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떠나는 것만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행은 떠나는 것만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칼럼니스트 송이진
  • 승인 2019.08.1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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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리포터 엄마의 행복한 여행 육아]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은 없습니다

"엄마! 사진 속 아기가 나야? 왜 울고 있어?”

여행 사진을 보던 아이가 묻습니다.

“네가 태어나 처음으로 바다를 봤거든. 파도가 무서웠나 봐.”

“정말?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아빠가 널 꼭 안고 파도 저리 가! 했지. 그랬더니 그게 웃긴지 자꾸 해 달라는 거야. 아빠가 하루 종일 널 안고 파도 앞에서 화냈는데, 기억 안 나?”

가족이 함께한 여행의 추억은 일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송이진
가족이 함께한 여행의 추억은 일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송이진

사진 한 장에 수많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여행의 추억은 신기하게도 힘들고 짜증났던 순간마저 소중하게 느껴지는 마력이 있는데요. 그렇게 되짚어보는 기억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을 통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우리 부부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의 모습이 섭섭하기도 하지만 더욱 단단해진 관계를 느끼곤 하지요.

아이는 이런 추억을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요? 저는 6살 즈음 꽃이 가득 달린 수영모를 쓰고 물놀이했던 게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여행의 기억인데요. 안타깝게도 사진이 없어 흐릿하게 떠오르는 이미지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SNS에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올리며 감상에 빠질 때가 가장 부럽습니다. 저에게도 분명 그런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을텐데 제대로 추억할 수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떠나는 것만큼 기록도 중요한 것 같아요. 평생 기억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던 순간도 언제 그랬나 싶게 벌써 가물가물해질 때가 많으니까요.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어떤 CF 카피처럼 아이와 함께 여행을 추억하려면 휴대전화나 컴퓨터에서 잠자고 있는 사진들을 보이는 곳에 꺼내놓는 것이 좋습니다.

엄마 아빠는 카톡이나 SNS에 사진을 올려놓고 수시로 들여다볼 수 있지만, 아이는 자신의 여행 사진을 볼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요. 사진이 자동으로 바뀌는 디지털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두거나 인화해 앨범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가 남긴 여행 기록들을 모아두는 것도 추천하고 싶은데요. 아이에게도 나름대로 여행을 추억하고 기록하는 방법이 있답니다.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송이진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송이진

제 아이는 비록 영재는 아니지만, 여행 중 종종 영감이 떠오르는지 인상 깊게 본 풍경이나 경험을 즉석에서 그림으로 그려낼 때가 있어요. 글쓰기도 평소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여행이 정말 즐거울 때는 혼자 집에 계시는 할머니가 생각난다며 편지를 쓸 때가 있습니다.

물론 편지 내용은 여행의 재미와 추억으로 가득 차 있고요. 여행 후 그리는 그림일기 역시 이야깃거리가 많으니 억지로 쥐어짜지 않아도 술술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이런 아이만의 기록 방법은 여행 당시의 생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되짚어볼 수 있어, 보다 자세하게 그리고 오래 추억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는데요. 저에게도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아이의 감정을 제대로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에 아직 어린 나이라고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아이가 두살 때 놀이미술 수업에서 독특한 별 밤을 표현한 적이 있는데요. 검은 도화지에 별 스티커와 별 단추를 넓게 펼쳐 붙이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제 아이는 딱 한 곳에만 모든 별을 포개어 쌓아 놓았습니다.

선생님은 계속 별을 넓게 펼치라고 했지만 저는 아이가 무엇을 표현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어요. 베트남 다낭에서 유난히 별 하나만 밝게 빛나는 밤하늘을 보며 저 별이 북극성일까 위성일까를 남편과 한참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거든요.

또 한 번은 아이가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그리더니 검은 크레파스로 새까맣게 덧칠을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냥 낙서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언젠가 신나게 놀았던 보라카이의 바다에 밤이 찾아온 것"을 시간 흐름에 따라 표현한 거라고 하더군요.

아이의 여행 기록. 미소가 절로 나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송이진
아이의 여행 기록. 미소가 절로 나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송이진

하지만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건 그런 아이의 작품 상당수를 그냥 버렸다는 겁니다. 또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때는 빨리 치워버려야 하는 쓰레기(?)로 생각한거죠.

그런데 영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창의적이었던 표현이나 생각은 교육을 받고 커가면서 점차 전형적이고 평범하게 변해갔습니다. 보관하기 힘들면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정말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에요.

'여행은 계획할 때 한번, 떠날 때 한번, 다녀와서 또 한 번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는 점점 제 곁에서 멀어져 갈 테고, 전 아이가 그리울 때마다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을 꺼내보며 행복한 추억에 빠지겠지요?

그렇다고 아이에게 여행 후기를 강요하거나 좋은 사진을 남긴답시고 무리한 포즈를 요구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렇게 찍은 화보 같은 사진은 보기에는 좋아도 추억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열심히 찍고 정작 제대로 저장해두지 않아 보고 싶을 때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아이와 어디를 갈지 고민할 때, 그 순간을 어떻게 기록하고 보관할지도 함께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방법은 모두 다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보석이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테니까요.

*칼럼리스트 송이진은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에서 활동하는 19년차 방송인이자 50여 편의 광고를 찍은 주부모델이기도 합니다. 아이와 매년 4~5회의 해외여행, 다수의 국내여행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아이와 해외여행 백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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