 다니니 거창에는 갈 일이 거의 없었다.

거창으로 가는 차 안에서 생전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주름진 표정, 앙다문 입술, 좀체 웃는 법이 없던 할머니는 산초가 들어간 추어탕을 잘 끓이셨다. 곁들여 먹던 김치가 무척 시원했다. 음식을 내오는 할머니의 모습 뒤로 시골집 풍경이 펼쳐졌다. 모두가 젊고 어렸던 시절. 아빠들도 숙모들도, 결혼한 후로 보지 못한 사촌들도 어린 모습으로 할머니집에서 시끌거렸다. 그리운 얼굴들이었다. 기억 속의 시공간은 시간에 닳고 닳아 동그랗고 부드럽게 남았다.

장례식장에는 아빠의 다섯 형제를 포함해 그의 아내와 자식들, 그 자식들의 어린 자식들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였다. 대가족이었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 시어머니였던 나의 할머니가 온가족을 불러들이셨구나. 이런 일에만 나 같은 '출가외인'들이 자신의 본가에 때맞춰 모일 수 있구나. 상복을 입고 앞으로 3일을 함께 보내게 된 우리가 슬프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5촌이 되는 사촌들의 아이들을 보니 시간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연이와 윤이에게는 6촌 지간이 되는 아이들이다. 촌수가 어찌되는지도 모르고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장례식장 한 켠에서 색종이를 접고 과자를 먹었다. 그런 아이들을 귀엽게 보고 있으니 한 살 많은 사촌언니가 나를 보며 "공부해봤자 이렇게 사네" 하고 말을 툭 던졌다. '이렇게 사네'는 '엄마로만 사네'라는 말일 것이다. 모르는 척하고 싶었지만 그 말 뜻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촌언니는 워킹맘이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해도 육아의 많은 부분을 엄마가 담당하게 되니, 두 아이의 엄마인 사촌언니도 그만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김아연의 책,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청림라이프, 2018년)에는 전업맘은 전업맘대로 워킹맘을 부러워하고,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전업맘을 부러워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타인의 어린 인생은 어떤 엄마에게나 버거운 기쁨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엄마로 사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말에 엄마로서 묘한 동지애가 생겼다.

엄마로만 살면서 내가 느낀 투쟁적인 지점은 바로 '전업맘=능력없음'이었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좀 억울했던 것도 같다. 지금 내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데, 아이는 내가 그저 엄마라는 이유로 무한한 신뢰를 주고 그런 믿음이 나를 더없이 이타적으로 만드는데, 아이와 함께 엄마도 성장하는데, 어떤 점에서 내 삶은 무능력하거나 아깝거나 안타깝게 '해석'되는 걸까.

아이가 올바르게 크는 건 한없이 바라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째서 하찮게 여겨지는 건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그런 인식의 전제에는 아마도 집안일은 하찮은 일이라는 게 깔려 있을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저 희생의 범위에 들어가는 시간들. 이 사회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건 대체적으로 그런 대우를 받는다. 돈, 돈 하는 요즘 세상의 형식에는 아마도 전업맘은 맞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사정은 모른 채 편하게 산다, 팔자 좋다, 그렇게 마음껏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사는 지금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이다. 현재 사회의 기준에서는 엄마로, 집안의 주인(主婦)으로 나름대로 잘 살고 있어도, 성취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내 삶은 계속 문제적일 것이다. 한때는 경쟁에서 한 발 물러나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게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를 잃은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무언가를 꼭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앞이 안 보였다. 아이들은 자꾸 뒷전이 됐다.

돈 안 되는 것, 무용한 것이 없으면 이 세상이 다 채워지기나 할까. '이 세상에 필요한 무용함을 자진해서 담당하고 있으니 오히려 사회가 나에게 빚을 지고 있는 건 아닌가' 되레 뻔뻔해지고 싶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나를 함부로 판단하는 주변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그대로 두어보고 싶었다. 뜨거운 가마에 들어가 있는 도자기가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 "재미지게 살아"

빈소에 앉아 있으니 막내 삼촌이 말을 걸었다. 내가 둘째 윤이만 할 때 부산에 있는 대학에 다니느라 잠깐 우리 집에 살았던 막내 삼촌이 이제는 그때의 삼촌 나이를 훌쩍 넘은 나를 보고 올해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쉰이 넘은 삼촌에게 이런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오랜 농사일 때문인지 왠지 그의 눈이 순한 소의 눈망울과 닮아 있었다.

