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면 나도 모르게… "너 그럴 거면 아빠한테 가"
화나면 나도 모르게… "너 그럴 거면 아빠한테 가"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9.09.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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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추석에 마음 상한 친정 아버지 혼잣말을 들으며

지난 추석에 온 가족이 모였다. 그 자리에는 이제 막 100일을 넘긴, 예쁜 딸을 키우는 남동생 내외도 왔다. 그런데 즐거워야 할 그 자리에서 우리 아버지랑 남동생이 심하게 싸웠다.

남동생은 화가 나서 밥그릇을 엎고,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너무 놀라 울었다.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버릇없이 구는 남동생을 혼내며 싸움을 말렸다. 가족들 앞에서 막말을 퍼붓는 아들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아버지는 남동생의 버릇을 고치겠다며 더 큰 싸움으로 몰고 갈 기세였다. 

다행히 싸움이 잦아들고, 남동생이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며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싶었으나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남동생은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은 채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달아나듯 가버린 남동생의 모습에 부모님은 물론이고 친척들까지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남동생은 그동안 아버지에게 한 번도 대들지 않은 착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버지에게 대들며 남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왜 항상 아버지는 ‘아들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하세요?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면 안 되죠!” 

아버지가 버릇처럼 해왔던 말이 평생 남동생 가슴에 아프게 박혀있었나 보다. 아버지는 남동생이 돌아간 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녀석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베이비뉴스
"이 녀석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베이비뉴스

◇ 대를 잇는 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명절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문득 비가 엄청나게 오던 ‘그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내가 한국에 돌아온 날이었다. 아기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만으로 가득했던 날. 그런데 그날의 마음과는 별개로, 나는 지금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말을 악마처럼 퍼붓고 있다. 

“그렇게 엄마 말 안 들을 거면 너 아빠한테 가. 가서 아빠랑 새엄마랑 살아.”

“네가 엄마를 안 좋아하니까 엄마가 하는 말을 매번 무시하고 말로만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하잖아? 네가 엄마를 사랑한다면 엄마와 한 약속을 지켜야지.”

“네가 약속을 안 지키니까 엄마는 네가 엄마를 무시하고 싫어한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걸?”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건만… 아이가 종종 보이는 못된 행동에 서운하고 섭섭하고 화나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아이에게 고스란히 퍼부어댔다. 아이는 서럽게 울었고 나도 함께 울어버렸다. 

“엄마는 어떻게든 너와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엄마에게 바라는 것만 많니? 공부는 안 하면서 사달라는 건 많고. 장난감 갖고 놀고 정리도 안 하고. 엄마가 언제까지 네가 가지고 논 장난감 정리해줘야 하니?”

남들에게는 이렇게 보일 것이다. ‘별것도 아닌데 엄마가 예민하네’, ‘애가 다 그렇지 뭐’, ‘애가 애지, 애가 어른 같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런 반응엔 당연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자기 고집이 생긴 아이가 나에게 미운 말을 할 때마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아는 현명한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이의 이기적인 입술만 마냥 미워하게 됐다. 

속마음은 사실, 이랬다. 

'그 먼 미국 땅에서 너를 안고 한국에 돌아와, 지금까지 아빠 없이 내 모든 걸 희생하면서, 내 젊음을 모두 포기하면서 널 키웠는데. 너는 고작 그런 일로 엄마에게 불만이라고 표현하니?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아뿔싸,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니…. 나도 아버지랑 같은 말을 하고 있구나. 

◇ 사랑아, 우리 서로 상처주는 말 하지 말자 

나중에 사랑이가 커서, 내 남동생이 아버지에게 퍼부었던 것처럼 이렇게 말하면 어쩌지.

“엄마는 왜 화날 때마다 아빠한테 가라고 했어? 그게 얼마나 상처인 줄 알아?”

나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사랑이의 응어리진 상처를 어떻게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갑자기 겁이 났다. 

남동생은 며칠 뒤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아버지는 남동생의 사과를 받아주셨다.

내 눈에는 보였다. 100일 된 아기를 키우는 아빠의 고단함이. 나도 그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안다. 나도 사랑이가 100일 즈음일 때 밤에 수유하느라 2시간 이상 푹 자본 적이 없다. 밥도 편하게 못 먹었다. 남동생은 이런 육아의 고단함에 가장의 무게까지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다. 아마 그 스트레스가 명절에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갑자기 터져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와 남동생이 화해한 날, 나와 사랑이도 화해하기로 했다. 

“사랑아, 엄마도 너의 말에 상처받고 슬플 때가 있어. 엄마도 앞으로 너에게 상처 주는 말 하지 않을게. 너도 엄마에게 버릇없이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도 너에게 잘하고, 너도 엄마에게 잘해야 하는 거야. 한쪽만 잘해선 안 되는 거야. 왜냐면 너도 소중한 사람이고, 엄마도 소중한 사람이거든.”

내 말을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랑이는 앞으로 엄마 말을 잘 듣는 딸이 되기로 약속했다. 

나는 다시 이 말을 곱씹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후회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오히려 아니다. 내 젊음을 다 바친 아이, 내 목숨보다 귀한 아이 사랑이를 혼자 키우면서 지금까지 이 선택을 한 것에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그동안은 내가 아이를 안고 혼자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부터는 아이와 함께 손잡고 걸어갈 시간이 기대된다. 

너와 함께 걸어갈 수 있어서 엄마는 기뻐. ⓒ베이비뉴스
너와 함께 걸어갈 수 있어서 엄마는 기뻐. ⓒ베이비뉴스

아, 아버지랑 남동생이 왜 그렇게까지 싸웠느냐고?

갓 100일 지난 손녀딸이 할아버지 때문에 울어서 싸웠다.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7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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