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딸 "아빠 없이 사는 거 억울해요"
여덟 살 딸 "아빠 없이 사는 거 억울해요"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9.03.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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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엄마가 네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니

초등학교에 들어간 사랑이가 요즘 너무 예민하다. 벌써 2주째 내가 무슨 말만하면 짜증부터 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스트레스가 많아 예민한 것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의 짜증스러운 말투가 거슬렸다. 애가 예민하다못해 엄마한테 이게 무슨 버릇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급기야 나는 사랑이에게 짜증과 원망이 섞인 말투로 훈육했다. 

“사랑아, 엄마가 지금 너한테 씻으라고 말도 하면 안되니? 엄마가 너한테 엄청난 것을 바라고 얘기한거야? 학교에 다녀오면 자기 전에 씻는 게 당연하지. 그리고 너 지금 안 씻으면 어영부영하다가 그냥 잘 거잖아. 그래서 엄마가 지금 씻으라고 한건데 매번 엄마한테 짜증을 내면 엄마는 너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거야? 네가 대답해 봐.”

엄마가 화 내는 모습에 놀랐는지 사랑이는 “엄마, 잘못했어요. 빨리 가서 씻을게요”라고 말하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너무 심하게 나무랐나 싶었지만, 어른들에게 바르게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또,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어린이집과 달리 적응기간이 꽤 필요해 스트레스가 많다는 이야기도 주변 언니들에게 들은 터였다. 그래서 그냥 그날은 나와 사랑이가 서로 조심하며 조용히 넘어갔다. 

◇ 아빠 없이 사는 것이 너무 억울해요라며 울던, 내 딸 사랑이 

그런데 그 다음날에도 나의 말에 사랑이가 또 짜증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그런 사랑이를 보며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 그렇게 혼나고도 오늘 또 엄마한테 버릇없이 구는 사랑이가 괘씸하기도 했다. 나도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사랑이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사랑.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엄마가 너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짜증이지? 아무리 어려도 행동을 보면 이 아이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알 수 있어! 네 머리 속에 나쁜 생각만 가득하니까 이렇게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 아니야? 이리 와. 엄마한테 혼 좀 나봐!”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했거늘… 그 유명한 말을 알고는 있었음에도 나는 주먹으로 사랑이의 머리에 꿀밤을 콩-하고 때리고야 말았다.

마음 같아서는 더 지혜롭게 아이를 타이르고 싶었지만, 나도 그 순간 참지 못했다. 짜증섞인 사랑이의 표현법이 나를 너무 화나게 했다. 그래서 꿀밤을 때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꿀밤을 맞아본 사랑이는 그 사실에 너무 놀랐던 모양인지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럭 화를내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가 아무리 돌머리(?)라고 해도 머리는 때리지 마세요. 너무 아파요.”

그 순간 사랑이의 표현법이 정말 귀여웠지만, 나는 지금 사랑이를 혼내는 중이다. 무서운 얼굴 표정을 유지하면서 사랑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머릿속에 나쁜 생각이 있으니까 엄마한테 매번 짜증내는 것 아니야? 그러니까 엄마가 나쁜 생각하는 네 머리를 일부러 때린거야.”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사랑이는 엉엉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억울해요! 엉엉… 아빠 없이 사는 것 저 너무 억울해요. 엄마는 남편이 없으니까 매일 늦게 오고, 나는 아빠가 없으니까 매일 늦게까지 학교에 있고… 아빠 없이 사는 것이 너무 억울해요…."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말이야. 왜 갑자기 억울하다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이야기하지?'

나는 사랑이가 울며 이야기한 내용과 그 표현법에 너무 놀라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아빠 없이 사는 게 억울하다고?’

아빠에 대한 원망의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왔다.

◇ 아빠가 있었으면 엄마가 일 안했겠지, 그럼 나도 엄마랑 같이 집에 갈 수 있었겠지

사랑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사랑이는 학교에 다니며 아빠의 빈자리를 너무 크게 느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사랑이는 이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빠의 빈자리를 인정해야 할 때다. 

