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아이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9.11.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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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일곱 살 아이의 '시간'

유아기의 마지막인 일곱 살 아이를 키우다 보니 꼬물거리는 아기들을 볼 때면 눈길이 오래 머물곤 한다.

아기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우리 아이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아이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감상에 젖어 든다. 온몸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던 아기 냄새, 배불리 우유를 먹으면 볼록 부풀어 오르던 배, 나비잠 자던 모습, 기저귀를 차서 두툼해진 엉덩이, 명치까지 끌어올린 내복바지, 이제 막 말을 배워 더듬대던 말투, 그리고 특유의 발장난까지….

아이를 키우며 힘들었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좋았던 순간들은 미화되어 단상으로 남는다. 추억이 갖는 힘이 어찌나 센지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첫애라서 몰랐고 놓쳤던 부분이 지금은 엄마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잘할 수 있을까,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 아쉬움은 여유가 생긴 지금 이야기일 뿐, 못 자고 못 먹던 그 시절을 떠올리자 아찔해진다. 완벽할 수는 없어도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던 것만큼은 분명하니 이쯤에서 현실로 되돌아온다.

잠깐의 시간 여행은 일곱 살 아이와 지지고 볶는 평범한 일상을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가는 시간, 크는 아이를 붙잡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잃는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기 마련. 육아도 다를 리 없다. 아이와의 지난날은 소중한 기억이지만 앞으로 아이와 만들어갈 시간도 기대되고 궁금한 게 엄마 마음이다.

시간에 대해 질문을 늘어놓는 아이에게 「시간이 흐르면」을 펼쳐 보인다. ⓒ그림책공작소
시간에 대해 질문을 늘어놓는 아이에게 「시간이 흐르면」을 펼쳐 보인다. ⓒ그림책공작소

◇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것을 궁금해 하는 아이에게, 이 책을 열어줬다

그림책 「시간이 흐르면」(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글, 마달레나 마토소 그림. 이상희 옮김, 그림책공작소, 2016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가 겪는 일상의 크고 작은 변화를 담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얻고 잃는 것은 무엇인지도 보여준다.

엄마가 유치원에 데리러 오는 시각인 1시가 언제인지, 친구들이 전부 하원 하는 오후 4시는 지금부터 얼마만큼 지나면 되는지, 시간이 얼마나 더 흘러야 좋아하는 만화영화가 시작하고 크리스마스가 되는지, 그리고 나는 언제 여덟 살이 되는지. 시간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늘어놓는 아이에게 「시간이 흐르면」을 펼쳐 보인다.

“아이는 자라고”, “연필은 짧아져”, “냄비 속 양파는 부드러워지고”, “손등은 쭈글쭈글 거칠어지지”, “빵은 딱딱해지고 과자는 눅눅해져”, “감자는 싹이 나지”

그림책 한 장 한 장에 담긴 대사는 간결하고 그림 또한 그러하다. 그 명료함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오며 시간이란 무엇인지 자연스레 다가온다.

책장을 넘기다 문득 “어려웠던 일이 쉬워지기도" 하다며 운동화 끈을 매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 생각에 빠져든다. 또래보다 느린 편인 아이가 최근 들어 해내는 일들이 몇 가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는 지지부진하던 한글 배우기에 탄력을 받고 있고, 매번 헷갈리던 특정 수 세기를 마침내 넘어섰다. 지퍼를 채우고, 단추를 끼우고, 우유갑을 뜯고, 어른 식기로 젓가락질을 한다. 한 달 정도 연습하더니 풍선껌도 분다. 용변 후에 뒤처리한다고 꼼지락대는 걸 보면서 아이가 잘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또, 놀이터에서 매번 실패하던 구름사다리 오르기에 마침내 성공한 아이를 보자니 코끝이 찡해온다. 어느 날은 안 된다고 울어버리고, 어느 날은 못 한다고 없는 셈 치고, 또 어느 날은 하다 하다 포기했던 그 시간이 모여 아이가 한고비를 넘은 것이니, 장하다. 옆에서 그 시간을 지켜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동이 밀려온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조바심이 차 있었음을 인정한다. '엄마는 기다릴 거야'라고 아이에게 말하면서도 아이가 잘 해내고 있나, 의심을 품을 때도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 어려운 그 일이 쉽사리 풀릴 수도 있으며, 그것이 '시간의 힘'임을 아이의 성장과 변화를 통해 되새긴다.

아이가 비로소 외나무다리를 건너왔다. 그 시간을 알기에 감동이 밀려온다. ⓒ한희숙
아이가 비로소 외나무다리를 건너왔다. 그 시간을 알기에 감동이 밀려온다. ⓒ한희숙

◇ '시간의 진실'은 나중에 알아도 괜찮아… 지금은 그저 '시간의 힘' 믿어보길

「시간이 흐르면」은 시간이 갖는 힘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과 잃는 것,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것까지 다양한 생각거리를 남긴다. 아이는 자라면서 많은 시간 안에 깃든 노력, 실패와 좌절을 차츰 이해할 것이다. 무엇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단순하고 분명하되 무거운 진실을. 하지만 지금은 그저, 시간이 흐르면 어린 네가 고민하는 많은 문제들이 별거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느끼기를 바란다. 그게 포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차곡차곡 다져나가게 하는 힘이 될 테니까.

그림책 속 신발 끈을 묶는 아이를 보며 말을 꺼내니 금방 알아듣는 눈치다. “시간이 흐르면”이라고 운을 떼자 아이 스스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변화가 생길지. 일곱 살 어린아이가 꿈꾸는 훗날의 모습이 엄마에게는 흥미롭다. 엄마도 그 훗날을 그려본다. 아이는 머잖아 줄넘기를 한 번 두 번 넘을 것이고 보조 바퀴를 떼고 두 발 자전거를 탈 것이며 어두운 방에 불을 켜고 들어갈 수도, 처음 보는 이에게 용기 내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날로 밤공기가 차가워지는 이 무렵, 시간이 흐르는 게 나이 많은 엄마로서는 달가울 리 없다. 그럼에도 매일이 희망찬 어린아이 덕분에 무료한 엄마의 삶이 다채롭게 채워짐을 느낀다. 그림책을 읽고 어쩐지 쓸쓸하고 생각이 많아진 엄마의 마음을 아이라는 존재가 위로해 주는 기분이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일곱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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