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씩씩한’ 싱글맘인가 ‘불쌍한’ 싱글맘인가
나는 ‘씩씩한’ 싱글맘인가 ‘불쌍한’ 싱글맘인가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9.10.3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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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배운 것

사무실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어떤 고객이 내게 인터넷이 잘 안 된다며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회사에서 고객에게 제공할 만한 서비스라고 생각한 나는 담당자에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봤다. 그러나 회사 시스템 전반을 관리하던 당시 부장님은 외부인에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안전상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문제를 떠나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당연히 요구할 권리도, 당연히 알려줄 의무도 없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부장님 말에 딴지를 걸며 ‘쪼잔하게 와이파이 비밀번호 가지고…'라는 생각을 했겠지만, 직업인으로서 부장님의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그 고객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드릴 수 없다고, 최대한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상황을 마무리했다. 

◇ 내겐 가장 어려웠던 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인정하는 일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회사에서 동료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날씨가 무척 흐렸다. 나는 그에게 “날씨가 이렇게 우중충하면 좀 우울하지 않아요? 신세 한탄하기 딱 좋은 날씨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요, 이런 날씨가 오히려 사진이 더 예쁘게 잘 나와요.”

의외였다. 햇살이 쨍-한 날에 사진이 더 예쁘고 선명하게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길 “해가 강한 날에는 렌즈 초점 맞추는 것이 더 어려워서 사진찍기 힘들어요”란다. 나에게 우울한 날이 누군가에겐 사진 찍기 좋은 날이라니.

나와 성향이 비슷한 언니의 일화도 떠오른다. 언니는 영덕에서 규모가 꽤 큰 횟집을 운영한다. 언니는 누가 봐도 생활력이 강한 여장부처럼 생겼다. 그에 반해 형부는 언니와 좀 다르다. 언니의 성격이 좀 불같다면, 형부는 가족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맞춰주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형부를 배려심이 많고 지혜로우며 품성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특히 장사할 때 둘의 성향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손님이 대게값을 깎아달라고 하면 형부는 못 이기는 척 팍팍 깎아준다. 그때 언니가 등장한다. 언니는 형부가 깎아준 대게값을 도로 올려놓고 “값을 안 깎는 대신 서비스를 더 주겠다”고 상황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언니의 장사 수완을 보며 엄지를 든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언니는 형부 욕을 한다. 

“너희 형부는 내가 어찌어찌 가게 유지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맨날 사람 좋은 척 저렇게 사람들한테 휘둘려서 물건값을 깎아준다? 나는 뭐 착한 척 못 해서 안 하니? 장사해서 뭐라도 남겨야 공과금 내고 인건비도 줄 거 아니니. 맨날 나만 드센 여자로 만들어 버리니 내가 화를 안 내려야 안 낼 수가 없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형부를 보니 그동안 세상 자상하고 점잖게만 보였던 형부의 모습이 이제는 마누라 고생시키는 철없는 남자로 보인다. 괜히 내가 간사하게 느껴진다. 

옛날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상대를 설득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특히 전 남편에게 그랬다. ⓒ베이비뉴스
옛날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상대를 설득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특히 전 남편에게 그랬다. ⓒ베이비뉴스

예전에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썼다. 그 에너지를 가장 많이 들인 사람이 바로 나의 전남편이다. 

나는 그의 의견에 항상 반대부터 했다. “당신의 생각은 너무나도 짧고, 행동은 경솔해. 당신의 판단대로 결정한다면 나중에 시간과 돈을 더 써야 하는 상황이 올 거야”라는 전제를 두고 그가 뭔갈 시도하거나 행동하려 할 때 그를 막아서곤 했다. “당신이 뭘 해도 그건 어차피 시간낭비야”라고.

나는 무슨 기준으로 그랬을까? 그냥 다름을 인정하고, 그가 벌여놓은 일에 그가 책임지고 마무리할 시간을 주면 됐는데… 언젠가부터 그 책임과 마무리를 내가 하다 보니 일은 벌여놓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전 남편의 모든 행동을 본능적으로 제지했던 것 같다. 각자 책임지는 모양새가 다를 수 있는데 당시의 나는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다. 

◇ 싱글맘 바라보는 시선 겪은 후 깨달은 것 '다름을 존중하기'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나와 나의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다.

“여자가 잘하면 남자가 바람피웠겠어? 여자 성격이 얼마나 드세면, 오죽하면 남자가 그랬겠어?”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내 상황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다. 

“남자가 생활력도 없고 책임감도 없으니 여자 혼자 저렇게 애 키우고 살지. 남자가 책임감이 있었다면 양육비도 주고, 위자료도 주고 아이도 함께 책임졌겠지, 안 그래?”

뭐가 정답일까. 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누구는 나를 씩씩한 싱글맘으로 보고, 누구는 나를 불쌍한 싱글맘으로 본다. 나는 어떤 싱글맘인가? 자신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고 말하고 싶은 건, 역시 나의 교만한 마음인가? 

우리는 당신과 다를 수 있어. 하지만 우린 틀리지 않았어. ⓒ베이비뉴스
우리는 당신과 다를 수 있어. 하지만 우린 틀리지 않았어. ⓒ베이비뉴스

나는 그냥 당신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 한 아이를 책임지고 키우려는 사람일 뿐인데, 누구는 나를 ‘드센 여자’로 보고, 누구는 나를 ‘용기 있고 당당한 여자’로 본다. 어쩌면 나는 이런 시선들을 경험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가진 편견과 경험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옛날 어른들은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을 보고 속된 말로 “애미 애비도 없는 놈”이라고 비하하며 “저런 애들하고 놀지 말라고” 자신의 아이를 단단히 단속했다. 그런데 난 우리 사랑이를 ‘애비 없는 아이’로 키운 지 벌써 8년째 아닌가. 처음엔 힘들었지만 나는 이제 우리 사랑이의 정서와 마음에만 신경 쓰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사랑이를 비롯해 한부모가정의 아이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멸시가 아닌, 아이의 상처에 사랑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시선으로 바뀌길 소망할 뿐이다.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7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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