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딸에게 왜 자꾸 '아빠'를 묻는 거야?
싱글맘의 딸에게 왜 자꾸 '아빠'를 묻는 거야?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9.03.13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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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사랑, 초등학교 입학하다

사랑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이제 사랑이 학교 들어가면 학부모 되는 거야? 아이고~ 다 키웠네.”

“학부모가 되니까 어때? 감회가 새롭지? 애 입학하는 날 그렇게 뭉클하다고 하더라.”

주변 언니들은 경험담을 한마디씩 보태며 엄마 혼자 키운 사랑이의 입학식을 축하해줬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엄마는 혼자 감동의 눈물을 흘리겠지?'

'사랑이의 입학식을 보며 감회도 새롭고 뭉클하며 가슴이 벅찬 데다가 지나간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촤르르르르르 지나가겠지?'

대답부터 하자면, 아니올시다. 전혀 아니올시다. 나는 딸의 입학식 날짜를 꼽으며 ‘이번엔 또 뭐라고 회사에 얘기하지? 이러다 정말 잘리는 것 아니야?’ 같은 생각만 했다. 남들 눈에야 엄마 혼자 키운 딸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그 어떤 역경 극복 드라마보다 ‘감동의 도가니탕’이겠지만 나는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누군가 “사랑이 입학하니까 감동이지?”라고 물었다. 나는 “입학식이요? 아무 생각 없는데요. 학교에서 그만 불렀으면 좋겠어요”라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애써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딸의 초등학교 입학. 당연히 기쁘다. 그런데 남들 다 하는 입학식을 사랑이도 하는 것뿐이다. 별다른 것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주변에서 하도 그러니까 엄마로서 너무 감동도 없고 냉정한 엄마로 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사실 나는 딸이 초등학교에 간다는 기쁨보다 사랑이가 학교에서 상처받을까봐 걱정되는 마음이 크다. 아빠 없이 사는 아이라는, 남들과는 약간 다른 사랑이의 특별한 환경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랑이에게 상처를 줄까봐 내내 마음이 쓰였다. 

사랑이가 학교에 들어간 첫 번째 주. 예상했던 일이 닥쳤다. 입학 후 제출해야 하는 서류에 ‘아빠’를 쓰는 공간이 너무 많았다. 네모난 칸에 들어있는 '엄마‘, 그리고 ’아빠‘라는 단어가 사랑이에게 혼란을 줄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은 스스럼없이 ’아빠‘에 대해 써내는데… 사랑이는 ’아빠‘ 옆 빈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쓰기 싫은 아빠란. ⓒ차은아
아, 쓰기 싫은 '아빠'란 ⓒ차은아

그런 걱정을 했던 것은 비단 사랑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당황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던 날, 학교에서 5시까지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라고 했다. 그때 해당 학생의 정보를 적으라며 서류 한 장씩을 나눠줬는데, 그 서류에도 ‘아빠’와 ‘엄마’가 나란히 자연스럽게 있었다. 그 부분을 보면서 나는 살짝 멈칫했다. 

얼굴을 알고 지내는 다른 엄마들은 스스럼없이 남편의 개인정보를 써 내려갔다. 나는 순간 전 남편 주민등록번호를 대충 적어버릴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스스로 당당하다고 말하면서도 내 주변을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비참하기까지 했다.

'이런! 또 현실 앞에 작아지고 있어. 이럴 줄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또 세상의 시선에 눈치 보며 쪼그라들고 있잖아!'

마음을 고쳐먹고 나는 다시 서류를 씩씩하게 적어내려갔다.

학교에서 보내는 다양한 서류 중 ‘학생 기초 조사서’라는 통신문이 있다. 학부모의 전화번호를 적는 공란 중 나는 ‘아빠’라는 단어에 검정색 볼펜으로 줄을 쫙쫙 긋고, 그 자리에 '이모'라고 쓴 뒤 사랑이 이모의 전화번호를 적어냈다. 

통신문을 다 쓰고 나서 나는 사랑이를 앞에 앉혀놓고 이렇게 물었다.

“사랑아, 너는 아빠가 있어?”

“없어! 나는 아빠 없어!”

사랑이는 아주 씩씩하게 대답했다. 씩씩해서 좋다만, 한편으로는 너무 씩씩하게 키웠나 싶어 다시 부드러운 말투로 얘기했다.

“사랑아, 너는 아빠가 있어. 널 정말 사랑하는 아빠가 미국에 살고 있어. 그렇지만 우리는 아빠와 같이 살지 않는 것뿐이야. 엄마랑 이모랑 사랑이랑 살고 있을 뿐이야.”

사랑이는 나의 말에 “네~ 알겠어요”라고 밝게 대답했다. '엄마 때문에 혹시 사랑이가 일부러 밝은 척하는 것일까?' 걱정은 됐지만, 엄마는 아빠랑 이혼한 것뿐이지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할 수 없으니 ‘아빠는 살아 있고, 널 아주 사랑한다’ 정도만 이야기해도 충분한 것 같았다.

며칠 전, 마찬가지로 싱글맘인 언니가 이혼한 남편과 함께 일부러 가족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언니 아이가 사랑이와 동갑인데 학교에 들어가면 가족사진을 가져오라고 한다면서, 애 아빠를 만났을 때 겸사겸사 아이를 위해 일부러 가족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정말 정말 싫었지만 아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순간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언니는 피식 웃었지만, 나는 언니의 얼굴에서 ‘그래도 아이를 위해 나름 좋은 결정을 내렸다’는 마음을 읽었다. 

사랑이도 곧 가족사진을 학교에 가져가야 한다는 말을 할 것이다. 나는 그때가 오면 사랑이와 내가 가장 밝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학교에 보낼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아빠’라는 모든 글자들이 상처를 남길까, 내가 아무리 이렇게 아이를 씩씩하고 당당하게 키워도 언젠가는 친구들의 아빠를 보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하는 약한 마음이 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랑이를 붙잡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랑아, 우리 더 멋지게 살자. 엄마랑 사랑이 둘이 아주 멋지게 말야. 아빠 없이도 그까짓 것 멋있게 살아보자. 우리는 할 수 있어. 그치?”

“네, 엄마. 우리 둘이 멋지게 살아요! 우리는 할 수 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한 우리 사랑이에게 아빠의 빈자리가 어떻게 다가올진 아직 알 수 없지만, 나는 오늘 또 다짐한다. 남들보다 더 멋지게 살아보는 거지, 뭐! 다들 우리를 부러워하게 말야!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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