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학부모 봉사활동, ‘치맛바람’ 아니에요 
미국의 학부모 봉사활동, ‘치맛바람’ 아니에요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9.09.1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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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우리 아이만이 아닌 모든 아이를 위한 것

미국에서 학부모로 산다는 것의 8할은 바로 운전과 자원봉사(Volunteer) 활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미국에서는 유치원·학원 통원버스를 한국처럼 언제 어디에서나 제공하지 않으니, 미국의 엄마들은 늘 직접 운전해 아이들을 등하원시킨다.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체험활동에 참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또 미국의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학부모에게 기관에서 마련한 다양한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해 달라고 권장 또는 요구하는데, 미국에서 이 활동은 학부모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다. 

오늘은 이 중에서도 자원봉사 활동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한국의 교육기관에서 행사를 치를 때 대개 학부모는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돕는 역할을 맡는다. 이마저도 학부모회의 일부 위원들이 도맡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의 교육기관에서는 가능한 많은 학부모가 다양한 학교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독려한다.

미국의 교육기관에서는 학부모에게 다양한 봉사활동을 요구한다. 우리아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베이비뉴스
미국의 교육기관에서는 학부모에게 다양한 봉사활동을 요구한다. 우리아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베이비뉴스

◇ 맞벌이 부모도, 조부모도 함께 하는 학부모 봉사활동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됐던 2018년 2월, 나는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께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서 유일한 한국인이니, 아이의 어머니인 내가 일일교사로 한국에서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한국을 간단히 소개해주면 어떻겠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아이의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에 나는 기꺼이 일일교사로서 유치원에 방문했다.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어떤 말과 글을 쓰는지, 어떤 전통음식을 먹고, 어떤 전통옷을 입는지, 도시의 모습은 어떻고,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은 어떤 곳인지 아이들에게 그림과 사진을 보여주며 차근차근 설명하고 질문도 받았다. 수업 후 우리 아이에게 한글로 자기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아이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 외에도 아이들 교실에서 동화책 읽어주기, 이전의 칼럼에서 언급한 적 있는 봄 소풍 보호자, 한국의 운동회와 비슷한 성격의 필드데이(Field Day) 경기 진행 보조, 아이들 수업 교구 만들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영어를 못하는 엄마들도 간단한 행사 보조는 얼마든지 가능해서 같은 반 일본인 엄마들을 종종 봉사활동 자리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다행히 ‘학생 엄마’라서 일정을 어렵지 않게 조정할 수 있었지만, 놀랍게도 워킹맘들 또한 주말에 유치원 화단 꾸미기,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 무렵 교실 꾸미기 봉사에 자원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과 비교하면 아버지의 참여율이 높다는 것이었고, 봉사활동 하러 온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교실 봉사활동 가는 길. 점심 시간 직전에 학부모들은 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한다. 봉사활동을 하러 미리 와 있는 다른 학부모들도 보인다. ⓒ이은
교실 봉사활동 가는 길. 점심 시간 직전에 학부모들은 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한다. 봉사활동을 하러 미리 와 있는 다른 학부모들도 보인다. ⓒ이은

◇ 모든 아이와, 학교와, 지역을 위한다는 자부심

특히 아이가 초등학교 안에 설치된 킨더가튼(Kindergarten)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학교를 지역 내 중요한 커뮤니티 구심점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그 행사를 주관하는 학부모를 많이 볼 수 있었다. 학부모들의 이런 활동은 ‘치맛바람’이 아닌 학교와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봉사활동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래서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끼는 경우도 많아 보였다. 

지난 학기 말에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봉사자 감사의 날(Volunteer Appreciation Day)’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을 보내왔다. 봉사활동에 참가한 학부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앞으로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합치자는 취지의 행사라고 했다. 때마침 박사과정생이 제일 바쁜 학기 말 이후였으므로 참석하기로 했다. 

행사는 학교 도서관에서 진행됐다. 행사장 안에는 그동안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해온 학부모들이 모여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준비한 다과를 나눠 먹으며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각 클래스의 아이들이 완성한 감사 포스터도 함께 감상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경품 행사에서 나는 운 좋게 영화 티켓을 받는 행운도 누렸다. 

우리 아이뿐만이 아닌, 모든 아이를 위한 봉사활동을 권장하고, 봉사활동을 하러 학교나 유치원에 갔을 때 선생님에게 일일이 인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 편한 복장으로 와서 편하게 행사를 돕고 가는 캐쥬얼 함, 일부 특정 행사를 제외하고는 어린 동생도 함께 올 수 있는 편안함, 맞벌이 부모도 참여할 수 있도록 늦은 저녁이나 주말에도 제공하는 봉사활동 기회 등이 미국 학부모의 학교 봉사활동을 더 자연스럽게 이끄는 것 같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아예 부담스럽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직 둘째가 어려 기관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틈틈이 논문을 쓰며 둘째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사실 힘들다) 나도 이제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고, 시간이 맞는다면 봉사활동하러 학교에 가는 일이 적어도 어색하지는 않게 됐다. 처음보다는 훨씬 덜 부담스러워졌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논문 쓰다 말고 운동복 차림으로 둘째를 안고 가서 시간 되는 만큼만 행사를 도와주고 편안하게 나오다가 교장 선생님과 마주치면 손 인사를 주고받기도 한다. 

미국의 학교에서는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만들어줄 수 있는 봉사활동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나, ‘한국 엄마’는 앞으로 시간이 되는 한 미국 유치원과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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