"서른여섯? 니가 서른여섯이가?" 삼촌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경상도 사투리로 반문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때가 젤로 재미있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이 진짜 재미있었다. 40대 지나니까 금방 50되고 이제 마 쪼금만 있으면 60인기라. 우째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다 그래 지나갔다." 나에게 하는 얘기인지 본인에게 하는 얘기인지 말을 마친 막내 삼촌은 말없이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무심한 세월을 살다간 '엄마'가 떠올랐는지 삼촌의 두 눈은 천천히 붉어졌다.

팔딱거리는 두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께서도 종종 넋두리를 하셨다. 연이와 윤이를 보면 30여 년 전 어느 날이 떠오르는 듯 아이들 어릴 때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솜사탕처럼 부풀었다고, 시집살이에 농사일에 하루하루 고됐지만 돌아보니 아이 키울 때가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다고 말씀하셨다. 그 얘기를 하는 어머니의 표정이 하도 고와서, 어머니 나이가 되어서 과거를 돌아보는 내 모습이 어떨지 퍽 궁금해졌다.

인생의 고생스러웠던 어느 때가 즐거웠다고 추억되는 것은 힘든 시간을 모두 지나왔기 때문이겠지만 지금의 내 시간을 지나간 어른들의 말은 위로가 됐다. 누구나 한때 어렸던 이들이 든든한 어른이 되어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시절은 시절마다 무게를 안고 지나간다. 어쩌면 누구나 버텨야 할 시절의 몫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저마다 가능하면 현명하게 그 시절을 지나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몇 년 전, 결혼식을 앞두고 여든 되신 시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시할머니께서는 첫 손주며느리인 나에게 "재미지게 살아~ 재미지게 살아~" 하셨다. 다른 말들에 비해 '아'는 길고 반음 정도 높았다. '잘 하라'는 말 대신 '재미있게 살라'고 하는 어른을 그때 처음 만났다. 어떻게 사는 게 재미지는 건지도 모르면서 나는 밝은 표정으로 그러겠다고 끄덕였다. 반음이 올라간 끝말처럼 삶도 저절로 조금 '업'되는 기분이었다. 

◇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세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입시 위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다루어서 화제가 됐다. 아이를 전적으로 믿으며 키우는 '천연기념물' 이수임은 1등만을 원하는 남편을 둔 노승혜가 자식 교육에 대해 고민을 하자,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세요"라는 조언을 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 학벌로 빡빡하게 구성된 사회는 일단 두고,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걸 찾으라는 말이었다.

노승혜는 집으로 달려가 창문도 없이 어둡고 위압적으로 만들어놓은 스터디룸을 부순다. 그녀의 행동은, 거대한 교육 시스템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집안의 분위기를 바꾼다. 그 분위기가 자신과 아이들과 가정을 살린다.

현실이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겠지만, 사회가 정해놓은 형식은 내가 바꾸려야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옳다고 정해놓은 현재의 형식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선을 넘는 말을 하는 친척을 말릴 수는 없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삶의 형식을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노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한쪽에게 과중하게 치우쳐 있는 육아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 하더라도, 언젠가 무언가 달라져 있을거라 기대하면서.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저자는 엄마가 된 이후로 커리어를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그 전과 같지 않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는 대신 직장에서의 목표를 바꾼다. 저자에게 목표는 승진해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게 아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날, "그동안 행복하게 일했고, 그 덕분에 앞으로도 행복할 거야"라고 웃으며 말하는 것이다.

성과를 중시하는 회사는 그런 저자를 허투루 평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용감하게 "나도 변하지 않으면서 무엇이 변하길 바라느냐"고 말한다. 그렇게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아간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만의 삶의 균형을 찾는 사람들. 치앙마이 NONGBUAK 공원에서. ⓒ신은률
다른 사람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만의 삶의 균형을 찾는 사람들. 치앙마이 NONGBUAK 공원에서. ⓒ신은률

이 말은 실은 누구에게나 유효하다. 전업맘을 두고 아이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쉽게 치부하는 이곳에서 나는 하릴없이 '희생'의 아이콘이 되고 싶지 않다. 아이를 키우는 '일'을 하면서 나도 자랐다고, 남다른 성취를 했다고, 그래서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사회의 형식에 내 삶을 가두지 말고 재미지게 살자. 엄마의 삶을 뭉뚱그려 판단하는 말에 갇히지 말고 재미지게 살자.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반음 올라간 재미진 삶이 아닐까. 전업맘이든 워킹맘이든 서로의 자리에서 균형을 찾다보면 현재의 육아 시스템도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때로는 엄마로만 살면서 육아와 살림의 허무함도 무참히 느끼겠지만, 할 수 있는 한 나를 위해 '재미지게 살자'.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글을 쓰며 '가정의 주인(主婦)'으로 살고 있다. 여덟 살 연이, 여섯 살 윤이를 키운다. 일 년의 절반은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남편에게 육아를 가르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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