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동안 친정엄마와 여행을 세 번 갔다. 그렇다고 나를 효녀라고 부르는 건 사양한다. 생각해 보면 세 번 모두 나 좋다고 떠난 여행이었으니까. 심지어 세 번째 강릉-삼척 여행은 남편이 숙소를 쓸데없이 넓은 곳을 잡아주는 바람에 엄마를 깍두기처럼 끼워 넣어 떠난 여행이었다.
처음 여행지인 통영은 둘이 떠났다. 작은 호텔을 잡고, 아침 식사는 조식으로 해결하고, 낮에는 맛집 탐방을 하고, 저녁에는 시장에서 횟감을 떠와 숙소에서 엄마와 맥주를 마셨다. 엄마의 주량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첫날, 달아공원 일몰을 보려다 시간을 못 맞춰 다음날 다시 갔는데, 그 낮은 언덕도 걷기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괜히 내가 욕심을 부렸나 싶기도 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를 하지 굳이 갈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리는 엄마가 좀 답답하기도 하고 그랬다.
두 번째 여행지는 일본 규슈였다.
평소 패키지 여행을 선호하지 않지만 엄마를 모시고 자유여행은 꿈조차 꿀 수 없어 일찌감치 포기하고 여행사에 등록 했다. 엄마는 “아유~ 가족여행에 노인네가 끼면 재미없지”라고 하면서도 규슈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며 여권사진을 냉큼 보내왔다.
규슈여행에서 문제는 온천이었다. 뇌 질환이 있는 엄마에게 병원에서 의사가 분명히 사우나, 온천을 조심하라고 했다는데, 조심은 무슨. 온천호텔에 왔으니 온천을 가야 한다며 엄마는 저녁나절 두 번이나 온천을 갔다. 바닥이 미끄러운 온천을 엄마 혼자 가게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뜨거운 사우나를 질색하는 내가 어쩔 수 없이 동행할 수밖에.
또 하나는 화장실 문제였다. 연세가 드시니 자주 화장실을 가는 엄마. 어디를 가든 화장실부터 다녀오는 엄마를 보며 “정말 엄마가 아이가 되셨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여행에서 가장 복병은 시도 때도 없이 “엄마, 화장실~”하는 아이들이었다. 너무 귀찮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주저 없이 아이를 들고 화장실을 찾아 뛰었다. 그런 생각이 나니 새삼 엄마가 늙었다는 생각이 들고 서글퍼졌다.
세 번째는 며칠 전 나와 아이들, 그리고 엄마와 떠난 동해. 고백하건대, 연달아 두 차례 엄마와의 여행을 하고 나니 "이제 엄마랑은 나~중에 가야지”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엄마와 하는 여행은 이것저것 제약이 많은 여행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진심으로 이렇게 자주 갈 생각은 없었는데, 앞서 말한대로 과도하게 좋은 숙소를 얻는 바람에 ‘숙소가 아까워서’ 다시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엄마는 “겨울바다라니!”라며 평소에 안 하던 하트까지 세 개나 붙여 메시지를 보내고 소녀처럼 좋아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며 “그래, 잘 한 것이야” 혼자 되뇌며 세 시간 걸려 강릉 커피거리에 도착했다. 카페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높은 계단을 엄마와 올라갈 자신이 없어 주저하니 또 굳이 갈 수 있다며 가파른 계단을 낑낑거리고 올라가는 엄마. 다행히 다 큰 손녀들이 할머니를 보조해주니 한결 수월하다.
삼척 숙소에 짐을 풀고 추암촛대바위 근처 대게식당으로 나갔다. 가격을 보자마자 “너무 비싸다”며, 한사코 "안 먹겠다”던 엄마를 끌고 식당에 들어갔다. 해산물이 나오고 살이 꽉 찬 대게 두 마리가 한 접시 나왔다.
그 날 나는 다시 한 번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똑같은 레퍼토리, “엄마는 생선 머리 좋아해”, “엄마는 아이스크림 안 좋아해”, “엄마는 비싼 집 불편하더라”라는 말이 얼마나 새빨간 거짓말이었는지 다시 한 번 경험했다. 엄마들은 사실 다 좋아했던 것이다. 오동통한 생선살,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비싼 레스토랑에서 마시는 와인 한잔… 엄마의 식성을 확인한 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다리에 몇 번 쥐가 나서 힘들어했다. 그나마 그 사실도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려고 잠깐 세웠을 때 알았다. 엄마가 내내 참다가 내가 차를 세우니 그때서야 내려서 발을 동동 굴렀기 때문이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지. 왜 그러는 거야”라고 나는 짜증을 냈다. 그래서 나는 효녀가 아니다. 아직 멀었다. 아니, 죽을 때까지 온몸으로 불효를 시전하다 끝낼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분명, 아이를 데리고 나서는 여행길이 고될 것을 알면서도 비행기도 타고, 캠핑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엄마 쉬이~” 하고 “엄마 업어줘” 하는 통에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행복했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녔다.
아마 나도 그렇게 내 엄마를 적잖이 불편하게 했던, 힘들게 했던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 잊고 여행을 갈 때마다 ‘나이 든 엄마와 함께여서 불편할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어쩜 이리도 이기적인가.
고모부가 얼마 전 하셨던 얘기가 떠올랐다.
“미야야, 아이 때는 엄마가 널 돌봤지만, 이젠 너가 아이처럼 엄마를 돌본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다 그런 거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나는 아이도 잘 길렀으니 이제는 나이 들고, 쇠약해진 엄마와도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자, 이제 엄마와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볼까?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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