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엄마도 두근두근! 미국에서 생애 첫 소풍
아이도 엄마도 두근두근! 미국에서 생애 첫 소풍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9.04.29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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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엄마도 함께하는 미국 학교 소풍 이야기

소풍 전날 확인한 일기예보는 무심했다. 아이의 생애 첫 소풍 날 폭우가 예상된다고 하니, 준비할 것도 신경쓸 것도 더 늘어났다. 아이의 레인부츠와 비옷을 꺼내놓고 혹시 준비 없이 오는 다른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니 여분의 우산도 하나 더 챙겨두었다.

미국의 학교에는 셰퍼론(chaperone)이라고 해서 아이들의 체험학습에 부모가 자원봉사자로 함께 따라가는 제도가 있다. 한 반에 20명이 조금 넘는 아이들을 담임선생님 혼자 다 인솔하기가 쉽지 않으니 반 학부모들의 지원을 받아서 성인 한 명당 3~5명의 아이들을 배정해서 좀 더 효과적으로 체험학습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큰아이의 첫 소풍에 따라가기로 결정한 건 담임선생님의 간곡한 전체 이메일을 받고 나서였다. 아직 저학년이기에 셰퍼론의 수가 많을수록 좋고 현재 지원자 수가 많지 않으니 많은 분들이 셰퍼론에 지원해주십사 하는 부탁이 담긴 이메일이었다. 결국 아이의 첫 소풍이 궁금한 마음도 컸기에 셰퍼론 봉사에 지원하기로 했다. 소풍 당일 새벽에 일어나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김밥을 싸고, 얼른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교실에 모여서 선생님의 안내문을 받고 큰아이는 물론 같은 반 세 명의 아이를 함께 배정받았다.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넓디 넓은 (아이가 가게 된 동물원은 무려 미국에서 제일 크다는 500에이커, 약 200만 m²가 넘는 자연서식지형 동물원이었다!) 동물원을 탐험할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됐다.

아이들은 큰 버스에 오르고 셰퍼론에 지원한 같은 학년 20명 남짓의 엄마들은 각자의 차에 올랐다. 1시간 30분가량 걸리는 동물원까지의 여정이 시작됐다. 아이들을 태운 큰 버스 두 대가 앞서 달리고 엄마나 아빠가 운전하고 따라가는 차들이 줄 서서 그 뒤를 달렸다. 의전수행을 하듯 아이들의 버스를 감싸고 줄지어 달리고 있는 나를 포함한 학부모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동물원 주차장에서 만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오늘 내가 담당하게 될 친구들을 소개받고는 드디어 우리들만의 동물원 탐험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흥분의 도가니였다. 한 친구는 이미 달릴 태세였다.

달리는 것이 제일 좋다는 트리스탄이라는 친구에게 “트리스탄, 달리기를 참 좋아하고 잘한다고 들었어. 그런데 오늘은 우리 그룹 친구들이 다 같이 동물들을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야. 트리스탄이 빨리 달려서 혼자 가버리면 우리는 트리스탄이랑이랑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트리스탄을 찾을 수 없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오늘은 다같이 천천히 다니는 날이야.”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

트리스탄은 중간중간 넘치는 스피드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종종 달릴 때도 있었지만(심지어 중간에는 달리려던 모습을 담임선생님께 딱 들키고 말아 선생님께 혼났다) 생각보다는 말을 잘 듣고 잘 따라와 주었다. 동물원은 워낙 드넓었고,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을 위해 최대한 넓고 자연상태에 맞게 지어졌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서 동물을 보거나 관찰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예컨대 코뿔소가 워낙 드넓은 초원에서 노닐고 있으니 코뿔소가 보이기는 보이는데 저 멀리 손가락 크기만하게 보인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더 신이 나서 “저기 코뿔소예요, 코뿔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이 기분 좋아하니 덩달아 나도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몰랐다.

동물원에서 북극곰을 구경 중인 아이들. 같은 반 다른 그룹 친구들과 마주쳐서 더 신났다. ⓒ이은
동물원에서 북극곰을 구경 중인 아이들. 같은 반 다른 그룹 친구들과 마주쳐서 더 신났다. ⓒ이은

하지만 작은 시내를 발견하자 신발을 벗고 들어가려는 아이, 굳이 미끄러운 바위 위에 올라가 보겠다는 아이 등 친구들의 돌발행동에 혹시라도 누구라도 다치면 어쩌나 순간순간 통제하느라 애를 먹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빗길에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아이들과 이동했다.

점심시간에는 모든 학년이 피크닉 구간에서 만나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학교 점식식사를 신청한 친구들은 학교 급식실에서 준비해서 보내 준 샌드위치와 우유, 과일 등을 먹었고, 집에서 점심을 싸온 친구들은 보통 피넛버터 샌드위치나 잼이 발라진 샌드위치나 크래커 등을 가져와 먹었다.

우리 아이만 화려한(?) 김밥과 모양을 낸 간식 도시락을 싸 온 셈인데, 옆에 있던 다른 반 엄마가 “그 도시락을 먹을 수만 있다면 초등학생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특이해 보였던 것 같다.

소풍 때는 반드시 식사 후 바로 버릴 수 있는 일회용품에 점심 식사를 싸와야 하는데, 따뜻한 날씨에 음식이 상하는 사고가 발생할까봐 한꺼번에 아이들 이름을 적어놓은 점심을 취합해 아이스박스에 넣어놓았다가 점심 식사 뒤에는 전부 휴지통에 버리고 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환경을 지키는 일은 멀어지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상한 음식을 먹게 되거나 무거운 점심 도시락이나 가방을 소풍 내내 들지 않아도 되게 도와주는 셈이다.

아이들의 간식이나 물도 학교에서 미리 기증받은 물품을 아이스박스에 넣어놓았다가 셰퍼론으로 따라온 학부모에게 주면, 학부모가 본인의 가방 속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마다 담당한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 아이들은 빈손으로 자유롭게 걷고 구경하고 체험하면서 소풍 날을 보낸다.

일기예보가 틀려서 비는 오전 일찍만 잠시 내렸다가 흐린 상태로 하루가 마감됐다. 처음 가는 소풍이었지만 엄마가 같이 따라간 탓에 아이는 덜 긴장했던 것 같다. 소풍 전날 설레서 잠을 제대로 못 자던 아이는 소풍에서 돌아오자마자 정신없이 잠들었다. 사실 학기말이 다가오는 4, 5월은 유학생 엄마에게 정말 바쁜 달인데, 그래도 함께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안전하게 그 넓은 곳을 재미있게 탐험하고 왔으니 대성공인 셈이다. 소풍 직후 출구에서 다시 모였을 때 나와 눈이 마주치자 “We survived, yay(우리 살아남았어요, 만세)!”를 외치던 담임선생님의 환희 반, 자조 반의 농담이 생각난다. 어른의 소풍은 아이들의 소풍과 온도가 다르지만, 여전히 이번 소풍은 나에게도 다른 의미로 두근두근했던 것 같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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