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보내는 추수감사절, 가족이 있어 '감사'하다
미국에서 보내는 추수감사절, 가족이 있어 '감사'하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9.11.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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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평화롭고, 소소해서 더 감사한 날들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 아침이 밝았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식구들이 모여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애들 아빠가 구워주는 팬케이크에 과일과 우유로 추수감사절을 시작했다. 미국에 있는 몇 안 되는 친척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우리 가족은 단출한 추수감사절 휴일을 보내게 됐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난 뒤 큰아이는 TV를 켜서 얼른 메이시스(Macy’s) 백화점의 추수감사절 퍼레이드 중계로 채널을 돌린다. 이 퍼레이드는 1924년부터 시작했는데, 추수감사절 오전 뉴욕 메이시스 백화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로 시작된 이 행사는 어느덧 추수감사절의 상징과도 같아졌고, 지금은 매년 전국에 중계된다. 우리 큰아이도 어느새 스스로 챙겨보기 시작한, 대표적인 추수감사절 이벤트다. 

메이시스 퍼레이드에는 거대한 캐릭터 풍선, 유명인들의 노래,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학생 마칭 밴드(Marching Band)와 치어리딩 그룹(Cheerleading Group) 등 다양한 볼거리와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올해는 큰아이가 좋아하는 피카츄, 드래곤볼의 등장인물, 그리고 작은아이가 좋아하는 아동 프로그램인 포 패트롤(Paw Patrol), 블루스 클루(Blue’s Clue)의 캐릭터들이 커다란 풍선으로 등장해서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즌(Frozen, 한국어 제목 ‘겨울왕국’)의 올라프도 풍선으로 등장했고, 엘사 역할을 맡은 이디나 멘젤(Idina Menzel)이 출연해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노래도 불렀다. 

퍼레이드를 한참 지켜보던 아이들은 블록을 꺼내 놀고, 우리 부부는 밀렸던 집안일을 나눠서 하기 시작했다. 

평화롭고,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 추수감사절 저녁 아들의 제안 "엄마, 우리가 감사한 것에 대해 얘기해봐요" 

단란한 추수감사절 가족 파티. 와인잔에 우유를 채운 막내. ⓒ이은
단란한 추수감사절 가족 파티. 와인잔에 우유를 채운 막내. ⓒ이은

저녁이 되자 ‘그래도 추수감사절인데…’하는 생각이 들어 간단히 추수감사절 파티를 하기로 했다. 단, 미국인들에겐 필수인 칠면조(Turkey) 요리는 생략하기로 했다. 우리 식구들이 칠면조 요리는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가, 칠면조는 워낙 커서 우리 네 식구가 수 주에 걸쳐 나눠 먹어야만 다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우리는 추수감사절 때마다 닭고기를 먹는다. 간단하게 양념해서 오븐에 굽기만 하면 금세 완성되고 아이들도 잘 먹기 때문에 메인 메뉴로 손색이 없다. 

칠면조 다음으로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 대표 요리로 뽑는 그린빈 캐서롤(Green bean Casserole)도 만들었다. 캐서롤(Casserole)은 원래 넓고 평평한 요리 도구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그릇에 고기나 채소를 넣고 오븐에 구워낸 요리를 일반적으로 캐서롤이라 부른다. 그린빈 캐서롤 외에도 옥수수를 넣은 콘 캐서롤, 고구마를 넣은 스위트 포테이토 캐서롤을 먹는 집도 많다. 

그린빈 캐서롤은 그린빈을 다듬고 삶은 후 준비한 다른 재료들과 잘 섞어 오븐에 구워주기만 하면 돼서 크게 어렵지 않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요리는 다양한 재료를 손질해야 하고 요리 과정 또한 섬세한 한국의 명절 전통 음식보다 훨씬 간단하고 덜 힘들다. 

큰 덩어리의 허니햄(Honey Ham)도 오븐에 구워내고 샐러드와 롤빵을 식탁에 올린다. 디저트로 준비한 애플파이와 작은 컵케이크까지 확인해두면 추수감사절 저녁 준비는 끝이다. 

파티 느낌을 내보려고 무알코올 스파클링 포도 주스를 와인 잔에 따른다. 막내의 와인 잔에는 우유를 따라주었다. 

잔을 채우고 아들이 이렇게 제안했다.

“엄마, 우리 우리가 감사하는 것들을 얘기해봐요.” 

내가 먼저 얘기했다. 

“엄마는 우리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엄마가 우리 아들, 딸의 엄마라서 감사해.” 

애들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해서 감사해.”

뒤이어 “나는 지구와 우리의 존재에 감사해요”라는, 다분히 철학적인 답을 내놓은 아들의 말에 나와 남편의 웃음보가 터졌다. 덩달아 따라 웃는 막내를 보니, 막내는 함께 웃을 수 있는 이 시간이 감사한가 보다. 

자칫 외로울 수 있는 미국에서의 명절이 따뜻한 까닭은 식구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11월도 어느새 끝나간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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