“김사랑. 아빠 없이 살아야 하다는 것은 너도 알고 있는 일이잖아. 왜 억울하다고 말하는거야? 엄마는 지금 너의 버릇없이 이야기하는 부분에 대해서 혼내고 있잖아.”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동안 사랑이의 짜증이 나에 대한 원망과, 아빠에 대한 더 큰 원망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아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아이의 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이가 짜증을 낸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으므로 그냥 사랑이의 마음을 애써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수업이 끝나는 낮 12시 30분이면 다른 친구들은 모두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를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 등하교 습관 기른다고 엄마들이 며칠 같이 다닌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엄마와 함께 집에 가는데 사랑이는 엄마가 돌보미 교실에 있다가, 그 교실이 끝나면 학원에 갔다가, 엄마와 똑같이 늦은 저녁 7시까지 밖에 있어야 했다. 그런 하루를 보내는 것에, 아이는 꽤 지쳐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랑이는 ‘아빠가 있었으면 엄마가 일 안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아빠가 없는 자신의 삶이 억울하다고 표현하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기어이 입 밖으로 꺼낸 날, 서럽게 울며 참았던 원망을 뱉어내고 있었다. 

‘… 미안해, 미안하다. 딸아….'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이 아픈 내 마음을 딸한테 어떻게 알려줄까. 그동안 쌓인 서러움에 복받쳐 우는 딸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났다. 그렇지만 이내 눈물을 닦고 담담한 척 아이를 안아주었다. 

‘이제 울어봤자 소용없어. 그동안 울 만큼 울었으니 더 독하게 마음먹고 이겨내야 해. 언제까지 울 거야. 이제 울어도 소용없어. 내가 더 독해지고, 더 단단하게 마음먹고 헤쳐 나가야 해. 다른 방법은 없어.“

한참 서럽게 운 사랑이는 내 품에서 어느정도 진정됐는지 반 친구 중 한 아이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 친구는 아빠랑만 사는데 엄마가 집을 나갔대. 그 친구는 엄마가 없대. 나는 아빠가 없는데….”

나는 사랑이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 친구라는 아이가 안타까웠다. 그 아이의 아빠는 꼭 아이에게 엄마가 집을 나갔다고 이야기해야 했을까. 아이의 마음이 엄마에 대한 원망과 상처로 얼마나 가득할까.  

그렇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사랑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상황 자체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봤자, ‘아빠는 널 너무 사랑하지만, 아빠가 엄마에게 너무 큰 잘못을 해서 더 이상 우리는 함께 살 수 없다’고 아무리 말해봤자, 사랑이의 마음을 달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사랑이는 ‘아빠가 없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애 쓰고,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드러나는 아빠의 빈자리.

정말, 크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빈자리. 그 자리가 이제 8살인 사랑이에게 너무나 큰 원망으로 채워지고 있다. 모르는 척하자니 아이의 마음이 걱정되고,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고… 어떻게 해야할까, 정말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어 답답하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사랑이를 달래는 것 밖에 없다. 그런 것 밖에 할 수 없는 나는 못난 엄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서로를 안고 안아주는 일 뿐. ⓒ베이비뉴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서로를 안고 안아주는 일 뿐. ⓒ베이비뉴스

며칠이 지난 지금도 딸은 아빠 없이 사는 게 억울하다고 말한다.

아빠의 빈자리가 너무 억울해서 화가 난다고 이야기하는 딸의 마음을 나는 그저 들어줄 수 밖에 없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사랑이를 안아주고, 사랑이의 억울한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 뿐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사랑이도 지금보단 이런 상황을 더 이해하고 성숙하게 바라볼 것이다. 그 시간이 빨리 오길 바랄뿐인 나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무능한 엄마다. 

아빠는 지금 사랑이에게 존재하지 않지만,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사랑이가 먼 훗날 웃으며 추억하길 바라며, 나는 그저 이 시간이 잘 지나가주길 바라고 있다. 지금 내가 사랑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이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고, 인정하고,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것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도 언젠가 이 모든 상황을 인정하고, 이해할 것이다. 

못난 엄마는 오늘도 그냥 사랑이를 안아주고, 또 안아주기만 한다.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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