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는 구걸 아닌 권리… 나도 받아야겠다
양육비는 구걸 아닌 권리… 나도 받아야겠다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9.07.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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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법적으로라도 아이를 지켜주고 싶어요

한 남자가 있었다. 이혼을 한 뒤 재혼에 성공했고, 새롭게 생긴 새 가정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지난날의 실수를 통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더 이상은 과거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며 지금 살고 있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최고의 남편과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재혼을 통한 가정이지만 열심히 잘 산다고 칭찬했다.

또 다른 한 남자가 있었다. 전 부인과 싸우고 집을 나간 후 한 여자를 임신시켰고, 그 여자와 새로운 살림을 차리고도 전 부인에게 모든 사실을 4년 동안 비밀로 했다. 첫째 딸과 전 부인을 버리고 지금까지 양육비와 위자료도 주지 않고 있으며, 전 부인은 혼자 힘들게 애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등장한 두 남자는 사실 같은 남자다. 바로 내 전 남편. 누군가는 그를 재혼 후 정신 차리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정적인 남자로 알고 있다. 또 누군가는 마누라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자식도 버린 인간 같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욕을 하고 있다. 이 남자는 현재 재혼한 가정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전 가정에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난 재혼했다는 부부들을 만나면 꼭 묻곤 했다.

"아이는 있나요? 재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같이 키우지 않는다면 전 부인에게 양육비를 정확하게 주세요. 이것은 당연한 책임이고 그 아이의 권리입니다."

양육비는 아이의 권리이자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건 빈곤을 자처하는 일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나처럼 매달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한달살이' 인생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현실에 대한 자괴감과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당당히 양육비를 받으려 했다. 나라에서 법적으로 위자료와 양육비를 주라고 했어도, 우리나라 법은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다. 상대방의 잘못으로 이혼을 했어도 '배 째라'고 나오면 무슨 짓을 해도 양육비를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위자료는 둘째 치고,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도 커진다. 여자 혼자 가장이 돼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경제적으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빠로서 책임을 다하길 바라니 양육비라도 제대로 줘'라고 했지만 연락까지 끊어버리고 '잠수'를 탄 전 남편에게 어찌 양육비를 받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자기 첫 자식을 이렇게 버렸으면서도 지금 가정의 자녀들에게는 '착한 아빠'로 살고 있을 생각을 하니 열불이 났다.

◇ '착한 아빠'로 살고 있을 당신에게 꼭 묻고 싶다

양심이 있어서 알아서 양육비를 주면 좋으련만, 인간은 이기적이고 완악하다. 긴 시간 기다린 끝에 법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고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전화를 걸었다. 양육비를 받고 싶은데 법적으로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하니, 엄청 많은 서류의 제목들이 나열된 문서 한 장을 보여주면서 '서류를 준비해서 양육비이행관리원 접수처로 등기우편을 발송하라'고 했다.

제발 좀 양심이 있길 바라는 서류로 그 사람에게 도착하길!!!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양육비 이행을 청구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들 ⓒ차은아

필요한 서류 목록을 보니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서류, 이혼한 법원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서류, 은행에서 양육비 지급받은 통장내역, 최근 1년치 국민건강보험료 등 굵직한 서류들을 모두 준비하라고 돼 있었다.

그때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아서 은행이나 가정법원에 가는 것이 여유가 있었지만, 혼자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는 한부모 입장에서는 이 서류를 준비하는 것도 꽤나 긴 시간이 걸리겠다고 생각했다.

은행 업무를 마치고 가정법원에 들어가 서류들을 발급받았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내가 울먹이는 얼굴로 '억울하다, 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이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바람을 피우고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얘기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렇게 아픈 추억이 있는 곳에 다시 와서 "예전에 이혼 시 받았던 서류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많이 씩씩해지고 건강해졌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서류를 발급해주는 분께 "저처럼 이혼 증빙 서류를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나요?"라고 물어어봤다. '너무나도 많다'는 그분의 말에 우리 둘 다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그 길로 모든 서류를 정리해서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것 때문에 너무 많은 회의감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법적으로라도 해야만 내 아이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이래봤자 다른 통장으로 돈을 돌려놓고 '돈 없어요' 하거나, 이사하고 나서 '서류 받은 적 없어요' 하고 잡아때면 그만일 거다. 하지만 당장은 그렇게 안일한 생각으로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를 등한시하더라도, 이제 법적으로 잘못의 흔적이 남기 때문에 나중에 어떤 불이익이 갈지는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될 거라 믿는다.

며칠 후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서류가 잘 접수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제 '그 사람'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라도 하길 바랄 뿐이다. 전 남편 혹은 대한민국에 살면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지금 당신과 살고 있는 당신의 아이는 행복하길 바라면서 당신의 또 다른 이 아이는 왜 행복할 권리를 박탈하고 살고 계십니까?'라고.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7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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