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제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던 신생아 시절은 모든 일상이 체력전이었다. 심리적으로 우울하거나 무기력했던 날들도 지나고 나서 보니 그만한 체력이 뒷받침되지 못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싶다. 어느덧 아이가 제 손으로 밥을 먹고, 기저귀도 떼고 제법 말도 통하는 나이가 되니 확실히 예전보다 몸은 덜 고달프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말과 말 사이에서 오가는 심리전! 이것을 감정싸움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무튼 묘하게 아이와 나의 감정선을 오가는 신경전으로 요즘은 몸 대신 정신이 피폐해지고 있다.
아이는 최근 들어 다시 갑자기 갓난아기로 돌아간 것만 같은 행동을 종종 보인다. 먹으면 안 되는 물건들인 줄 알면서도 입에 마구 넣는 달지, 묻는 말의 의도를 정확히 알면서도 전혀 다른 대답을 하거나 의미가 없는 단어들을 옹알거리기도 한다.
그것 또한 아이에게는 일종의 언어 놀이 같은 장난인지, 스스로는 즐거워하지만 이제 아이와 대화가 좀 통한다고 믿었던 엄마는 또다시 한숨이 나온다. 대체 아이가 내 말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어디까지 수긍하는지 엄마인 나조차 자신이 없을 정도다.
◇ 우리도 말싸움 말고, 대화다운 대화 하는 날이 올까?
간혹 밖에서 부드럽고 우아하게,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모자지간을 보면 '나도 우리아이와 저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부러워 한적도 많다. 아이가 상식적인 대화를 거부하고 나오니 목소리가 커지거나 강압적인 단어부터 튀어나오는 나 자신이 상대적으로 너무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도 즐겁게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물론 아들과 딸, 성별에 따른 차이도 있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남자인 아들과 여자인 엄마는 태생부터 달라서 아들과 하는 대화는 딸보다 더욱 힘들 때가 많다. 무언가 알아들었나 싶으면 와장창, 우르르…. 이내 신체 놀이로 이어지는 대화 같지 않은 대화! 아마 일상이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아들과 대화하기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육아 서적을 읽어보니, 책에서는 '아들을 대할 땐 접근 방법부터 달라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기억에 남는 문구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가령 “찻길에서는 위험하니 엄마 손을 잡아야 해”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아들에게는 “찻길이라 위험하니 엄마 손 좀 잡아줄래?”로 표현을 바꾸어 보라고. 곧바로 아이에게 실험해 본 결과, 이전과는 전혀 다른 피드백이 왔다. 그렇게 아이가 먼저 내 손을 잡은 적도 있다.
이처럼 아이와의 대화를 위한 많은 조언들이 아이의 성향, 성별, 연령 등에 맞게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많이 공감하고, 긍정적인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존중하라’는 교과서 같은 내용 말고 정말 아이와 엄마가 가까워질 수 있는 상황 설정과 그에 맞는 설명이 더 절실하다. 물론 앞에서 말한 방법들을 기본적으로 사용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 아이에게 솔직한 엄마가 되자 "엄마도 잘 몰라, 엄마도 화 나"
실제로 육아를 하고,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은 엄마가 아이와 대화를 할 때 평소와 다른 나로 포장하고 시작하면 어떤 식으로든 들통나거나 쉽게 지친다는 것이다. 끝까지 일관된 어조와 톤, 포장된 단어들로만 대화를 이어나갈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솔직한 편이 낫다.
예를 들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엄마도 모른다, 엄마도 모르는 것이 있다. 나중에 같이 찾아보자”라고 이야기해준다거나 나의 감정을 굳이 속이지 않고 말하는 것. “엄마도 속상하고 화가 많이 났어. 그러니까 엄마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OO이도 조금 기다려줘”라는 식으로 대화를 유연하게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대화가 유쾌하고 즐거울 수는 없는 법이다. 자꾸 아이를 다그치는 것 같아 미안해지는 마음을 나 자신에게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어디까지나 대화는 두 사람 이상이어야 가능한 상대적인 표현이니까.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고 솔직해지자.
“엄마도 좋게 대화하고 싶은데 잘 안 돼. 그러니 점점 나은 대화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함께 노력하자!”고 말이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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