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버스를 타다니! 엄마가 해냈어!"
"베트남에서 버스를 타다니! 엄마가 해냈어!"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9.03.2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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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호찌민에서 버스 타고 여행하기

“여기는 택시비가 싸서 주로 택시를 많이 타요.”

베트남 호찌민 떤선녓 공항에서 7군 집까지 40분 정도의 거리를 1만 원 정도면 올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산본까지 가는 택시비가 4만 원 내외. 그에 비하면 싼 거다. 내가 만약 3박 4일 베트남 여행자였으면 매일 택시를 타는 것에 대해 관대했을 거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봐야 하니까.

버스를 타면 안내원이 돈을 받고 표를 준다. 성인 1인 5000동, 즉 250원. 싸도 너무 싸다. ⓒ최은경
버스를 타면 안내원이 돈을 받고 표를 준다. 성인 1인 5000동, 즉 250원. 싸도 너무 싸다. ⓒ최은경

하지만 나는 베트남에서 한 달 살기 하는 시간 부자. 급할 게 없었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선택하기만 하면 알아서 데려다주는 '그랩'이나 손짓 발짓을 다해서 설명해야 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택시만 타고 다니기는 뭔가 좀 재미가 없었다. 시시했다.

그래도 처음엔 길을 잘 모르니까, 택시나 그랩을 자주 이용했다. 그러다가 어느 블로그에서 7군에서 1군 시내로 나가는 버스비가 5000동, 즉 우리 돈으로 단 돈 250원이라는 걸 알게 됐다. 택시비만 거의 120만~150만 동을 내고 다녔다. 그것도 편도 요금만.

내가 버스비보다 무려 30배에 가까운 택시요금을 내고 다닌 거였다. 뭔가 굉장히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우리 돈으로 생각하면 7000~8000원 정도의 요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실제로 정말 많이 타고 다니지만, 뭔가 엄청 과소비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적 느낌'일까.

아이들과 시내 관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급히 근처 버스정류장을 수배했다. 구글 지도상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버스 정거장이었다. 아싸! 그런데 오 마이 갓. 핸드폰 배터리가 15% 정도 남았다. 전원이 나가면 그랩도 부를 수 없고, 지도도 못 본다.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뭐지? 아이들과 힘겹게 도착한 정류장에는 어쩐지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올 것 같지 않았다. ‘뭔가 잘 못 되었다’는 동물적인 직감. 분명 여긴데 왜 버스가 서질 않지? 찌르는듯한 태양을 피해 근처 호텔 로비로 아이들을 피신 시켰다. 핸드폰 배터리 8%. 아아, 전원 꺼지면 안 되는데…. 우선 버스 정거장 주소를 확인하고, 그랩을 켰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선택하고, 차가 오길 기다렸다.

그랩 차를 타고 보니 버스 정거장은 정반대의 길이었다. 먼 곳은 아니었다. 여행자 거리 근처의 버스 종점으로 보이는 곳에 내렸다. 102번 혹은 34번 버스를 타야 한다.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에게 "102번 버스가 오냐?"고 물으니 온단다. 근데, 내가 사는 7군 푸미흥에는 34번 버스도 간다고 알려준다.

아이들과 서둘러 버스에 탑승했다. 휴, 그제야 안도감이 몰려온다. 버스에는 안내원이 동승하고 있었다. 버스비는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3인이 만 동, 단 돈 500원이다. 근데 어디서 내린담? 신경을 바짝 세우고 두리번두리번하는 사이,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베트남이 눈에 좀 더 가까이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다본 시내. 오토바이들이 버스 옆에 바짝 붙었다. ⓒ최은경
버스에서 내다본 시내. 오토바이들이 버스 옆에 바짝 붙었다. ⓒ최은경

특히 좁은 시장 골목을 버스가 누비고 다닐 때 더 그랬다. 시장에서 저녁 장사 준비를 하는지 숯불에 고기를 끊임없이 구워대는(돼지갈비 같은 음식, 껌슨을 파는 집 같았다) 사람들, 그 연기에도 아랑곳않고 식사를 하거나 이야기하는 손님들, 생고기를 가게 앞에 늘어놓고 파는 곳도 보였다. 베트남은 아직 냉장고가 없는 집도 많고, 실제 시장에서 고기나 생선을 파는 곳에도 냉장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 눈앞에 그런 모습이 펼쳐질 줄이야.

거기에 쉴 새 없이 울려대는 버스 경적과 함께 버스와 시합이라도 하듯 몇 센티미터 간격으로 함께 달리는 오토바이는 아슬아슬함 그 자체였다. 아이들은 그 경적 소리가 불편한 듯, 신기한 듯 여기다가 이내 잠들어버렸다. 아이들이 잠든 사이 한참 시내 구경에 빠져 있던 내게 익숙한 길이 보였다. 얼마 전 올케와 함께 와 봤던 시장(떤미)였다. 이 근처에서 내리면 되겠구나. 아이들을 깨워 버스에서 내렸다. 잠이 덜 깬 아이들에게 신나서 말했다.

베트남 버스를 탄 아이들. 베트남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많이 타고 다니는지라 버스는 승객이 별로 없는 거 같다. ⓒ최은경
베트남 버스를 탄 아이들. 베트남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많이 타고 다니는지라 버스에는 승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최은경

“미션 완료야. 엄마가 해냈어. 베트남에서 버스를 타보다니! 이젠 버스 타고 다니자. 택시보다 재밌잖아.”

아이들은 울상이 되어 말했다.

“엄마 그냥 택시 타고 다니면 안 돼요?”

그 후로 엄마투어를 시작할 때마다 “왕복 택시비를 아끼면 카페에서 너희들이 원하는 음료와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다”고 아이들을 회유했다. 둘째아이는 극구 반대했지만, 큰아이는 엄마가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줬다. 둘째도 계속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

그 덕에 친정엄마가 베트남에 왔을 때 버스를 타고 시내 관광을 해도 될 만큼 지리를 웬만큼 익혔다. 여행자의 거리, 통일궁, 빈탄 시장, 책의 거리, 오페라 하우스 주변은 웬만큼 혼자서도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빠듯한 일정이 아니라면, 버스를 타보시라. 그 도시를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테니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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