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억 빌딩 산 키즈유튜버가 부럽지 않은 까닭
95억 빌딩 산 키즈유튜버가 부럽지 않은 까닭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9.08.0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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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 하는 엄마의 눈으로] 이미 부자인 아이들의 영혼을 가난하게 만드는 건 어른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나의 친정엄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딸 자랑 삼아 하는 말들이 있다. 예를 들면 자라면서 한 번도 매를 들어본 적이 없다든지, 아기 때 데리고 나가면 다들 예쁘다며 한 번만 안아보자고 했다든지, 또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애국가 쓰기 대회에서 전교 1등을 했다든지 하는 소소한 것들이다.

이런 자랑들 사이에서 가장 이상한 자랑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얘는 어릴 적에 돈만 주면 울었어"라는 얘기였다.

분명 내 편집된 기억으로는 용돈 받는 재미로 친척들을 만나는 일에 군소리 않고 따라다닌 나였는데, 엄마는 내 기억과는 달리 힘주어 그렇게 이야기하셨다. 그건 달리 말해 이런 표현이었다. “얘는 어릴 때부터 돈에 관심이 없었어.” 그리고 그 말은 엄마에게 “나는 자식을 잘 키웠어”라는 자긍심이었나 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사실이었다면 분명 내 어릴 적 엄마는 ‘돈’을 터부시하도록 교육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내가 지금까지 경제적 개념이 약한 이유도 그로 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조금의 원망도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 넘치면 모자르니만 못하다 했던가. 최근 돈에 대한 욕망은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이고 과하다. 이런 사회풍토는 아이들의 문화에도 거름망 없이 그대로 이식되고 있다.

아이들 대화에 “너희 집 몇 평이야?”라거나 “너희 아빠 월급이 얼마야?”라는 말은 그냥 애교 수준이다. 그냥 장래희망이 ‘부자’다. 무엇이 되기 위하거나 무엇을 하기 위해서 ‘부자’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부자’가 꿈인 아이들. 누가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이미 부자인 아이들의 영혼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 ⓒ베이비뉴스
키즈유튜버들의 억대 고소득이 씁쓸한 까닭 ⓒ베이비뉴스

얼마 전 여섯 살짜리 유명 키즈 유튜버가 서울 강남의 95억 원짜리 빌딩을 매입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 유튜브 채널은 해당 아이가 자동차 운전석에 앉은 장면, 아빠의 지갑에 손을 대는 모습 등을 내보낸 이유로 한 국제 아동인권 단체에 의해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당연히 대부분의 기사들은 이 채널을 비판하고 우려하는 내용이었지만 댓글들은 또 그렇지도 않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댓글에서 “배가 아파서 그러냐”, “이게 사회적 추세인데 어쩌라는 거냐”고 말하고 있기도 했다.

물론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키즈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부모들의 적지 않은 수가 아이의 재능이라거나 꿈이라는 허울 속에 어른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을 (반)강제 노동으로 내몰거나 학대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정말 그들의 말처럼 배가 아픈 걸까?

큰아이는 돌잔치 때 명주실을 잡았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아이가 돈을 잡지 않았다고 아쉬워했지만 나는 좋았다. 사회자가 노골적으로 지폐를 들고 흔들었는데도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는 실을 들어올렸다. 지금도 나는 아이에게 말해준다. 너는 건강할 거야, 돈 말고 이 세상엔 가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 라고.

나는 '돈=부정한 것'이라고 가르친 내 엄마와 달라서, 내 아이들은 용돈을 더 달라며 엄마와 '밀당'을 하기도 하고 인터넷 쇼핑을 한 뒤 장바구니 폭탄을 나에게 던져놓기도 하는 적당한 ‘이 세상’ 아이들로 자라고 있다. 나 역시 대놓고 복권을 매주 긁어대지는 않지만 남편의 복권번호를 성심성의껏 불러주면서 당첨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을 꼽아보곤 하는 정도의 적당한 속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치’의 순서는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이 돈의 주인이 되어야지, 돈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돈은 편리한 것이지만 돈이 목적이 되는 삶은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부자’는 ‘꿈’이 될 수 없다. 꿈 같은 허황된 이야기일지라도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위해 살라고 말해줘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노릇이라고 믿는다.

이미 부자인 아이들의 영혼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돈’의 가치가 사람의 가치를 앞서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아이들을 그러한 사회로부터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아이들을 ‘시장’에 일부러 내몰아서 얻을 것이 무엇일까. 95억 원짜리 빌딩? 월 수입 40억 원? 아서라. 미안하지만 나는 하나도 부럽지 않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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